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경자호는, 어떻게 다가구 주택을 탈출했나?-2

4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by 경자호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아버지는 내가 고3이 된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화장실이라도 갔다면 다행이었을까?" 반복되는 용변실수는 본인에게는 존엄성을 자식에게는 존경심을 무너뜨리는 촉매가 되었다. 10년이 넘는 간병으로 모두가 지쳐갔다. 요양원에 모시고 싶어도 매달 발생되는 현금비용을 감당할 돈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 하던, 대형마트의 판매직을 어른이 되고도 지속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였고, 나중엔 대형마트 하청의 인력업체 소속으로 들어가 20년의 세월을 한곳에서 보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일은 힘에 벅차기 시작했다.


당시 살고 있던 집은 20년이 넘은 낡은 다가구 주택이었다. 1층에는 세탁소와 이삿짐센터 사무실, 2층부터 3층까진 집이 3채씩, 4층에는 주인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이 낡지 않았던, 할머니로부터 이 집을 처음 받았을 때, 4층에 살았다. 큰 집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연대보증사고 그리고 뇌졸중까지 겹쳤다. 어느 순간 좁고 낡은 2층 구석집으로 밀려나 있었다. 어머니는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도 등기 하나만큼은 악착같이 지켜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갔겠지...


디벨로퍼와의 대화 후 우리 집을 철거하고 다세대 신축으로 분양한 상상을 하며 미소 지었다. 성공하면 비싼 값에 분양하여 큰 수익을 남긴다. 실패해도 신축빌라 전세는 잘 나가는 지역이다. 건축비, 금융비용을 전세보증금으로 보전하면 된다. 이건 되는 사업이었다.


22살의 나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있다.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겉보기에 가난한 듯 보이는 큰 사업가 친구 아빠를 보고, 부자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하는 책이다. 지금 부자아빠가 되기 딱 맞는 상황으로 여겼다. "이토록 가난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헌 집을 헐고 새 집을 짓는 일은 결국 우리가 놀이터 흙바닥에서 어렸을 때 하던 놀이랑 같았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다오~ 놀이를 하는 심정으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장땡을 쥔 타짜 마냥 이야기했다.

"엄마, 이번 뒷집처럼 우리도 지금 이 집을 다시 짓자."

노름꾼 아들을 둬서 전재산이라도 잃은 양, 어머니는 이야기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얘가, 저런 건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엄마, 이번에 저기 사장님이랑 얘기하며, 계산 끝났어. 이건 무조건 돼요."

어머니는 논쟁을 마무리하려는 듯, 비장하게 내뱉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군대나 가"


그랬다. 나는 미필자였다. 고3 때 아버지가 아프고 좋은 핑곗거리가 있었다. 병간호 때문에 공부를 못했다는 것이다. 수능을 봤고 서울소재 4년제 대학에 갔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동기도 없었고, 열심히 할 마음도 없었다. 그러다 깨달은 바가 있어, 대학 6개월을 다니고 반수를 선택했다. 반수의 공부기간은 6개월로 짧았다. 무식하게 공부했다. 하루 6시간 정도 자고, 깨어있는 시간은 공부만 했다. 시간과 돈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 점심을 굶었다. 184cm의 키, 몸무게는 54kg, 수능 이틀 전 응급실로 실려갔다. 기흉수술을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울고불고 매달려 산소호흡기를 끼고 버틴 후, 수능시험을 보고 수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반수에 실패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있었다. "인생사 모두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기흉이 내 삶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신체검사 재검을 통해 3급 현역에서 4급 공익근무요원이 됐다. 출퇴근이 있는 삶은, 편입을 해서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게 해 줬다. 다가구 주택을 다세대로 결국 신축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렇게 어머니의 "군대나 가"라는 엄포는 내가 공익근무요원이 되며 수포로 돌아갔다. 집요하게 어머니를 설득했다. 당시 20년이 넘은 다가구 건물은 여름이면 비가 샜고 겨울이면 보일러가 얼었다. 가뜩이나 가벼운 주머니를 주기적으로 털어갔다. 가난한 동네, 가장 낡은 집의 세입자들은 내일이 없었고, 어머니는 그들보다 더 강해야만 했다. 정말 지옥 같은 일상이었다. 더욱 집요하게 설득했고, 그렇게 어머니의 신앙심은 시험받고 있었다.


새집 다오~

나이 들어 감에 따라 어머니는 거친 사람들을 상대하며 집을 지키는 데 지쳐 있었다. "얼마 전 크랙사진을 들고 뒷집을 찾아가 500만 원이라는 전리품을 들고 온 큰 아들이 아닌가?" 누구보다 강하던 어머니는 듬직하게 커버린 큰 아들을 보며 신앙심을 내려놓았다. 어머니를 설득하고, 프로젝트를 맡기기 위해 뒷집의 디벨로퍼를 찾아갔다.


