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침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May 06. 2024

빗물에 떠내려가는 중입니다.

 쉬는 동안 애인 집에 있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본가에 잠시 들렀다.


 비를 조금 맞았다. 애인 집에 나설 때만 해도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릴 때는 비 맞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엔 아무리 울어도 울음이 부족했다. 비를 맞으며 걷는 일은 부족한 울음을 보충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울음이 나면 휩쓸리다 못해 떠내려간다. 다시 평정심 찾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찾았다. 비밀번호를 확인하며 호수도 확인했다. 비밀번호도 호수도 자꾸 잊는다. 본가에는 내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물건을 둘 곳이 없다고 했다. 가져올 것은 가져오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본가에 나를 둘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나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온갖 나물이 널려 있었다. 텃밭에서 상추를 수확하는 것만으로 골반이 아프던데 나물 캐는 것이 어떻게 휴식이 되는지 모르겠다. 밥을 먹었냐는 말에 시간을 확인했다. 네 시.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우선 씻겠다고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는 도중에 집에 여벌의 옷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샤워를 끝내고 입었던 옷을 다시 입고 나왔다. 비가 많이 내리진 않아 다행이었다. 마음은 꿉꿉했지만 옷은 별로 꿉꿉하지 않았다.


 엄마가 샤부샤부를 먹자는 말에 됐다고 했다. 짜파게티를 두 개 끓여 먹고 다시 가방을 멨다. 남는 우산 하나 챙겨 나왔다. 우산을 펼치니 손잡이와 분리되어 날아갔다. 비를 맞으며 날아간 우산을 주웠다. 손잡이를 끼고 우산을 접었다. 접히지 않아 우산 끈으로 동여맸다. 다시 올라갈까 하다 말았다. 귀찮고 멀게 느껴졌다. 비를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보슬비라 다행이었다. 지하철역이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옷부터 벗어던지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침대에 올려놓았다. 굴러다니는 옷을 주워 입고 침대에 엎드려 노트북을 켰다. 오늘치의 글을 아직 쓰지 못했다. 글부터 써야지. 시계를 보니 하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차. 까먹을 뻔했다. 휴대폰을 꺼내 애인에게 집에 도착했다고 보냈다. 비를 맞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말했다면 감기를 걱정했을 것이다. 쓸쓸함에 걱정을 끼쳤다는 죄책감을 얹고 싶진 않았다.


 무엇을 쓰지. 요즘 매일 그 생각만 한다. 본가에 내 것이 없는 것처럼 내 안에 내 것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평정심을 잃은 지 오래다. 그냥 나가서 비나 실컷 맞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어중간하게 쥐고 있는 것들이 많다. 레저스포츠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멀리 떠내려 갔다 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