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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31. 2024

혼자 살긴 좋지만 홀로 죽긴 싫어

 컴퓨터 화면 속에서, 방독면을 쓴 남자는 세입자가 생전에 사용했을 물건들을 검은 봉투에 담고 있다. 주인 잃은 물건들은 저항 한번 없다. 흑백 처리된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부패한 체액이 비명 같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죽어 있어요. 발견이 늦어질수록 더욱 고약하게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연탄을 태운 흔적을 치운 남자는 약품을 뿌린다. 체액이 자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세입자가 남긴 편지를 읽는다. 왜 하나같이 죄송하다고 말하는 걸까. 죽음까지도 죄송해하는 사람을 긁어내고 닦아내며 남자는 중얼거렸다. 처음 듣는 종류의 울음이었다.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가족도 낯설어지기에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본가에 있을 때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온몸이 근질거렸다. 부쩍 고독사를 찾아보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깨끗해진 집에는 더는 자살한 사람의 삶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장례지도사가 시신을 보내는 일을 한다면, 특수 청소부는 미련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남자는 이불을 담을 때 마구잡이로 넣지 않고 잘 개어 담았다. 일어나 침대를 본다. 널브러져 있는 이불, 한쪽으로 치우쳐진 요. 집에서 집주인을 가장 닮은 곳을 꼽으라면 이부자리일 것이다. 씻지도 않고 거울을 본 기분이다. 구겨진 이불은 쉽사리 펴지지 않는다. 너무나 나였다.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는 침대 시트에 주름 하나 남기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누웠던 자리라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구나. 깨끗한 집에는 곧 다른 세입자가 들어올 것이다. 새로운 세입자는 죽은 사람을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사막에서 길을 잃어도 굶어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자라고 나니 사막은 아니지만, 삶에 길을 잃었다. 사막보다 더 지독한 곳이다. 그래도 엄마의 예언대로 밥은 굶지 않고 있다.      


 친구 카톡에 집 주소를 보냈다. 며칠이 적당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일주일 동안 연락이 되지 않으면 찾아와 달라 부탁했다. 일주일이 지나기 전마다 생존 신고를 하다 보면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이부자리도 주문했다. 구겨진 것들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 버리고 나니 당장 깔고 덮을 이부자리가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종량제 봉투에는 이불뿐만 아니라 헛된 미련도 있었다. 다시 꺼내오기 뭐 하다. 살아있는 내게 특수 청소부 또한 나다. 단호할 줄 알아야 버틸 줄도 안다. 그냥 누웠다.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 쉬울 리 없지. 이부자리가 오면 주름 하나 없이 깔고 덮어야지, 혼자인 나는 봉지에 담겨 있다 생각해야지, 친구, 가족에게 자주 연락해야지, 살아서 여기 있다고 외치는 사람이 되어야지, 살아서 여기 있다고 외치는 사람에게 귀와 손을 그리고 마음 한 곳을 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처음 들었던 울음을 중얼거리며 태아 자세를 취했다. 고독에 밤은 길지만 자야지. 살아서 일어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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