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부자의 만남

by 경자호

만삭의 아내를 두고 출장을 서두르다.

어머니와 동생의 배려로 새로운 집에 이사했다. 이사 과정에서의 작은 사건을 제외하면, 입주 후에 불편한 것 없이 잘 적응했다. 많이 낡긴 했지만 확실히 전에 살던 집보다 면적이 넓어서 생활에 만족했다. 아내가 혼수로 해온 TV가 너무 커서 좁은 거실에서 화면을 보기 어려운 것이 유일하게 불편한 점이었다. 덕분에 비싸고 큰 소파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었다. 소파까지 들여놨다면 정말 코앞에서 TV를 시청해야 했다. 대신 아내가 마련한 좌식방석이 충분히 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착한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이가 태어난다. 방이 안방 한 칸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내가 혼수로 해온 큰 침대 옆으로 아이의 침대를 두었다. 사방가드를 갖춘 범퍼침대를 장만했는데, 킹사이즈 침대와 범퍼침대를 테트리스 조립하듯 끼워 넣고 나니 다른 물건을 놓을 공간은 없었다. 그래도 원룸에서 시작할 생각에 막막했는데, 독립된 방 한 칸은 충분히 고마운 공간이었다.


아내의 예정일을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갑자기 경주출장이 잡혔다. 예정일이 가까워 불안했지만, 정말 중요한 거래처가 내부검토 끝에 최종 현장답사를 오기로 한 상황이어서 꼭 가야만 했다. 아직 예정일도 충분히 남아 있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1박 2일로 재빨리 다녀오기 위해 신경주로 가는 KTX를 예약하고 짐을 싸두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자고 있던 아내에게 인사했다.

"여보, 이제 나 다녀올게~, 푹 쉬고 있어"


아내는 눈을 뜨고 날 맞이 했다. 그리고 말했다.

"뭐가 좀 이상한데?"


양수가 터진 것이다. 아이를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상황을 마주했다. 바로 경주출장을 취소하고 현장에 직원들에게 VVIP 응대를 잘해주기를 수차례 당부했다. 거래처에도 급하게 연락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연신 송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통화를 끊었다.


경주의 현장은 지역색이 강하다. 영업에 적극적인 도움을 받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함께 협업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업무임에도, 현장에서 몸으로 하는 일이 고되다 보니 협조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늦게까지 같이 고생하며 쌓아온 신뢰였다. 그 신뢰로 오늘 같은 위급상황에 불편한 상황없이 협조를 받을 수 있어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투박한 소통방식이 걱정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를 부축하여 10년이 넘은 06년식 낡은 서민 3호(SM3) 조수석에 조심스럽게 앉히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처음 경험하는 일에 당황하여, 허둥지둥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의 의료진은 늘상 벌어지는 일처럼 침착하게 대응했다. 의료진이 아내를 먼저 병실에 눕히고 호흡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내가 편하게 도움받을 수 있도록 바로 장모님께 연락했다. 1시간이 지나자 장모님이 도착했고, 병실에는 나와 장모님 그리고 아내 셋이 함께 아이와의 만남을 준비고 있었다.


경주에서 연락이 오다.

아내는 진통이 길어지면서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런 모습을 나와 장모님이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오전시간이 지나가면서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거래처와 현장 담당자가 번갈아 전화가 오는 것이다. 워낙 중요한 사업 건이다 보니 협상했던 내용들에 대한 확인전화가 빗발쳐서 오는 상황이었다. 직접 갔으면 바로 현장에서 대응이 되었을 텐데, 갑작스레 병원에 와서 원격으로 소통하다 보니 몇 배는 힘들었다. 거래처 및 현장과의 통화를 번갈아 오가며 조용히 병실에서 숨죽여 대화중에 있는데,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내가 언짢아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전화받는 내 모습 뒤로, 거친 언어들이 병원에서 가르쳐 준 호흡법에 맞춰 아내에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함께 있던 장모님은 이 모습이 처음인지, 화들짝 놀라며 아내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다. 바로 장모님을 제지하고, 늘상 있는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안심시켰다. 아내는 고통을 참으며 위로받고 싶은데, 하루 종일 굽실대며 시끄럽게 통화하는 모습이 꼴배기 싫었던 모양이다. 양쪽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통화를 이어나갔다. 한참을 전화기를 붙잡고 씨름한 끝에 현장 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답사팀의 저녁회식만 처리해 주면 되었다. 답사 이전부터 현장 담당자와 저녁회식에 대해 소통을 여러 번 해두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제 온전히 아내에게 신경 쓸 수 있었다.


