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아파트 지하에 내 기억이 있다

2021-02-07

by 조매영

나는 지금 본가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브런치를 하면서 할 시간이 없어진 닌텐도를 본가에 주려고 왔다.

오랜만에 본가에 온 기념으로 전에 돌아다니던 곳을 걸었다. 재개발로 인해 예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굳이 흔적을 찾자면 경사 정도랄까. 골목이었던 대로변을 걸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아파트가 큰 묘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아래에는 까치 문방구가 있었다. 까치 문방구에는 까치는 없었지만 오락기가 있었다. 오락을 하는 날보다 뒤에서 뒷짐 지고 구경하는 날이 더 많았다. 까치 문방구는 현대 미용실 가는 길 중간에 있었다. 어느 날은 머릴 자를 돈인 오천 원을 쥔 채 뒷짐 지고 오락을 구경하다 오천 원을 강탈당한 적도 있었다. 열심히 쫓았지만 도둑은 더럽게 빨랐다. 도둑이 도망간 곳도 아파트가 들어섰다. 주저앉아 울던 골목은 누군가의 방이 되었다.


아파트 상가 아래에는 현대 미용실이 있었다. 매번 갈 때마다 스포츠머리를 했다. 다른 미용실에 비해 가격도 쌌고 아주머니가 친절했다. 마무리에 면도날을 쓰지 않아 좋았다. 미용이 끝나면 요구르트를 줬다. 집으로 가는 길 뒷덜미가 간지러웠지만 요구르트를 마시면 참을 만 해졌다. 아파트 상가에는 현대 미용실은 무슨 그냥 미용실도 없었다. 현대 미용실의 저주가 아닐까. 현대 미용실 자리는 현대 미용실에게만 어울린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내가 사랑한 골목의 풍경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골목은 기억에만 존재한다. 그들 꿈속에 가끔씩 낯선 골목이 나타나도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에서 낯설다 생각 드는 길은 모두 자신이 누운 자리의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밀려온 사람도 밀려간 사람도 아무 잘못 없지. 그래도 자꾸 아파트가 묘비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네. 유령처럼 골목이 자꾸 아파트를 뚫고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네.


돌아오지 말아야지. 매번 다짐해도 혹시나 남은 무엇이 있을까 싶어 다시 찾아오게 된다.

태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놓여 있는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내 유년도 모두 거짓말 같아져서.

뭐라도 있을까 돌아와, 눈으로 온갖 것들을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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