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경자호는, 어떻게 다가구 주택을 탈출했나?-1

3화) 다가구 주택을 빠져나올 결심을 하다.

by 경자호

다가구 주택이 무엇이길래?

다가구 주택의 사전적 의미는 공동주택이 아니며, 지하층 또는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의 층을 제외하고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3개 층 이하이며, 부설주차장 면적을 제외하고 1개 동의 주택으로 쓰이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660㎡ 이하인 19세대 이하의 주택을 말한다.


"그럼 왜 다가구 주택을 빠져나와야 했을까?"

다가구 주택은 대부분의 경우 환금성이 다른 주택유형에 비해 떨어진다. 다가구 주택과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주택 유형 중에 다세대 주택이 있다.


다세대 주택의 사전적 의미는 주택으로 쓰는 1개 동의 바닥면적이 660㎡ 이하이며 층수가 4층 이하의 공동주택을 말한다. 여기서 "이 비슷해 보이는 정의 사이의 차이점을 알겠는가?" 몇 가지가 더 있지만 핵심적인 한 가지가 공동주택의 여부이다.


공동주택이라는 정의의 차이로 인해 다가구 주택은 한 건물의 주인이 한 명 (공동명의는 있겠지만)이고, 다세대 주택은 세대별 구분등기가 되어 한 건물의 주인이 여러 명이 있다.


주인이 많고 적음이 무슨 상관 이길래 이토록 자세히 설명하냐 싶지만, 해당지역에 개발기대감이 생기면, 이 둘 사이에선 큰 경제적 차이가 발생한다. 이제 내가 겪었던 다가구 주택 엑시트 사연을 통해 어떻게 돈의 규모가 달라질 수 있는지 살펴보자.


마지막 남은 재산, 이거 하나인데...

아버지는 운이 좋았다. 해방 이후 그토록 어려운 시절, 당시 보기 드문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이었고, 할머니는 사업을 했었다. 아버지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할아버지는 지방출장 중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가 심정을 얘기했을 때, "이때의 충격이 그의 생에 큰 영향을 끼쳤구나" 생각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부자였지만, 늘 바빴다. 집에는 밥을 차려주는 식모와 장남인 아버지, 세 누나와 남동생이 함께 살았다. 조선시대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던 시기, 나이 많은 딸들은 아들들과 엄연히 구분되어 있었다. 집안의 모든 자원은 큰아들과 막내아들에게 나뉘어 상속되었다.


사업은 할머니의 나이가 들며 진즉에 접었다. 할머니가 한창이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을 여러 번 시도했다. 그때마다 결과는 부도였다. 유치장에 있는 아버지를 빼오기 위해, 할머니는 집안의 자원을 소진시켜야 했다. 이후로 할머니는 아들들의 깜냥을 알았는지, 자신의 사업을 정리하여 그 자원을 모두 부동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삼촌에게 넘겨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와 삼촌의 부동산 명의는 빠르게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의 이름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는 우리 집이 옛날에 부잣집이었다는 사실을, 집집마다 전승되는 오래된 전설처럼 들으며, 가난하게 자라야 했다. 할머니가 있었을 땐, 쌀이라도 보내줘서 끼니 걱정은 없었다던데, 언제부턴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것이 당연했다. 어머니는 극한으로 절약을 했고, 아버지는 이미 내가 초등학생 무렵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할머니가 물려준, 살고 있던 다가구 건물 한 채는 건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프고 나서 더 이상 새로운 일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살고 있던 집의 소유권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행히 겨우 내가 어른이 될 수 있었다.


뉴타운, 우리 동네는 공사판이었다.

서울 외곽의 다가구 주택, 지하철도 멀었다. 아파트가 대세가 된 세상에서 다가구 주택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지킨, 우리의 전 재산이었던 다가구주택에 대한 애착이 신앙처럼 강하게 자리 잡아, 그 집을 목숨처럼 지키고 있었다.


