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25년의 습관을 통해 알게 된 꾸준함의 중요성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있다.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다. 지금도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몇 가지 유용한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려 해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그것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의 몰입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최소 1만 시간을 온전히 하고자 하는 분야에 몰입해서 쏟아부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15세 무렵부터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갈 때, 매일 집에 배달이 오지만 아무도 읽지 않던 신문을 가지고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대단한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휴대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무료함을 달래주는 일종의 오락거리였다. 동아일보였는데, 두꺼운 신문을 다 가지고 들어가기 부담스러워 B면으로 끼워오던 얇은 경제면만 가지고 들어갔다.
당연히 처음에는 무슨 말을 적어놓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에겐 그저 활자를 읽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그 시간이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 쌓이면서 하루에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음에도 짧은 시간이 오랫동안 축적되며 어렵게 늘어놓은 경제용어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역사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우리나라 재벌 기업 가문의 역사는 로마역사만큼이나 흥미로웠다.
하나하나 찾아보지 않아도, 매일 나오는 기사들을 읽다 보면 일주일 전, 1년 전에 읽었던 기사내용들과 통합되어 내 머릿속에 거미줄처럼 재벌 가문 하나하나의 가계도와 사업들이 연결되었다. 이병철 회장의 삼성그룹이 한솔그룹, CJ그룹, 새한그룹, 신세계그룹, 보광(중앙) 그룹으로 분사된 과정이라든지 두산그룹이 소비재중심 사업에서 중후 장대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조정한 배경 등 각 계열사들의 사건별로 기사화된 내용들이 머릿속에 쌓이며 하나의 역사의 흐름으로 합쳐지는 경험이었다.
사실 이런 경험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 자문한다면 꼭 그렇다고 답변하기는 어렵다. 그저 흘러가는 잡지식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지식 자체를 넘어서서 그렇게 시간을 쌓아본 경험이 중요했던 것 같다. 경험이 태도가 되어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몰입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게 해 줬다.
업무가 주어졌을 때, 단위만 보기보다는 단위가 전체 줄기에서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 확인한다. 줄기가 왜 시작됐는지 공부한다. 업무 전체 줄기를 시작한 이유와 작동원리, 이를 통해 업무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한 이후 일을 했다. 이렇게 하면 처음 하는 업무에서 실수확률을 낮출 수 있다.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면 이면에 놓치기 쉬운 단위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신없는 와중에 챙겨야 할 것들을 많이 놓쳤다. 하지만 놓친 업무는 인지 시점에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크게 허둥대지 않고 처리했었다. 그런 부분이 업무에 있어선 여유로워 보이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개는 이런 경우 일이 더 온다.
첫 직장에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3개의 영업팀이 하나의 부문 아래에서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처음 영업팀 중 한 곳에 배치되어 업무를 배정받았다. 내부 전산을 활용해서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데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군기 잡기였던 것 같다. 군대를 제대로 나왔다면 납작 엎드리고 욕먹으며 배웠겠지만, 군대를 나오지 못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다. 심지어 고등학교로 배치받아 혼자 일한 덕에, 군기가 빠져서 조직의 기강이 무엇인지 몰랐다.
내부 전산프로그램에 관련하여 3년 선배에게 질문을 했다. 예약확정을 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질문을 시작으로 굉장한 모멸감이 몰려왔고 동시에 엄청난 갈굼이 시작됐다. 첫 번째 질문 이후 다시는 질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3일 동안 질문하지 않고, 내부 전산 프로그램에 있는 수많은 항목을 하나씩 다 눌러보았다.
우리 팀과 관계없는 부서의 항목까지 어떤 프로세스로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지 전부를 확인한 이후 전산프로그램을 마스터했다.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군기반장역을 맡았던 선배는 놀랐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갈굼은 더 심해졌다. 결국 갈굴 땐 납작 엎드리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배웠다. 군대에서 배워야 했던 것을 첫 사회생활에서 늦게라도 마스터했다.
실무에 투입된 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일이 조금 익숙해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거래처와 소통하고 사업장과 협의하며 실적을 쌓아 나갔다. 그러던 중 팀장이 급하게 호출하여 3개 팀의 경쟁 PT가 있다는 것을 공유했다.
당시 부문의 수장이 새로 부임하며, 그동안 하지 않던 판매채널을 다각도로 시도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팀은 기업영업을 주로 하던 팀이어서, 홈쇼핑 진출은 팀업무 핏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3개 팀의 경쟁 PT를 통해서 운영팀을 선정한다는 부문장의 지시에 마지못해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구든 성가시고 실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젝트를 받는 걸 꺼려한다. 팀의 막내였던 내가 그 업무를 떠맡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었다.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시 홈쇼핑 회사들의 상황은 그동안 신문지면을 통해 보았던 대기업들이었기에 잘 알았다. 홈쇼핑의 역사부터 공부하여 주력 시청층까지 파악해 나간다. 업무시간에는 기존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시간 이후에나 준비가 가능했다. 준비기간 동안 매일 막차를 타고 집에 갔다.
결국 발표일이 다가오고, 사실 온라인영업을 주로 하던 팀이 이미 내정이 되어있던 사업이었다. 부문장이 쇼맨십이 있어 사업권을 사업부 발표대회를 통해 판을 키워보자고 한 것이었다. 실제 사업에 대한 경연이라기 보단 회사에 사업부를 부각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다. 그래서 우리 팀은 막내에게 발표를 맡기고, 다른 팀은 거의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내정된 팀은 굉장히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열심히 준비했다. 소비자층 분석부터 대학시절 배운 마케팅 도구를 최대한 활용하여 발표를 마쳤다.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1등을 했다. 부문장과 팀장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간부들의 회의가 긴 시간 이뤄진 끝에 내정된 팀과 우리 팀이 동시에 홈쇼핑 론칭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기존업무의 조정 없이 홈쇼핑사업까지 담당자가 돼서 떠맡았다. 결과적으로 우리 팀은 처음 기획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좋아 TV홈쇼핑에 론칭이 확정됐다. 심야 황금시간 대 방송으로 3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 내정 팀은 사업성이 낮아 온라인 판매로 운영이 확정되고 3,000만 원의 매출로 마무리 됐다.
지금도 신문은 매일 루틴으로 꾸준히 구독하고 있다. 20살이 됐을 무렵 동아일보가 아닌 매일경제로 신문을 바꿨다. 정독을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처음 읽을 때는 어렵고 지겨울 수 있으나 꾸준히 읽다 보면 임계치를 넘어서는 시점이 온다. 그 시점이 넘어가면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고 토막기사들이 머릿속에서 연결되어 하나의 망을 형성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경험은 사는 데 있어서 좋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25년간의 습관을 통해 배운 이 태도를 계속 유지하며 지금도 루틴을 하나씩 늘려나간다. 매일 글을 조금씩이라도 써나가고, 투자자산의 상황을 점검하고, 매일 만보 이상을 걸으며,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동기부여를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건강한 루틴을 확장하고 있다. 예전처럼 대단한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지는 않지만, 작지만 소중한 경험들을 하나씩 쌓아나가며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건강한 습관을 만든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온전히 지켜나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