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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의 마스크를 비집고 나오는 슬픔이 아팠다.

코로나 시대 비말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술은 없는 걸까.

by 조매영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5년 만에 가는 장례식장이었고 10년이 넘게 왕래가 없던 이의 어머니 장례식이었다.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지하철에서 장례식장 예절을 검색했다. 절을 하는 법을 검색했을 때에는 왼 손 위에 오른손을 포개면서 고개도 숙여봤으며 왼 발을 까닥 거리기도 했다. 아무리 배우고 복습해도 불편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장례식 예절을 가르쳐주는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가는 거라 회색 맨투맨 티셔츠 위에 검은 롱 패딩과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복장이 마음에 걸렸다. 집에 들렀다 가야 했었나. 하지만 집에 가도 마땅한 수가 없다. 집에도 검은 정장이 없었다. 검은 맨투맨 티셔츠만 있었다. 검은 맨투맨이라도 입었어야 했나. 지하철은 달리고 있었고 돌아가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외투나 모자 등을 벗고 인사드리는 게 예의라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면 롱 패딩을 벗지 말아야지. 아무리 더워도 벗지 말아야지. 장례식 예절을 복습하는 틈틈이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넘게 왕래가 없었는데 가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맞는 말이다. 처음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잠시 하긴 했었다. 브런치를 쓰기 전이었다면 10년 이상의 시간은 관계가 증발했을 시간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브런치에서 내가 마주하는 시간은 10년 이상의 시간이었지만 쓰는 순간만큼은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만나지 않은 시간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같이 투병했던 해군 원사님의 사모님과 나눴던 대화였다. 원사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주일에도 조상(弔喪)은 빠지지 않으셨다고 했다. 경사는 축의금으로 행복을 함께 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잃은 마음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 했다. 사모님은 나를 걱정해 해군 원사님 장례식장을 부르지 않으셨다. 장례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부고 소식을 알려주셨었다. 가지 못했던 게, 그게 마음에 항상 걸렸다.


장례식장에 들어서기 전 코로나 방문자 명단이 지역구와 번호를 작성했다. 평상 시라면 아무 생각이 없었던 명단 작성이었는데 배경이 장례식장이 되니 코로나를 해치고 내가 여기까지 왔다 생색내는 기분이 들어 좋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불편한 기분은 초라함으로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정장은 아니어도 단정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롱 패딩은 그렇다 쳐도 청바지가 마음에 걸렸다. 지하철 내내 되뇌던 장례식 예절도 백지가 되어 버렸다. 조문 인사를 드리는 동안에 무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위로를 드려야 했는데 당혹감만 보여드린 것 같아 죄송했다. 위로를 해야 하는 순간에도 나는 나만 보고 있구나 싶어 도망가고 싶었다.


식사 중인 사람들을 빼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수화를 하는 분들은 표정이 억양과 어조의 역할을 한다던데 그 생각이 하니 더 슬퍼졌다. 코로나는 슬픔의 억양도 어조도 반이나 지웠구나. 상주의 슬픔을 모두 나눌 수 없겠지만 그 마저도 반 이상을 뺏겼구나. 코로나가 지긋지긋하다고만 생각했지 잔인하다고는 처음 생각이 들었다. 육개장을 먹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이라던가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상주의 마스크를 비집고 나오는 슬픔이 아팠다. 비말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술은 없는 걸까.


돌아오는 길 지하철이 계속 연착됐다. 위로 문자를 보내고 싶었는데 마땅히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신기해졌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 마스크가 타인의 비말을 차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끔 오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멍 때리다 환승역 보다 한 정거장 더 앞에서 내렸다. 롱 패딩을 밑단을 보니 먼지가 묻어 허옇다. 몰랐다. 이제 괜찮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겠지. 집에 도착해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우니 과거라 생각했던 내 슬픔들도 밀려온다. 월급이 들어오면 이번엔 꼭 검은 정장을 하나 사야겠다. 경사 때만 쓸 수 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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