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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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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11. 2024

멍청합니까. 괜찮습니다.

 중학교 시절 화장실 문을 깨트린 날을 기억한다. 술래잡기를 하며 화장실로 숨은 친구를 잡으려고 했을 뿐이었다. 힘껏 화장실 문을 밀어내자 손가락 마디만 한 두께의 유리문이 깨졌다. 무너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두꺼운 유리가 폭포처럼 무너져 내렸다. 신설 중학교라 1학년밖에 없던 학교였다. 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렸다. 술래가 되기 싫었던 아이는 망연자실한 내 옆을 지나 뛰어 도망갔다. 나는 도망갈 수 없었다. 술래였고 술래를 넘기기엔 목격자가 너무 많았다.


 담임 선생님에게 불려 가 훈계를 들었다. 왜 화장실 문을 깨뜨렸냐고 했던가. 마치 내가 일부로 그랬다는 것처럼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도 못했다. 명백한 내 탓이었고 술래였으니까 술래는 도망갈 곳이 없다. 술래는 잡는 사람이다. 술래는 혼자였다. 같이 놀던 아이들은 놀이가 숨바꼭질로 바뀌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놀이가 바뀌었다면 술래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선생님께 혼나는 상황은 놀이가 아니었다. 놀이는 사라지고 술래만 남았다.

선생님은 훈계를 그치고 혼잣말을 하더니 나를 교감 선생님께 보냈다. 나는 선생님이 내게 한 훈계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혼잣말은 잊을 수 없다. 지능은 나쁘지 않은데 왜 저럴까. 


 교감 선생님은 빗자루를 내게 던졌다. 내가 치우라고 했다. 너 같은 새끼는 퇴학시켜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으름장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을까. 나는 단순히 화장실 문을 깬 것이 아니라 신설 학교 역사상 최초의 사고를 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을까. 사고는 계속 일어날 것이었다. 기록되지 않을 최초였다. 모든 사고는 최초가 아닌가. 이해할 수 없다. 당시에도 무섭진 않았다. 슬플 뿐이었다. 나는 지진아가 아닐까라는 생각만 했다. 내가 술래잡기를 했던 것도 착각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도 내게 다쳤냐고 묻지 않았다. 물론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다치지 않은 것도 내가 지능이 나빠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빗자루로 깨진 유리를 쓸어 봉투에 모두 담고 다음 징계를 기다렸다. 내가 먼저 선생님을 찾아간다면 욕만 더 들을 것 같았다. 선생님을 기다리며 계단에 앉아 학교 밖을 봤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도로를 다니는 자동차라던가 날아다니는 새들이 분주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평온하지 않았는데 평온했다.


 따로 큰 징계는 없었다. 화장실 문을 보상해 주고 끝났다. 그리고 며칠 후 학교 지진아들을 학생부실로 부른 적이 있었는데 나도 포함된 적이 있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은 내가 속옷을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 확인했었다. 나는 정말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인 걸까. 혼자서 속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아이인 걸까 싶었다. 이후 어떤 일도 먼저 하기 힘들었다. 성공은 운이 좋은 일이었고 실패는 내 문제였다. 지능이 떨어져서인지 지능이 떨어진 것이 들킬까 봐인지 항상 겁에 질렸다.


 중학교 시절 생기부 어디에도 유리를 깬 것이나 지능이 떨어진다는 말이 없었다. 학기 초 아이큐 검사 문제지를 풀 때 대충 찍고 잤던 기억이 난다. 오해였을까 진실이었을까. 모르겠지만 두려움은 이미 마음 한편에 거하게 왕국을 차리고 말았다. 전쟁을 하기엔 너무나 큰 왕국 말이다.


 나중에 유리 업체에 들으니 화장실 문이 불량이라고 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망치로 때려도 깨지지 않는 문이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방법은 없었다. 40만 원을 주고 화장실 문을 새로 달았다. 집에 그런 목돈은 없었다. 엄마는 보험을 깼었다고 했다. 백혈병에 치료가 끝나던 날 하나 남은 보험이 보장이 약해 아쉽다고 했다. 중학교 때 화장실 문 보상해 주려고 해약한 보험이 혜택이 좋은 보험이었다고 했다. 나비효과란 이런 것이겠지.


 이제는 지능이 떨어지나 떨어지지 않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놓친 보험이 아쉬울 뿐이다. 거짓말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하면 담임 선생님의 혼잣말을 생각한다. 되물어도 기억하지도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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