유튜브 영상 속에서 훈련사를 마주한 셰퍼드가 제자리에서 빙글 돌고 있다. 긴장을 할 때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한다. 그 모습이 문맹자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경전, 마니차를 생각나게 한다. 원통형의 마니차 안에는 불경이 들어가 있다. 한 번 돌리는 것으로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한다. 저 아이가 돌리고 있는 저 허공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어미의 냄새나 울음이 담겨있진 않을까.
한 바퀴 돌고 나니 원점이다. 셰퍼드는 맥없이 엎드린다. 훈련사가 저 아이가 하는 행동을 정형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영상을 껐다. 훈련사는 모르겠지.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눈이었지만 엎드린 이유를. 분명 셰퍼드는 경전을 되뇌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아무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도록.
구원을 바랄 때도 기도하지만 포기할 때도 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조혈모세포이식 후 숙주반응으로 망가진 폐가 문제였다. 그는 장기이식센터에서 연락이 두 번이나 왔는데, 부위는 다르지만 이식을 또 받고 싶진 않다고 다 거절했다고 했다.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웃어 보였다. 황달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을 놔 버린 그가 노란빛을 띠는 노을 같아 보였다. 멋있다는 생각은 잠시, 앞으로 올 밤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이식의 기회가 두 번이나 온 것은 하나님이 한 번 더 싸워보라고 은혜를 내려주신 것 아닌가요. 한 번만 단 한 번만 더 해보시면 안 될까요.
말을 하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지 알고 있었다. 병동에서 친해진 사람들이 하나 둘 죽었을 때 슬픔보다 수고했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으면서. 그들의 죽음에서 내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면서. 그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더 살아달라고, 미미한 가능성을 그가 믿는 신을 핑계로 몰아세우고만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는 척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에 이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아닐까 기대했다. 아니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픈 것을 보니 분명 나를 위해 기도 하고 있었다.
구원이 포기가 될 순 없어도 포기가 구원이 될 순 있다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야기했었다. 그가 없는 지금, 끝까지 이식 거부를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덜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 말 않고 웃어주던 그 모습 덕분인 것 같다. 혹은 그의 기도 내용이 내 죄책감을 덜길 바란다는 것일지도 모르고.
일어나 제 자리에서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본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들을 중얼거리며 모두가 내 안부를 읽을 수 있게 고장 난 오르골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돈다. 어디서든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