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이기적인 농담

2021-01-15

by 조매영

응급실에서 지인이라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었다. 아무렇지 않게 병을 이야기했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신입생 시절 나는 게으른 천재라 생각했고 천재면 요절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었다. 응급실에서 태연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올 것이 왔구나라는 마음이 컸다. 친구 몇은 내게서 죽음을 봤는지 울었고 몇은 농담을 봤는지 병원에 확인 전화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라고 전화를 그렇게 돌렸나 싶은데 당시엔 친구들의 반응이 관객 같아 무대의 배우가 된 느낌이라 즐거웠다.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듣고 현실로 오기 전까지만 말이다.


군대에 있을 때 책을 보내주던 누나가 했던 말이었다. 치열하게 시를 썼고 치열하게 시를 이야기했던 사람이었다. 누나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나는 진심으로 괜찮았다. 시를 잘 쓰게 되려고 그러나 봐요. 농담을 던질 정도로. 누나는 농담에 대답이 없었다. 정적 속에서 농담을 섞인 말을 두어 개 더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나는 울면서 말했었다.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그게 지금까지 누나와 마지막 통화였다.


시는 시고 너는 너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현실 속 죽음은 이 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과를 하고 싶지만 어느새 번호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 버리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농담 이후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괴롭다.


관계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최초로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마음이 든 것은 여섯 살 때였다. 낮잠 시간이었고 형광등을 보니 형광등이 돌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 눈을 뜨니 응급실이었다. 맨발이었고 눈이 부셨다. 가벼운 검사를 했고 엄마에게 업혀 퇴원했다. 경기였다. 나중에 들으니 잠을 자다 눈이 뒤집힌 채 발작을 했고 거품을 물었고, 담임 선생님은 당황해 어쩔 줄 모르다 구급차를 불러 신발을 챙길 새도 없었다고 했다. 내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그렇게 오열했다고 한다. 얼마 안가 선생님은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다.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고 별 다른 마음이 없었다. 없었는데 선생님이 동네 마트 계산원으로 계신 것을 보니 별 마음이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직종을 바꾸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선생님이 아닌 모습이 어린 나는 충격이었다. 나 때문에 우리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아는 척도 하지 못했다. 그 날부터 지옥은 어두운 곳이 아니라 너무 밝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했다.


의도치 않은 일에 대응하는 것은 어렵다.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황해서 발만 동동 구르다 보면 마지막 기회는 끝나 있었다. 갑자기 유령이 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은 차분해진 채 사방을 살펴볼 수 있어야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조금씩 객관적이 된다는 것이다. 여섯 살의 나는 그렇다 쳐도 22살 병에 걸린 나는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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