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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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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10. 2024

죽을 태웠다

 배탈이 났다. 별다른 것을 먹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죽을 끓인다. 얼려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해동한 다음 그대로 끓는 물에 넣었다. 냄비 안에서 들끓는 밥알을 한참 들여다봤다. 물이 끓는 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조금은 외로워 보인다. 밥알끼리 부딪히는 게 꼭 부둥켜안으려다 실패한 모습 같았다. 뭉쳐있던 밥알이 풀어질 때는 어떤 절망감도 느껴졌다. 물을 머금은 밥알들 사이에 해동시켜 둔 닭가슴살을 넣었다. 배탈이 날 때는 굶는 게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거린다. 고민하다 보니 죽의 물이 많이 줄었다.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 죽과 밥 사이의 무엇이 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빈 속으로 침대에 누웠다. 배만 아픈 것도 아니라 기분도 나빠졌다.


 예전에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냉면에 식초를 넣다 한 통을 다 넣은 적이 있다. 먹을 때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내 위는 많이 이상했었나 보다. 위를 쥐어짜는 느낌으로 밤새 앓았다. 엄마가 뜨거운 수건을 배 위에 올려두니 조금 진정되어 잘 수 있었다. 그날이 왜 갑자기 생각나는 걸까. 글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위장 속이 들끓는다. 위장 속도 냄비 속처럼 외로울까. 배를 쓰다듬는다. 이 정도 통증이면 누군가 배를 만져주면 나아졌었다. 쓰다듬는 일은 위장 속이 외롭지 말라고 여기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신호 같은 걸까. 스스로 아무리 쓰다듬어도 좋아지질 않는다. 사람 인이란 한자는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자세라 했던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내 배를 쓰다듬고 뜨거운 수건을 올리던 때에 엄마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떤 표정으로 영혼의 등을 맞대고 있었을까. 병을 맞들고 있었을까.


 타는 냄새가 난다. 불을 껐다 생각했는데 약불이었다. 죽이 탔다. 배달이라도 시켜야 할까. 잔고를 보니 어림도 없다. 월급이 들어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꼭 불행은 이럴 때 온다. 엄마에게 전화할까 하다 만다. 배탈에 공복이 좋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민간요법이란 믿음이 반이라고 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냄비 속 들끓던 밥알이 된 것 같다. 위로 아래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손을 뻗어도 잡히는 것이 없다. 엄마의 표정을 다시 생각하니 엄마가 옆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언제 혼자 온전히 아픔을 견딜 수 있을까. 혼자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엄마의 걱정하는 표정을 지운다. 자고 일어나면 좋아질 것이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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