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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2. 2024

헌혈증을 모아준 후배에게

 안녕? 벌써 네가 죽은 지 9년이 되어간다. 폐쇄병동 자동문 밖에서 헌혈증 한 뭉텅이 든 채 멍하니 서 있던 네가 떠오른다. 장례식장에서 네 동기한테 들었다. 내가 백혈병 걸렸다고 전화했던 날. 전화를 끊고 나서 대성통곡했다며. 병원에서 본 너는 담담해 보였는데 아니었구나. 어쩐지 웃기려 해도 웃지 않았던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복학하던 해에 너는 졸업했으니까. 병원에서 본 날이 네가 날 본 마지막 날이었구나. 근데 진짜 웃기지 않았냐. 당시에 매일 아침 거울 보면 대머리인 내가 무슨 래퍼 같아서 웃겼는데 말이야. 우리 웃음 코드가 많이 달랐나 보다.


 헌혈차를 부른 것도 모자라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헌혈증을 모았다며. 나 때문에 고생하느라 질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날 살리겠다고 그렇게 뛰어다녔으면서 너는 널 살릴 기회도 안 주고 관이나 들게 하냐. 네가 고생한 거에 비해 네 관은 너무 가벼웠다.


 네 장례식장 기억은 별로 없다. 영정사진은 네 고등학교 때 사진 같더라. 많이들 울더라고. 나는 안 울었다. 그냥 술 먹고 뻗었다. 치료 끝나고 처음 먹은 술이 네 장례식장이었다. 맛없더라.


 영정사진 고등학교 때 사진이더라. 네가 수석으로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내가 고3이고 네가 고2일 때 네가 매일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고.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했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나도 요즘 매일 글을 쓴다. 실력이 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시는 안 쓰고 산문 비슷한 것을 쓰고 있다 하면 네가 참 놀랐을 텐데 그 모습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화장터는 따라가지 말걸 그랬다. 내가 기억하는 네 마지막 모습은 뼛조각이다. 화장로에서 너를 꺼내 보여주는데 네 지인들 모두 주저앉더라. 통곡 소리 사이에서 나는 다리에 힘 꽉 주고 네 모습 다 봤다. 근데 그게 정말 너였냐. 왜 그게 너냐.


 요즘 날씨가 많이 덥다. 네가 간 날도 많이 더웠다. 정장이 없어서 겨울용 검은 셔츠를 입고 가서 고생 좀 했었지. 지금은 그 셔츠가 맞지도 않을 만큼 살쪘다.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솔직하게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먹고 있는 것은 맞다. 너는 거기서도 매일 글 쓰고 있냐. 어떻게 여기에 글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지우고 가냐. 거기선 글 지우지 마라. 덕분에 더 오래 살다 갈 테니까 그때 보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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