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 폭설이 내렸다. 액상제설제 기계는 고장 났는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언덕을 오르다 넘어졌다. 무릎도 다 까졌다. 욕하며 둘러보니 세상이 참 하얬다. 순간 넘어져서 머릿속이 하얘진 줄 알았다. 고양이가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던데 잘 살아남았구나 장했다. 너나 잘하라는 것처럼 생채기가 쓰라렸다. 몸은 내게 너무 냉정하다. 두 번 오르고 한 번 미끄러졌다.
눈이 오면 자동적으로 제설제를 흩뿌리는 기계. 겨울 한 철 일하는 친구인데 오래 쉬었는지 작동하지 않았다.
달동네가 재개발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쪽으로 밀려났다. 엄마는 절대 북쪽으로 갈 수 없다 했다. 서울에서도 먹고살기 힘든데 경기도까지 밀려나면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다. 동생들과 나는 어렸고 아빠는 한 달에 두어 번 일용직을 나가던 시절이었다.
겨우겨우 재개발 현장 바로 옆에 허물어질 것 같은 집에 전세로 들어갔다. 집 밖에 나가면 바로 안전막이 보였다. 안전막은 이름뿐이었다. 공사가 끝난 시간대에는 안전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놀았다. 우리는 박하잎을 따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겨울에는 쌀포대 자루를 들고 눈썰매를 타기도 했다. 우리는 가난을 몰랐지만 재미는 알았다.
집에 들어와 가방을 두고 헐레벌떡 연고를 발랐다. 다시 나와 차들이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가 일부로 미끄러졌다. 양 팔을 퍼덕거리며 놀다 보니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