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화) 부자의 사진

by 경자호

사진촬영은 투쟁의 역사이다.

'부자의 탄생' 이후로 삶이 180도 바뀌었다. 가장 큰 선물임과 동시에 생활의 대가는 가혹했다. 아내와 집 앞 영화관에서 취미처럼 즐기던 심야영화 보는 일이 사라졌다. 영화관 아래 마트에서 여유롭게 즐기던 쇼핑도 필요한 물건만 급하게 집어 들고 후다닥 집으로 뛰어간다. 주말마다 즐기던 나들이는 언감생심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이가 열이 나면 세상이 무너진다. 연휴기간 365일 운영하는 약국을 찾아 온 동네를 누빈다.


밤잠이 깊어 잘 일어나지 못한다. 아이는 새벽마다 깨어 분유를 달라고 조른다. 세상모르게 자고 있으면, 이미 여러 번 깨어 아이를 돌보고,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아내가 이성을 잃는다. 한 번씩 뒤에서 세찬 발길질이 날아온다. 등에 뜨거운 감촉이 닿는 순간 벌떡 일어나 앞쪽으로 '탁', '탁', '탁' 세 발짝 내딛는다. 등 뒤로 오는 충격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여 통증을 최소화한다. 아내의 응원을 등으로 받고 방을 뛰쳐나와 서둘러 젖병을 찾는다. 아이 입에 재빨리 분유를 물린다. 오늘도 다투지 않고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없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바뀐 생활은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일상을 선사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한참 힘들었던 시간에 적응하며, 힘든 시간들을 소소한 일상으로 바꾸어 나간다. 힘겨운 시간이 일상이 되면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그저 똑같이 악을 쓰는 것만 같던 울음의 의미를 배워간다. 배가 고픈지, 기저귀를 갈고 싶은지, 그냥 심심한 건지 서로의 눈을 맞춰 느낌으로 대화하며 알아간다.


하루하루 부쩍 커가는 아이를 보며, '지금'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지나감에 대한 아쉬움도 커진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으며 삶의 행복을 느낀다. 아내는 그 소중한 시간을 모두 기록하고 싶어 한다. 만삭 가족사진부터 100일, 돌사진 등 사진을 찍어야 하는 기념일을 나열하며 기념사진을 사진관에서 찍도록 종용한다.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던 커플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딱 한 번 의견충돌이 있었다. 바로 스드메라고 불리는 결혼을 위해 필요한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당시 다른 부분은 타협했지만, 스튜디오에 대해서는 스냅사진으로 대체하자고 이야기했다. 청담동에 있는 스튜디오의 앨범가격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수백만 원씩 하는 가격의 일부를 줄여서 자본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퓨전 막걸리가 유행하던 그 시기, 을지로 뒷골목의 어느 막걸릿집에 마주 앉아 스튜디오 사진촬영을 원하던 아내에게 비용을 낮추고자 설득한다.


안경을 추켜올리며 논리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드레스랑 메이크업은 꼭 해야 한 면 하되, 대신 스튜디오는 생략하자"


금방이라도 목소리가 커질 것 같은 무서운 표정으로 말한다.

"스튜디오 사진도 있어야지, 우리 앨범 보고 추억해야지~"


여기서 물러서면 죽는다는 필사의 각오를 목소리에 담는다.

"매일 얼굴 보는데 스튜디오 사진이 왜 필요해?"

"결혼앨범도 있고, 정 남기고 싶으면 그냥 간단히 스냅사진으로 찍자"

"혹시 중, 고등학교 졸업앨범 봐?"


큰일이다. 목소리가 낮아진다.

"안 보지, 근데 그거랑 이거랑 같아?"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심정으로 논리적인 단어들을 쏟아낸다.

"스튜디오 앨범도 어차피 안 봐, 행복하면 안 봐"

"스튜디오 앨범을 보는 건, 불행해서 행복할 때를 기억하려고 보는 거야"

"내가 평생 행복해서 앨범 안 보게 해 줄게"


바로 영업의 신이 아닌가? 첫 영업부서에 발령받은 이레로 매해 120% 이상의 매출목표를 달성하던 설득의 신이다. 누가 들어도 설득이 될 수밖에 없는 논리적인 설명 끝에, 결국 엄청 비싼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결혼앨범 사진을 찍었다. 결혼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그냥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 다툼을 끝으로 플래너를 통해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모두 비싼 청담동에서 업체를 선정하여 진행했다. 아내와 플래너는 죽이 잘 맞았다. 그 어떤 의사결정에도 관여하지 못했다. 결혼식은 성대했다. 이후로 결혼생활 10년 동안, 아내는 정말 단 한 번도 스튜디오 앨범을 열어보지 않았다. 내 말이 맞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긴 투쟁의 승리