디벨로퍼는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단독주택을 매입한 후 다세대 주택을 짓고 분양하는 사업을 확장했다. 첫 사업이 뒷집이었다. 뒷집은 철거가 끝나고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 듯 보였다.


나는 긴장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사장님, 저희도 이번 기회에 다세대로 신축하고자 합니다."

디벨로퍼는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 지금 주변 뉴타운 사업으로 개발기대가 있을 때 하는 게 맞아"

디벨로퍼의 동조에 더욱 안심된 목소리로 물었다.

"기본적으로 공사비는 어느 정도 잡고 가면 좋을까요?"

"대충은 저도 알아본 부분이 있거든요."

디벨로퍼는 눈썹을 들썩이며 신중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알아본 금액으로 해도 되지만, 그래도 좀 더 넣으면 그만큼 더 신경 써 줄 수 있어"


공사업자가 빼가고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빼갈 수 있는 게 공사비용이다. 한참을 고민했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어차피 불리한 싸움을 한다면, 차라리 납작 엎드려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 나았다. 평당 건축비를 공사업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대신 건축재료 선택을 내가 주도할 수 있게 합의했다. 이익을 확실히 보장하는 대신, 건축과정에서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알아본 공사비는 평당 300만 원부터 380만 원까지 건축방식 및 자재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당시 최고가인 평당 400만 원으로 건축비를 정했다. 단, 건축과정에서 추가비용 지불이 불가하다는 점과 하자보수 책임의 명확한 기재를 요구했다. 나아가 자재선택을 내가 우선하면 예산안에서 공사업자와 함께 확정하는 구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금융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협조하고, 철거 및 건축기간 동안 뒷집 신축 다세대빌라에 우리 가족이 조건 없이 살 수 있도록 합의했다.


계약서가 작성되고 디벨로퍼는 가계약금 500만 원을 먼저 입금해 달라고 했다. 민원을 무기로 받았던 전리품이 그대로 다시 디벨로퍼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참 웃픈 상황이었다. 금융비용 최소화 협조에 따라, 계약금은 공사금액의 10%, 중도금도 공사금액의 10%로 하였다. 나머지 잔금 80%의 납부는 선분양 이후로 하여 큰 예외 사항이 없으면 금융부채 없이 처리될 수 있도록 확정했다. 자재 선정도 약속한 대로 계약서에 세부적인 업체명, 브랜드 및 모델명까지 기재하여 다툼의 확률을 줄였다.


당시 뉴타운 열풍을 타고 주변에 다세대 건물이 곳곳에서 지어지고 있었다. 우리 집이 완공될 시점에 분양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 예상됐다. 안전장치로 다른 사업자들이 하지 못할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 외벽의 전면부는 대리석으로 결정했다. 당시 벽돌로 올리는 경우가 많았고, 고급 대리석 자재사용은 많지 않았다. 바닥은 LG지인 온돌마루, 새시도 2 중창, 도배는 개나리 실크벽지, 도어는 영림도어, 주방은 한샘, 화장실은 대림바스로 결정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바로 메이저 브랜드임을 알 수 있도록 기획했다.


마지막으로 신경 썼던 부분이 아트월이다. 당시 신축빌라에서 유행한 포인트가 아트월이었다. 벽걸이 TV가 대중화되면서 TV를 설치하는 벽면에 원목 프레임 몰딩과 포인트벽지로 강조하는 방식이다. 아트월을 과감하게 고급대리석으로 장식하도록 요구했다. 예산 때문에 난감해하던 디벨로퍼에게, 당시 시장상황을 이야기하며 분양경쟁력이 있어야 잔금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설득했다. 시장에서 우리 집이 가장 고급스러웠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 계약금이 들어간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업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계약서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힘을 잃은 가장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어머니를 설득했을 때, 이미 아버지의 도장은 내 손에 들려있었다. 집을 철거하는 날 아버지는 말없이 허물어지는 집을 바라봤다.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물건에 대한 미련인지 모른다. 집이 다 무너질 때까지, 말없이 휠체어에 앉아 바라봤다. 힘을 잃은 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나에게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매를 해보면 안다.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명도라는 것을... 계약을 하고 대출이 일어나면,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비용이다. 당시 6 가구와 2개 가게가 전월세 형태로 입주해 있었다. 철거를 위해선 이들을 모두 내보내야 한다.


명도,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