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피하며 화장실에 간다. 거울을 보니 라운드 숄더가 심하다. 샤워를 하기 전에 손을 여기저기 뻗쳐보는데 어깨가 걸린다. 어깨를 펴본다. 쉽지 않다. 스트레칭이나 교정 운동을 하면 좋아진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귀찮을까. 물을 튼다. 아. 여기저기 달라붙은 때 같은 귀찮음아 씻겨져라.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나를 볼 때마다 어깨를 펴고 다니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라운드 숄더로 고생할 것을 예측하고 계셨던 걸까. 별난 선생님이긴 했다. 종례시간에 종례를 끝내기 전 아이들과 명상을 했었다. 아이들은 명상을 싫어했었다. 보통 그 나이 때는 자기 자신에 부딪히는 것보다 외부와 부딪히는 것이 더 재밌고 멋있다 생각하니까. 나는 좋지도 싫지도 않았던 시간이었다. 외부도 내부도 나에게 좋은 도피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년에 깨달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혼자 골방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기를 소망했다. 그래도 명상 시간에 선생님의 애정 어린 목소리는 좋았다. 진정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집중하길 바라는 목소리.
샤워를 하고 나와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발로 밀쳐내고 공간을 만든다. 가볍게 스트레칭한다. 저항하는 어깨를 느낀다. 단번에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2학기가 시작하는 개학식 날 선생님은 휴직을 하셨다. 골반이 주저앉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담담하게 작별을 고했다. 그러며 나를 불렀다. 부축을 해달라고 하셨다. 선생님을 부축하며 엘리베이터로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걸음마다 고통스러워하셨다. 이렇게 아픈데 굳이 작별 인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선생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통증을 참으시기 힘들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게 어깨를 펴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깨가 뭐라고 마지막까지 그러셨던 걸까.
스트레칭을 대충 마무리하고 눈을 감는다. 우주나 내부로의 여행은 모르겠지만 나는 곧잘 골목들을 상상하며 걸을 수는 있게 되었다. 집 밖으로 나간 것만으로도 발전 아닐까. 어깨를 다시 한번 펴본다. 선생님이 말한 어깨를 펴는 일은 당당해지기 위한 준비 동작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명상을 위해 눈을 감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선생님은 도망갈 수 없는 내 기질을 알아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위축이라도 되지 말라는 말이었겠지. 자세가 태도를 만든다고 말을 어디서 들은 적 있다. 이제라도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야겠다. 매일 글을 쓰면서 마음 어깨는 많이 펴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