아내가 만삭사진, 100일 사진, 돌사진, 기타 등등 다양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기념일을 이야기해도, 나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어차피 결혼앨범처럼 보지도 않을 건데 비싸게 찍지 말자는 논리적 설득에, 아내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그때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100일 사진은 집에 있는 소품을 최대한 활용하여, 벌거벗은 아이를 아기의자에 앉혀놓고 아내가 직접 촬영했다. 촬영본을 코팅지에 뽑아 다이소에서 산 액자에 전시한다. 돌사진은 '숨고' 같은 곳에서 찾았는지, 굉장히 저렴한 비용에 사진기사를 집으로 모셔와 촬영했다. 이외에도 여행을 가거나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아내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고, 무적의 코팅지로 인화하여 그녀만의 앨범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사진관에서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아내의 강력한 요구를 맞닥뜨린다. 조리원에 있을 당시, 무료사진 촬영권을 받았고 그것을 사용하자고 했다. 분명 호의 속에 어떠한 상술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어 내키지 않았다. 싫은 소리 하기 어려워하는 성격 탓에 다양한 장소에서 아내와 가게 주인의 협공에 우물쭈물하다 패배한 적이 한두 번이란 말인가? 대부분의 과소비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됐고, 경험이 쌓이며 분명히 이번 촬영도 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촉이 발동됐다. 어떻게든 아내를 설득해야만 했다.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여보 그런 데서 무료로 하는 거 가봤지만 결국 다른 거 팔아먹잖아?"

"난 그런 상황자체가 불편해서 가기 싫어"


엄청난 내공으로 공격을 빗겨진다.

"어차피 무료잖아. 다른 거 권유해도 안 한다고 말하면 상관없어"

"무료로 찍을 수 있는데 아깝잖아?"

"일단, 예약 잡을게"


한 두 번 속은 게 아니다. 다시 한번 굳은 결의로 설득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또 액자를 사라고 하든 원본사진을 사라고 하든 뭐든 사라고 할게 분명해"

"그때 여보도 그냥 가만히 있잖아 둘 다 나만 바라보면서..."

"내가 겪어보니 레퍼토리가 다 비슷해, 그냥 안 가는 게 상책이라니까?"


숨겨진 의도와 그들의 영업 레퍼토리를 자세히 설명했다. 상술에 결코 넘어가지 말고 사진을 찍지 말자고 강력하게 거절한 끝에, 드디어...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진관을 향하여 거칠게 차를 몰고 있었다.


서민 3호가 사진촬영을 막아서다.

사진관은 홍대입구 옆 합정역 근처에 있었다. 한참을 투덜대며 강변북로를 달렸다. 당시 몰던 자동차는 서민 3호라는 별명을 가진 애마였다. 자동차를 사는 것이 목돈을 만드는 데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장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여 한동안 버텼지만, 지방출장이 잦은 영업보직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차가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차업체를 찾아 힘겹게 구한 첫차가 SM3였다. SM의 첫 글자를 따와 지은 별명이 서민이었다. SM3여서 3호가 된 것이다. 5만 km정도 운행한 2006년식 구형이었다. 구매 당시 시점이 2013년도였기 때문에, 합정을 향해 달리던 때의 서민 3호는 12년, 15만 km가 넘은 때였다. 겨울이면 배터리가 방전되고 여름에는 에어컨 성능이 시원찮아 바람세기를 2단 이상으로 올리면 오히려 뜨거운 바람을 내뿜던 열정 넘치는 애마였다.


한 번은 회사업무로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지하주차장을 내려갈 때, 계기판의 모든 곳에 불이 들어오며 갑자기 차가 멈춰버렸다. 지하에 내려와 시동을 끄고 다시 켜자 이상이 없어 일회성 문제로 여기고 가볍게 넘겼다. 아뿔싸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강변북로를 타고 합정으로 빠지는 길을 따라가는 찰나, 갑자기 액셀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밟아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유일하게 말을 듣는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다. 정신이 아득했지만 가족이 함께 타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눈앞에선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들이 경주하 듯 내달리고 있다. 서민 3호의 속도가 줄더니 이내 멈출 것 같다.


다급한 마음에 아내에게 소리쳤다.

"여보, 보조손잡이 꽉 잡고, 뒤에 아이 좀 봐줘"


영문을 모르는 아내가 말한다.

"왜? 무슨 일 생겼어?"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고 최대한 의연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 큰일은 아니고, 액셀이 말을 안 듣네. 차가 곧 멈출 거 같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아내가 불안에 떨며 외친다.

"지금 여기 강변북로인데, 멈추면 어떡해?"

"평소에 정비받으라고 했지?"


최대한 다정한 어투로 다독이듯 이야기했다.

"그러게 멈추면 바로 보험회사 전화할게, 일단 차를 안전한데 세워야 해"

"뒤에 아이 계속 봐줘"


다행히 내리막 경사로 된 강변북로 출구를 중력을 이용하여 느릿느릿 돌아 나와 합정역 사거리 7번 출구 앞 녹지까지 경적을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차들을 피해 힘겹게 기어와 멈춰 섰다. 노란색 안전지대 위 서민 3호는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보조 손잡이만 꽉 움켜쥔 채 아이를 보고 있던 아내가 긴장이 풀렸는지, 나를 돌아보고 옆에서 험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카시트에 앉아 아빠가 욕먹는 모습을 즐거운 듯 웃으며 지켜보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아이까지 타고 있었다. 앞으론 가족의 안전을 위해 꼭 정비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보험회사에 전화하여 견인차를 부르는 동안, 아내는 사진관에 전화하여 방문예약을 취소했다. 그렇게 우리의 사진촬영계획은 서민 3호의 고장으로 인해 끝내 무산됐다.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한편으론 액자부터 사진원본까지 예상되는 구매권유를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던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부자의 탄생' 이후 나의 목숨은 '나'의 것이 아닌, '가족'의 것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아이의 미래를 염려하는 아빠의 '선물'로 이어지는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