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옷이 날개라면 나는 날개 잃은 천사

2021-01-28

by 조매영

날이 추운데 입을만한 옷이 없어 기모 맨투맨을 하나 주문했다. 옷을 주문하는 일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누군가는 월급을 받으면 월급의 얼마는 옷을 사는데 투자한다는데 나는 괜히 그 돈이 아까웠다.


어렸을 때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녔다. 친구나 주변 어른들은 내가 열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는 열이 아니라 울음이 많던 아이였다. 아! 우는 일이란 몸이 끓어 올라 나오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세상에서 제일 열이 많은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왜 긴팔은 항상 금방 작아졌던 걸까. 엄마는 항상 왜 짧은 긴팔 옷을 얻어올까.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긴팔 옷들은 항상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내게 닿자마자 찢어졌다.


작년에 입었던 옷을 올해에도 입고 재작년에 입었던 옷을 올해에도 입는다. 그것도 모자라 십 년 가까이 된 옷도 올해에 입는다. 어렸을 때 엄마가 십 년을 넘게 같은 원피스를 입는 모습이 신기했었는데 이제 내가 그렇다. 나이를 먹고 자라지 않아 좋은 것은 옷이 작아 욱여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올해 유행 컬러와 스타일을 이야기한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로 항상 끝맺는다. 유행이 돌고 돈다면 유행이 뭔지 모르는 나도 항상 그 속에 있구나 싶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떡볶이 코트를 샀을 때를 기억한다. 중학생이었고 아무도 떡볶이 코트를 입지 않았을 때였다. 친구들은 모두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었다. 매일 노스페이스 먹구름에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그러기엔 노스페이스 패딩은 너무 뜨거웠다. 내 날개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옷이 그 사람을 표현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리 추워도 떡볶이 코트를 입지 않고 교복만 입고 다녔다.


언젠가 소설가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술을 마시다 말고 그는 사람들의 바지 밑단을 보는 취미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이상 성욕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바지 밑단은 무방비하다나 뭐라나 그랬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바지 밑단을 신경 쓰지 않아 다양한 개성이 보인다고 했다. 무심한 사람 세심한 사람 잔인한 사람 똑똑한 사람 멍청한 사람 등 조금은 알 수 있다고 했다. 괜히 신발로 바지 밑단을 정돈했다. 다 해져서 풀린 원단이 산발인 것이 느껴졌다. 그는 내 바지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두려웠다. 그가 차라리 이상 성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한 사이즈에서 두 사이즈 큰 옷을 주문했다. 이제 몸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데 습관이란 무섭다. 처음 옷을 샀을 때가 고등학생 때였다. 무얼 사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았다. 옷가게에서 아무거나 집어 제일 큰 것을 달라고 했던 것 같다. 옆으로나 위로나 한참 자라던 시절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랐었지. 그 옷도 한참 입었던 것 같다.


최근 옷을 잘 입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쓴 글을 읽었다. 가난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바지 밑단을 생각한다. 잘 입는 것은 내게 무리인 것 같다. 아무도 내 가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래도 더 이상 옷을 해질 때까진 입지 않을 것이다. 밉보이긴 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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