2007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의 낙후된 외곽지역 곳곳은, 이명박 시장이 뉴타운 구역으로 지정하여 집중개발함으로써, 강남과 그 외 지역의 균형성장을 목표로 공사 중이었다.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지역은 서울에서 굉장히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뉴타운 구역으로 지정되어 개발붐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추가구역이 지정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돌았다. 외곽지역에 크게 관심이 없던 투자자들이 하나둘씩 주변의 다가구 주택들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순한 투자자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우리 뒷 집을 산 디벨로퍼가 있었다. 처음엔 나도 영문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수 십 년간 뒷 집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 흰머리는 일부로 연륜을 위해 남겨 두었는지, 희끗희끗한 머리를 정갈하게 올백으로 넘긴, 한 중년의 남성이 새로운 주인이 되어 우리 뒷 집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철거과정에서 우리 집 마당과 지하에 크랙이 생겼고,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던 나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멋을 잔뜩 부린 이 디벨로퍼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 옆, 80년대 배경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오래된 지하 다방에서 담판이 이루어졌다. 입구에 들어서자 수십 년을 쌓아온 시간의 냄새가 긴 세월을 타고 내 코끝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러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중년의 디벨로퍼 앞자리에 당당히 앉았다.


나는 디벨로퍼에게 준비해 간 크랙사진을 보여주며, 자신 있게 따져 물었다.

"사장님, 철거과정에서 크랙이 갔고, 지금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의 온기가 귀밑에 내려앉은 시간만큼, 디벨로퍼는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듯했다.

귀찮은 어린아이 어리광을 달래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게 철거과정에서 생긴 증거 있나?"

"내가 보고 왔는데, 실제 건물 안전성을 해치는 수준도 아니야."

"이 정도는 문제없어"


어린아이 취급을 받을 거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철저히 분쟁이 생겼을 때 대응방안을 공부하지 않았던가?

디벨로퍼는 나에게 최후의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장님 그러시면 제가 크랙이랑 소음, 공해까지 전부 구청에 민원 넣어 공사중지 시키겠습니다."

이 당시 내가 알아본 바로, 구청에 민원이 들어가면 합의가 될 때까지 최악의 경우 공사가 중단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민원을 넣어 실제 공사가 며칠이라도 중단되면,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었다.


몇 가닥 내려온 앞머리를 올백으로 넘기며, 디벨로퍼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침묵이 약간의 시간을 소비하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300만 원 합의금을 지급할 테니, 추후 민원 없는 조건으로 합의하지."


이런 경우 합의금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었다. 다만 협상에 있어 처음 제시하는 금액을 듣고 그것을 덥석 잡아서는 안된다는 날카로운 촉만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금액을 올릴 충분한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고민을 하는 척,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 그 정도로 합의가 가능하죠."

"하지만 저희는 크랙이 마당, 지하 두 군데나 있어서 합의 후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실제 수리비가 들어갈 수 있으니, 그 부분까지 감안하여 500만 원에 합의해 드리겠습니다."


무거운 공기가 퀴퀴한 다방의 냄새를 품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 흘러나갔다.

디벨로퍼는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좋아, 어린 친구가 똑 부러지는구먼"

"그럼 그렇게 하지. 단, 합의서는 써줘야겠네"

"다음에 내 사무실에서 보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음 직한, 80년대 분위기의 낡은 다방 한가운데서 디벨로퍼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500만 원이라는 예상치 못한 전리품을 안고, 로마의 어느 개선문을 지나듯 당당한 모습으로 귀환했다. 나를 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한없이 가여운 아들에서, 늠름한 집안의 가장을 보는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렇게 약속 잡은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500만 원을 수령한다는 기쁨보다, 디벨로퍼가 어떻게 다가구 주택을 활용하여 돈을 버는지, 수익구조가 더 궁금했다. 호기심을 안은 채로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다가구 주택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22세 경자호, 디벨로퍼를 꿈꾸다.

사무실은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에 정갈한 올백처럼, 낡았지만 깔끔한 분위기의 오피스텔이었다.

적막한 입구의 차가운 현관문을 열자 디벨로퍼가 따뜻하게 나를 반기며, 자리를 안내했다.


그는 합의서와 도장을 가져오며 이야기했다.

