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똑바로 마주 보면 도움이 되는 숫자
가계의 재무제표를 만들기 시작한 시점을 확인하니, 2006년부터였다. 2005년에 신입생으로 대학에 입학해서 경영학 수업을 들었고, 2005년 하반기 반수준비에 실패하여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2006년에 회계원리를 배운다. 배우면서 참 유익한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대로 지식으로 썩히고 싶지 않아 바로 집안의 가계에 적용하여 다양한 재무양식들을 만들었다.
2006년 한 해는 처음 시작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2005년 2학기 휴학을 하고, 복학한 탓에 05학번보다는 06학번과 같이 다니게 되었다. 당연히 아웃사이더가 되어 조용히 학점이나 채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학기가 시작되고 나도 모르게 핵인싸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원리가 그런 것 같다. 지키려고 하면 잃고 포기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05학번이었지만 권위를 지키지 않았다. 그저 06학번 친구들을 마주치면 한 번만 놀아달라고 사정했다. 자존심을 포기한 것이다. 학교가 우선 재밌어야 계속 즐겁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웃사이더가 되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면 학교에 나오기 싫을 것 같았다.
늘 이야기하지만 20% 이하 확률로 간혹 가다 만나는 소시오패스만 아니면 대부분은 다 불쌍한 것을 가엽게 여긴다. 늘 먼저 자신을 낮춰서 들어오는 선배를 후배들은 다행히 따뜻하게 맞이해 줬다. 그렇게 그들 패거리로 받아들여주고 함께 놀자고 제안할 때면 꼭 잊지 않고 이야기했다. "아이고 놀아줘서 고마워" 그렇게 05학번은 같이 수업을 듣는 06학번과 친해졌다. 학우들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의 만족도도 올라갔고 그렇게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는 것도 즐거웠다.
그때 재밌게 들었던 수업이 회계원리이다. 당시는 가계 상황이 좋을 때가 아니고 소득은 낮은데 지출이 큰 어려운 시기였다. 여기에 맞물려 전편에서 진행한 다가구주택 탈출 스토리를 한창 몸소 체험하고 있을 때라 더욱 가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상태가 좋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을 꺼리게 된다. 하지만 곪으면 썩는다. 결국은 마주 보고 극복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시험에만 몰두하면 공부가 재미없다. 이때 들었던 수업내용을 현실에 적용하기로 결심했다.
회계지식들이 쌓일 때마다 하나씩 적용하여 가계에 대입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했다. 대차변의 뜻을 이해하여 돈이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나누어 매달의 결산을 한다면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 가능했다. 꼭 기업체에서 사용하는 프로세스에 딱 맞을 필요는 없었다. 지식을 단지 유용하게 현실에 사용해 보려는 호기심이 강했다.
2006년 처음 재무제표를 만들며 연 작성과 월 작성 양식들을 구분하여 나누었다. 본래 기업체에서 쓰는 양식과는 다른 점이 많다. 원리를 따와 당시 가계환경에 맞게 적용하다 보니 기업체처럼 사용되지 못했다. 여기에 지식의 한계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적용한 부분들도 많았다. 그렇게 월 가계부를 현금흐름표로 명명하여 매달 유입현금과 유출현금을 기준으로 가계부를 작성했다.
1~12월까지 1년 치 현금흐름표가 작성되면 다음 해 1월 1일 이를 바탕으로 손익계산서를 작성했다. 1년 동안의 유입된 현금을 항목별로 구분했고 지속적인 수입과 일회성 수입을 나누었다. 마찬가지로 유출된 현금도 동일하게 작성했다. 1년 치의 돈의 흐름을 한 장표로 작성하고 나니, 분석이 되기 시작했다. 어디서 아낄 수 있었고, 또 어디서 안 써도 되는 돈을 썼는지 확인했다.
바로 당시 가계를 같이 책임지고 있던 어머니와 상의를 하여 다음 해 예산을 수립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항목을 크게 식료품비, 외식비, 공과금, 통신비, 경조사비, 세금으로 나누었고 각 항목별 전년 사용금액을 토대로 올해 배정할 예산이 도출됐다. 당시는 긴축재정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라 사실상 줄일 수 있는 것이 식비였다. 엥겔지수가 이미 굉장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다른 것은 줄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시 다세대 건물을 신축하는 것과 맞물려 큰돈이 대중없이 오고 가고 있었다. 은행의 대출을 받으면 현금이 크게 들어왔고, 이자가 나가며 매달의 현금흐름이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재무제표로 현금흐름을 관리하지 않으면 큰 구멍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매달의 현금흐름표와 대차대조표 [지금의 재무상태표]를 통해 보유현금의 원천과 예상 유출비용들이 사전에 관리되며 지출통제가 가능했다. 사람은 어쨌든 통장에 돈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헤퍼진다. 그래서 이게 내 돈이 아니고 부채라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주입해서 현실을 냉정하게 보도록 했다.
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지는 과정이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그 돈을 지키는 사람의 비율이 극히 낮은 이유는 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슴속에 품지 않은 채로 돈을 쥐기 때문이다. 돈은 물과 같아서 제대로 담아두지 않으면 위에서 아래로 돈이 흐르듯 줄줄 샐 수밖에 없다.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시점에 앞서 재무제표를 공부할 수 있게 되어 다세대 주택을 신축하는 사업을 하는 동안 수입과 지출관리를 현명하게 하여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06년 시작된 재무제표 작성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어머니 통장을 바탕으로 작성했던 프로세스는 시간이 지나며 내가 독립함에 따라 어머니 통장과 내 통장을 나누어 따로 작성해서 물리적 독립과 화학적 독립을 함께 이루었다. 재무제표를 따로 나눔으로써 재산에 대한 인식도 독립적으로 나뉘어 이전에 어머니 자산을 토대로 이룬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 철저히 어머니의 재산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나와 동생은 독립 시 제공되는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 외 모든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내려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도 어머니는 손주의 용돈을 넉넉히 챙겨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아들들은 의존적이지 않고 철저히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소통하고 한다. 만약 이때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면 어설픈 종속관계에 놓여 서로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재무제표를 독립하고 재산을 독립적으로 관리하며 과도한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음으로써 삶에 독립성을 제대로 갖출 수 있었고 어머니에게 떳떳하게 오늘 밥값 좀 내달라고 요구하는 자식이 되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처음부터 시작해도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었다.
2013년 취업을 기점으로 재무제표를 독립했다. 이래로 매년 1회씩 작성되는 재무상태표[이전의 대차대조표]를 통해 1년간의 경제적 성취를 확인한다. 현금이 아닌 자산의 형태는 지속적으로 평가액이 변동이 있기 때문에 목표를 수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신 통제가 가능한 영역인 수입과 지출을 손익계산서 및 현금흐름표로 지속적으로 관리 통제하여 통제불가능한 재무상태표 영역의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재무제표 관리로 인해 돈을 안정적으로 가슴속 그릇의 담아놓으니 외부환경에 크게 흔들릴 일이 적다. 주식에 투자하든, 부동산에 투자하든 단기적 변동성에서 평정심을 지킬 확률이 올라간다. 꾸준하게 하던 것을 습관화하여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두면 단순히 재무제표를 기록하는 행위에서 효용을 얻는 것보다 삶 전체에 안정성을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된다.
단순 숫자를 넘어서 삶의 태도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