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초등학교 앞에 보호자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신기했다. 내가 어릴 적엔 교문 앞에 어른들은 학원을 데리고 가야 하는 어른이거나 학원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어른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매일 1교시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갔다. 등굣길에 있던 슈퍼 앞 오락기를 지나칠 수 없어서였다. 우연하게도 돈이 항상 주머니에 있었다. (준비물 사야 할 돈이긴 했지만) 한 판만. 딱 한 판만 하려고 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그 한판이 항상 끝판왕까지 갔다. 교실에 늦게 들어가도 선생님은 반겨주셨다. 97년도였다. 선생님은 때릴 수 있었다. 때려도 누가 크게 뭐라 하지 않는 시대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때리지 않았다. 맞았다면 온 동네에 오락기나 오락실을 배회하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갔겠지.
공개 수업에도 학부모 상담에도 엄마는 학교에 올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1학년 내내 그런 줄 몰랐다.
학교 앞은 유혹 천지였다. 300원 5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분식들 문방구 앞에 있던 오락기들 돈이 없어도 오락기를 구경하는 게 참 재밌었다.
월드컵을 앞둔 어느 날 하굣길이 시끄러웠다. 어제 트럭이 오락기에서 구경하던 아이들과 오락하던 아이들을 들이박았다고 했다. 기자들은 앞다투어 어른들과 아이들을 인터뷰했다. 어떤 어른은 매년 이런 사고가 있었는데 여태 어디 있다 왜 이제 왔냐며 역정을 냈다. 기자에게 질문을 받는 유난히 창백한 아이도 눈에 띄었다. 사고 난 아이의 누나였다. 아이의 심정을 도대체 왜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저학년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보호자들 보며 사회가 울타리를 두는 방식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방임이 방임이 아니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창백한 얼굴의 아이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일은 없겠지. 그런 기자가 있다 해도 보호자가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