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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9. 2024

식인종 꿈을 좋아했다.

 발가벗겨진 채 기둥에 매달려 있다. 잿빛의 분장을 한 사람들이 내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봤다. 그들의 춤을 보고 있자면 발가벗은 내 모습도 부끄럽지 않았다. 족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왼팔을 잘랐다.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더욱 발을 구르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름 모를 나뭇잎으로 왼팔이 있던 자리를 막았다. 통증이 금방 가라앉았다. 피도 멈췄다. 족장은 오른팔을 가리켰다. 내일은 오른팔을 먹을 생각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배가 불렀는지 공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옆에 매달려 있던 남자는 갈비뼈만 남았다. 아이들이 차고 노는 것은 남자의 머리였다.


 시작부터 그들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승리였고 축복이었으며 약이었다. 그들은 내가 관찰자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들에게 난 어떤 의미 있는 존재였다.


 난방되지 않는 방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왼팔을 만졌다. 왼팔이 있다는 게 좋았다.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니.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니. 이보다 달콤한 게 어디 있을까.


 어릴 적 나는 동네 형이 이사를 가며 선물로 준 백과사전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백과사전을 읽을 때면 짤막한 글에서 여러 상상을 덧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하루에 한 장 읽기도 힘들었다. 나는 식인종에 대해 풀이해 놓은 부분을 제 좋아했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 부모님 직업을 물어보는 것 다음으로 난감했던 질문은 꿈에 대한 것이었다. 백과사전을 읽으며 여러 상상을 했었지만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상상 속 나는 항상 관찰자로서만 존재했다. 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백과사전은 창 밖 풍경이었다. 흥미로웠지만 그뿐이었다. 집 밖을 나간다는 것은 덜 맞기 위해 도망가거나 학교를 가는 것뿐이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어떻게 해야 덜 아프게 맞을 수 있을까를 매번 복기하기 바빴다. 다채로운 세상은 보는 것만으로 족했다. 어디에도 날 끼어줄 자리는 없어 보였다.


 식인종이 나오는 부분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식인종에게 먹히는 상상을 좋아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깊게 왔다.


 선생님께 식인종에게 먹히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맞으며 단련된 것은 맷집뿐만 아니라 눈치도 있었다. 선생님은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죽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어린 나는 그것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어린 나는 그래서 항상 꿈이 없다고만 말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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