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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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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08. 2024

뭐라도 써보겠다고

 말을 잃어버렸다. 종일 땅만 보며 걸었다.


 골목에는 잃어버린 말은 없고 담배꽁초만 버려져 있다. 거주자들이 금연 구역이라 아무리 써 붙여 놓아도 소용없다. 필터가 잘근잘근 씹힌 채 놓여 있는 담배꽁초가 내게 묻는다. 골목의 미관을 해치는 것은 우리입니까. 경고문입니까. 죄를 자꾸만 죄 없는 사람에게 전가하게 된다.


 전봇대 아래에는 종량제 봉지가 없다. 검정 봉지만 서로 어깨를 빌려준 채 놓여 있을 뿐이다. 배고픈 길고양이처럼 검정 봉지를 풀어헤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검은 봉지 안에 더 이상 배고플 일 없는 길고양이가 들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청소차가 온다. 청소차 뒤에 매달려 있던 청소부가 내려 검정 봉지를 청소차에게 먹인다. 잃어버린 말, 고양이, 과자와 술병. 전봇대 아래가 깨끗해졌다. 어느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왜 글을 못 쓰겠으면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 들까. 쭈그려 앉아 청소부를 기다린다. 제 안에는 더 다양한 가능성이 있어요.


 대형생활폐기물은 스티커가 필요하다. 일반 쓰레기라고 하기엔 너무 컸나 보다. 청소부는 청소차에 매달려 고개를 돌린다.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본다. 종량제 봉지가 아닌 검은 봉지에 담겨 있는 것도 치웠으면서 글도 못 쓰는 나는 왜 치우지 않는 걸까.


 잃어버린 말은 포기하고 담배꽁초 몇 개를 주웠다.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짧은 것부터 긴 것 순으로 피우셨지. 담배꽁초를 주머니에 넣는다.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경고문도 한 장 떼어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가 불쾌하고 지독하다. 할머니는 도대체 담배가 뭐라고 주워서까지 피우셨을까. 뭐라도 써보겠다고 담배꽁초를 주머니에 넣은 나처럼 별 다른 생각은 없으셨겠지.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주머니에 담겨 있던 담배꽁초를 아직 치워지지 않은 종량제 봉투에 욱여넣는다. 지독함만 남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다. 집에 와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다. 핸드워시도 바디워시도 샴푸까지도 손에 배인 지독함 지울 수 없다. 지독함만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침대에 엎드린 채 노트북을 켰는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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