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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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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03. 2024

역사는 왜 반복될까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고 한다. 외삼촌과 큰 이모는 진작에 서울로 도망가버렸고 작은 이모들은 너무 어려서 심부름을 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는 주전자를 앞뒤로 흔들거나 쥐불놀이하는 것처럼 돌리며 막걸리 양조장으로 갔다. 때때로 주전자가 논밭으로 날아갔지만 호수에 몇 번 담갔다 들어 올리면 감쪽같았다. 


 집에 쌀이 떨어졌는데도 막걸리 심부름은 그칠 줄 몰랐다. 엄마는 툴툴 거리며 걸었다. 조그마한 돌멩이를 할아버지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걷어차기도 하고 잡초들이 할아버지 수염 같아서 괜히 뽑아 내동댕이 쳤다. 양조장 주인은 반겨주지 않았다. 저번 외상값도 갚지 않았는데 또 외상이냐며 타박했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주전자를 내밀기만 했다. 타박은 들으면 끝이지만 할아버지한테 걷어차이면 멍이 남았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물어보면 대답할 핑계도 이제는 없었다.


 주전자 가득 막걸리를 담아 집으로 가는 길. 먹은 게 없다 보니 유난히 무거운 것 같았다. 조금 무게를 줄이자는 마음으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가져다 댔다. 처음 맛보는 막걸리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구수하며 달큼했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자꾸 생각났다. 조금만 더 마시자 했는데 어느새 주전자에 막걸리는 반만 남았다. 세상이 휘청거렸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논밭에 자빠져 자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럴만했다. 


 집과 가까워지니 정신이 들었다. 정확히는 비틀거리는 세상을 할아버지가 들고 있을 몽둥이가 바로 세웠다. 엄마는 고민했다. 수돗가에 가서 주전자에 물을 담았다. 막걸리와 잘 섞이게 흔들었다. 조금 맛봤다. 이맛도 저 맛도 아니었다. 


 술을 받은 할아버지는 주전자 채로 마시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이내 양조장 주인을 욕했다. 엄마는 꿩을 주워오겠다며 집에서 도망쳤다. 공터에서 한나절을 잤다. 머리가 아팠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고 욕을 먹었다. 맞진 않았다. 엄마는 자고 있는 동생들 곁에 누웠다.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팠지만 참았다.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할아버지는 양조장을 찾아갈 생각은 않고 양조장 주인을 마저 욕했다. 욕과 숙취로 밤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 주말 동안 엄마가 내게 말해주지 않은 이야기들을 적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칭으로 쓸까 하다 그러지 않았다. 없는 내가, 내가 없던 시절의 엄마를 마주하고 싶었다. 나중에 한번 녹취를 부탁하거나 인터뷰를 해봐야겠다. 내가 없는 곳에 있던 엄마의 표정을 생각한다. 본 적이 없지만 닮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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