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자마자 협탁 위를 더듬거린다. 뜯긴 약봉지 두어 개를 만지고 나서야 알약이 들어있는 약봉지를 잡을 수 있었다. 그대로 뜯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입 안으로 떨어진 알약은 아트목신, 콘서타, 파피온이다. 콘서타를 제외하고는 매번 이름을 까먹는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약이라고 먹었다. 협탁 위를 조금 더 깊게 더듬거렸다. 자리끼로 둔 생수통이 손가락에 치여 떨어졌다. 빈 통이었다. 입이 썼다. 약이 녹고 있었다. 결국 물 없이 삼켰다. 목에 걸렸다. 침을 삼켜보기도 하고 목을 쓸어내리기도 해 봤다. 아무 소용없었다. 가만히 누워 약기운이 돌기를 기다렸다.
약기운이 돌면 쫄바지를 입은 것처럼 의식과 내가 밀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매일 먹는 약이지만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쫄바지의 가랑이를 늘리며 걷는 것처럼 어기적거리며 냉장고로 향했다. 물이 없었다. 베란다에 가서 물을 꺼내 마셨다. 적어도 1L는 마신 것 같은데 이물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포기했다. 약이 녹아서 내려갈 때까지 열심히 물을 마시고 침을 삼키는 것 밖에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약을 먹으면 조금은 더 수월하게 포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약을 먹지 않았다면 목에서 손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목을 조른 채 밥을 먹고 씻고 출근했을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목에 걸려있는 이물감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와선 없어진 이물감을 생각하며 목을 만지작거리며 글을 썼을 것이다.
약 그만 먹고 싶다. 쫄바지를 입은 것 같은 의식으로 글을 쓰기 너무 힘들다. 잠옷바지 같은 펑퍼짐한 평상시의 의식을 꺼냈다가 집어넣을 수는 없는 걸까.
ADHD 약을 먹어도 글을 쓰거나 예술 활동에 지장이 없다는 사람이 더 많다는데 내게는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나는 그냥 퍼질러진 채 있다가 글을 쓰거나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하고 돌아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을 뿐인데. 하루치의 사회생활을 다 하고서도 벗겨질 생각을 않는 쫄바지 덕분에 좋아하던 것들이 다 불편해져 버렸다.
부쩍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진 요즘이다. 매일 무언가를 쓰고 있지만 매일 쫄바지가 불편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에어컨을 켜놓고 글을 쓰고 있는데도 땀이 나고 있다. 적응해야겠지. 사람노릇을 하려면 쫄바지를 입고도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더 열심히 쓰다 보면 쫄바지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을까. 그러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