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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02. 2024

머물 일상이 없었다.

  치료가 끝나고 일 년을 쉬었다. 


 일 년 동안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처음 병을 발견하게 됐을 때처럼 연분홍 멍이 피어 있을까 봐 관절들을 살폈다. 난해한 글을 읽는 것처럼 살핀 곳을 몇 번이고 살폈다.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냈다. 책도 읽지 않았다. 가만히 천장만 바라봤다. 지독한 악몽 같았다. 병원 생활을 말하는 것인지 누워 있는 지금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 물고기가 있다. 나는 물고기가 아니어서 움직이지 않아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죽은 사람들이 자꾸 떠올랐으니까. 일단 걷기로 했다.

 

 조금만 걸어도 누전 차단기가 내려간 것처럼 주저앉았다. 병원에서 히크만 카테터를 달아 놓은 것처럼 몸 안 어딘가에 누전 차단기를 달아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 걸음마다 힘을 다했다. 대장장이가 망치로 쇠를 때리며 늘린다. 늘어나는 쇠를 떠올리며 발을 디뎠다. 


 내 목숨은 간장종지에 가득 담겨 있다. 종지를 늘리려면 걸어야 했지만 걸으면 목숨이 넘쳐흘러내렸다. 누전 차단기는 목숨 한 방울에도 가차 없이 차단기를 내렸다. 


 퍼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오 분이었다가 십 분이 되고 한 시간이 되었다. 그릇이 커졌는지 목숨을 넘치지 않을 정도로 흘려버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복학 신청서를 제출하러 가던 날. 우리 집은 미아사거리역. 학교는 안산중앙역. 지하철을 두 시간 동안 탔다. 안산중앙역에서 내리자마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누전 차단기가 작동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학교에 도착하니 익숙한 건물들 사이에서 아플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스무 살의 내가 보였다. 너무 해맑아서 견딜 수 없었다. 복학 신청서를 버리고 싶었다.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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