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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함께 일 수 있나요

by 조매영

언젠가 한 미술가에게 메일이 온 적 있다. 다매체 미술가라 자신을 소개한 그는 친구가 트위터에 남긴 글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지인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싶어 연락을 했다고 했다. 글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구는 더 이상 대답을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화를 낼 수 없었다. 글은 대답을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화를 낼 수 있는 걸까. 함께라는 말의 의의를 알 수 없었다.


미술가에게 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답장을 보내기 전 친구와 주고받았던 카톡을 찾아 읽었다. 투병 카페에서 알게 된 먼저 죽은 동생에 대해 나눈 것이 눈에 띄었다.


죽었으면 걍 보내자. 시 속에서까지 어디로 나오게 하지 말고. 걘 이승이 좋겠니. 몇 년 아프다 스물도 못되어 죽었는데.


어제 지 동생 꿈에서 친구들 좀 자기 뿌린 대로 놀러 오라고 하랬단다.


울 오빠는 꿈에도 한번 안 오던데 ㅇㅇ은 이승이 좋은 게로구나


나는 허락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한이 없었다. 미술가가 내게 구한 허락에 대한 답변으로 친구가 내게 보냈던 카톡을 공유했다.

좋을 대로 하라지. 미술가 선생. 스스로 판단했으면 스스로 다 책임지라지. 나는 같이 책임져줄 수 없어. 손 끝에 맴돌았지만 그렇게 쓰지 않았다.


미술가가 뭐라고 이해하든 상관없었다. 뭐든 그게 답이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었다.

친구는 누군가에게 이승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쳤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이승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비쳤을 테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이승을 좋아해서 싫어했다. 싫어해서 좋아했을 수도 있고 뭐라고 판단해도 훗날 친구에게 욕먹을 것 같았다. 카톡을 공유했다고 욕먹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걍 보내는 일도 쉽지 않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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