아내의 진통이 길어지며 8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제왕절개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했고 아내는 최대한 자연분만을 하기를 바랐다. 장모님과 상의 끝에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답사팀이 저녁회식을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데, 사전에 이야기된 식당이 이상하게도 불이 꺼진 것 같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현장에 전화를 했다. 현장 담당자는 확인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끊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전화가 오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거래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조심스레 가드듬고 수화기를 들었다.


충청도 느낌의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대리님, 여기 불이 다 꺼져 있고 아무도 없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최대한 공손히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 네네 제가 현장 담당자랑 통화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리님, 문이 잠겨있는데?"


숙였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네?? 아얘 잠겨서 안 열리나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목소리를 깔기 시작한다.

"네, 지금 서기관님 모시고 와서 서있는데, 못 먹는 거예요?"


거의 무릎이 땅에 닿아있었다. 절망적인 마음을 가까스로 감추고 속삭였다.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바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송구합니다."


순간 머리속에 천둥이 요동다. 답사를 내려간 거래처는 법무부 소속의 공무원이었고, 담당자였던 7급 주무관은 이번 현장 답사에 4급 서기관을 모시고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자리라 의전에 관해서 만전을 기해주기를 신신당부했었다. 주무관의 엄중한 목소리에 손과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바로 확인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현장 담당자에게 번개처럼 연락을 취했다. 아뿔싸 결국 경주가 사고를 친 것이다. 오죽했으면 만삭의 아내를 두고 직접 동행하고자 한 것이란 말인가?


현장 담당자는 태연했다. 기존 연수팀에 내가 전달했던 식사예약을 깜빡 잊고, 식음팀에 전달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주중에는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에 그대로 문을 잠그고 불을 끈 상태였다. 대형사고였다. 우선 해결부터 해야 했다. 사정은 알았고 지금 무조건 식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에 여러 번 이야기한 건이니 현장에서 해결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해결이 안 되면 본사차원에서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분명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현장 담당자는 난감해하며 확인해 보겠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로 다시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만 기다려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다시 연락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땀이 쏟아져 나왔다. 눈앞에는 아내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저 멀리 경주에서는 식당문이 열리는지 아닌 지 그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한참 후에 현장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다. 현장엔 다행히 주방인력이 남아있어 급하게 식당을 열고 답사팀을 응대했다. 겨우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주무관을 통해 연락을 받았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오마카세로 식사가 대접되어, 서기관님이 꽤나 만족해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행히 사업진행도 확정되어 큰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위기를 넘기자 다시 관심은 아내에게로 향했다. 아내는 여전히 진통만 할 뿐, 아이는 도통 나올 생각이 없다. 진통이 길어져 지쳐가는 아내를 안타까운 마음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부자의 만남

아내의 진통이 12시간을 넘어가고 머리의 삼분의 일쯤 간신히 내밀고 있던 가운데 결국 제왕절개를 결정했다. 결정 이후 아이가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의 고생이 허무할 정도였다. 삼분의 일쯤 내밀던 머리를 다시 반대로 끄집어내어 아이가 태어났다. 꼬깔콘 모양의 머리를 한 아이를 의료진이 내가 안을 수 있도록 건네주었다.


그때의 기분을 표현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감정표현이 서툴다. 감정을 잘 알아채지 못하고 둔한 편이다. 아이를 안았을 때도 무슨 기분인지 여전히 언어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다만 모양으로 설명하면 몽글몽글 솜사탕 같은 기분이었다. 아내는 12시간 넘게 진통을 하고 업무는 대형 컴플레인이 발생해 정신이 없는 가운데 모든 번뇌를 잊게 만드는 순수한 존재를 조우한 것이다.


가녀린 목소리의 아들이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야리야리한 몸을 조심스럽게 살살 흔들며 달래준다. 별 소용은 없는 것 같지만 뭔가 한 것 같아서 우쭐한 기분이 든다. 아이를 다시 의료진에 맡기고, 잠들어 있던 아내가 일어났다. 큰 일을 해낸 아내가 대견스러웠다. 고맙다는 말만 연신 내뱉을 수밖에 내가 할 일이 없었다. 장모님도 그동안 어리게만 보였던 아내가 어른으로 보였던 것 같다. 고생했다는 말을 따뜻하게 전달했다. 모두가 함께 큰 산을 넘은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아내가 험한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제왕절개를 한 덕에 병원에서의 입원기간을 조금 두고 나서야 병원과 연계된 산후조리원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아들이 태어나고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부자의 만남 그것은 '부자의 탄생'을 알리는 만남이었다.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기념사진을 위한 그녀의 집념은 새로운 사건으로 이어졌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