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에 치과에 다녀왔다. 양치를 잘 안 하냐고 혼났다. 밥을 먹고 꼬박꼬박 양치하고 아침저녁 가글도 빼먹지 않았는데 억울했다. 더 억울한 건 입 벌린 채 누워 있느라 변명도 못했다는 것이다.
저번 진료 때 지켜보자 했던 충치가 더 심해졌다고 한다. 치료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다음에 있을 충치 치료 금액을 물으니 사십만 원이란다. 정말 내가 양치를 잘 안 했던 걸까. 내가 양치 한 시간은 꿈이었던 걸까. 양치를 한 것이 아니라 했다고 믿기만 한 것은 아닐까. 차라리 양치를 잘 안 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다.
브런치에 하루 두 편의 글을 쓰면서 어떤 고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밀도가 낮았고 어떤 고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밀도가 높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신했던 일들이 쓰고 나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고통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 글에게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당시의 나를 놓아두는 데 집중했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나 무기력한 겁쟁이였나 싶을 때도 있었다. 글을 쓰며 화를 낼 때도 있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거리 조절을 실패한 것이다. 이제는 화를 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현재의 나라는 것을 알아서 입을 꾹 다물고 쓴다.
친구에게 유년의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언젠가 친구가 내게 네가 만든 이야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화를 냈던가. 치과 선생님에게 혼났을 때 속으로 자기 합리화했던 것처럼 친구에게 변명을 했을까. 항상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데 불리한 것은 잘 잊어먹는 것 같다. 아마 나는 유년의 이야기를 하면서 격앙되었을 것이다. 내가 내 화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거리 조절에 실패해 어떤 추태를 부렸을지 생각만 해도 부끄럽다. 격앙된 목소리는 어떤 설득력도 가지기 어렵다. 더욱 담담해져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실패의 연속이라고 했다. 실패의 연속이라는 말을 불가능이라 생각되어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조언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내게 화를 내도 합리화는 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실패의 왕이다.
그러니까 치과는 정말 이번 치료를 마지막으로 옮겨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양치를 잘했다. 이 글을 쓰기도 전에도 양치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합리화할 것도 없다.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