"저번에 말한 대로, 여기 합의서에 도장 찍어주면 바로 500만 원 입금해 주겠네"


나는 합의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앞으로 동일한 건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네 여기 도장 찍어서 드리면 되죠? 바로 찍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도장을 찍고 그에게 건네며, 최대한 무심한 듯 툭 뱉으며 말을 했다.

"사장님, 그런데 여기다 어떻게 새롭게 집을 지으실 생각을 하셨어요?"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자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는 말을 시작했다.

"지금 옆동네 뉴타운 열풍인 거 알지?"

"그러면서 다음 개발이 될 입지에 집을 사두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알아?"

"그런데 말이야 이 지역은 다가구 주택이 많아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그랬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논리를 이러하였다. 다가구 주택은 660㎡ 이하 대지의 주인이 한 명이다. 이 경우 나중에 아파트가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을 사는 사람들은 너무 큰 물건을 목돈을 주고 사야 했다. 이런 투자는 효율성이 떨어졌다.


재개발 지역이 개발될 때 기존에 살던 집주인들에게 아파트 분양권이 나온다. 이때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부동산 소유 등기 당, 1개의 아파트 분양권이 나오는 것이다. 아까 다가구 주택과 다세대 주택의 차이를 설명하며, 주요하게 다루었던 개념이 공동주택 여부였다.


공동주택은 하나의 토지가 구분등기되어 대략 8명의 등기소유주가 존재하고, 이 경우 아파트 분양권도 8개가 나온다. 하지만 다가구 주택 같은 단독주택은 등기소유주가 한 명이고, 이 경우 아파트 분양권은 1개가 나온다.


"경제적 효용측면에서 이해가 되는가?" 물론 다가구 주택이 종전주택 감정평가에서 더 높은 자산가치를 인정받아 아파트 분양 시 추가분담금이 적거나 혹은 일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점은 있다. 하지만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자는 투자금이 적게 들어가는 물건을 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여기에 감정평가되어 받는 보상금보다 분양권 8개의 경제적 가치가 훨씬 더 높다.


디벨로퍼의 수익구조는 이랬다. 일반적인 다세대 투자자가 들어오기 전에 개발자가 먼저 진입한다. 가장 힘없고 지식이 부족한 원주민들로부터 아주 싼 값에 다가구 주택을 매입한다. 그 토지를 담보 삼아 은행에서 대출을 일으켜 기존 건물을 허물고 다세대 주택으로 신축한다. 추후 개발지로 묶여 아파트 분양권을 받기를 기대하는, 일반투자자들에게 각 한 채씩 분할 매각한다. 다가구 주택이었다면, 7~8억 원을 주고 분양권 1개를 받았을 투자자들은, 2억 5천만 원 이하의 투자금으로 동일하게 분양권 1개의 가치를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신축 다세대 빌라 1채의 전세금은 약 2억 3천만 원으로, 실제 들어가는 투자금은 2천만 원 이하로 서울에 등기 1개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나는 생각했다. 지금 현재 있는 집, 대지의 평수가 약 67평이었다. 20년이 넘은 낡은 다가구 주택을 지금 개발자들에게 판다면 8억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집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도 많았고, 이들의 전세 보증금까지 내주고 거기에 양도소득세까지 내고 나면, 사실상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5억 도 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내가 직접 개발을 하고자 결심했다. 당시 실제 거래되는 다가구 주택의 시세가 대지 평당 1,200만 원을 인정받기도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런 다가구 주택을 직접 개발하여 다세대 주택으로 신축하면 대지 평당 최대 2,500만 원까지 그 가치가 올라갔다. 보증금 반환 및 건축비를 계산했을 때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최대 매출 기준으로 잡았을 때, 17억까지 매출을 발생시키면, 보증금, 건축비, 금융이자 등을 계산해도 수익성 측면에서 훨씬 높은 수익이 기대되었다. 리스크관리 측면에서도 최악의 상황인, 한 채도 안 팔릴 경우에도 전세로 전환하여 임대하면, 새로 수령하는 보증금으로 기존 보증금 반환, 건축비, 은행대출 등을 상환하고도 현금이 많이 남도록 설계가 가능했다. 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이제 우리 집을 신앙처럼 여기는 어머니를 설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