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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길을 잃지 않는다

스마트폰 때문일까 어른이 되어서 그럴 걸까

by 조매영

이제는 길을 잃어도 울지 않는다. 더 이상 울면서 왔던 길을 돌아가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스마트폰을 꺼낼 뿐이다.


처음 길을 잃었던 날을 기억한다. 다섯 살이었다. 동네 친구와 놀던 중이었다. 소꿉놀이도 술래잡기도 지겨워졌던가. 동네 친구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걸었다. 계단을 내려가고 언덕을 내려가니 평평한 길이 나왔다. 엄마 없이 처음 나온 평평한 길이었다.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고 평평한 길을 혼자 걷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는 걸었다. 길을 따라 걸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동요도 부르며 걸었다.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평평한 길은 어른들만 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가기 위해선 어른들이 항상 곁에 있어야 했다. 아무도 우리에게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귀여워하지 않았다.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우리 힘으로 온 세상 어린이들을 모두 친구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옷가게 앞에 멈췄다. 쇼윈도 너머 청록색 원피스를 입은 마네킹을 봤다. 친구는 저 옷이 입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저 옷을 입는 것이 보고 싶어 졌다. 엄마, 엄마가 생각났다.

뒤돌아보니 처음 보는 동네였다.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친구는 상상 속에서 청록색 원피스를 입고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느라 바빴다. 나는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는지 팔을 잡고 돌아가자고 해도 친구는 요지부동이었다. 함께 왔던 길을 혼자 돌아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았다. 울음이 나왔다. 울음은 소리 낼 수 없는 것, 소리를 낸다면 어디선가 손바닥이 날아왔었다. 아랫입술을 물며 걸었다. 낯선 풍경이 인상 쓴 채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은 채 걸었다. 토끼 똥처럼 눈물이 떨어졌다.

걷다 보니 파출소가 보였다. 파출소 앞을 서성였다. 봐주세요. 도와주세요. 말하고 싶었지만 파출소 앞에 올 때까지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다. 순찰을 나가려고 나온 경찰관이 나를 발견해주었다. 파출소 안에서는 누구도 운다고 내 뺨을 때릴 수 없었다. 파출소 안에서 나는 큰 소리로 울었고 과자를 먹었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재롱 피우는 모습에 나이가 지긋한 경찰관은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자며 귀여워했다. 그간 고생에 대한 보상 같았다. 집을 묻는 경찰관들에게 집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내 재롱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의 미아 신고 덕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친구는 그 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소식도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모른다고 했다. 그 동네에 그런 친구는 없었다고도 했다. 나는 분명 그 아이와 걸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어디로 간 걸까. 사람의 기억 속에서도 친구는 혼자 멀리 걸어가버렸다.


코로나가 터지기 얼마 전 엄마와 베트남 다낭에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를 호텔에 재우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무작정 걸었다.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 덕분에 어느 길도 낯설지도, 벽이 되지 못했다. 이제는 길을 잃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도로시도 엘리스도 길을 잃고 새로운 가능성을 얻었지. 어디에 가도 낯설지 않다. 이제는 탐험이 불가능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엄마는 애가 탔겠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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