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산 넘어 산.
입장이 다른 세입자들을 상대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이 건너간 순간부터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건물을 명도 하여 공실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끌다 다수가 세를 결집하는 순간 지는 싸움이 된다. 난도가 쉬운 집부터 속전속결로 처리하기로 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고, 소통이 원활한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영업할 때, 주로 쓰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상적인 상황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간혹 가다 만나는 배려를 기회로 이용하는 소시오패스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급하다고 해서 개인적인 어려움을 내세워 감정에 호소하면 역효과다. 가장 중요한 건 대의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양보하고 배려하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보험에 가입하는 과정에 영업사원이 "우리 어머니가 아프셔서 제가 꼭 보험을 팔아야 해요." 만약 이렇게 접근한다면, 당신은 보험에 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영업사원의 멘트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울 것이다. 하나라도 더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고 의심할 것이다. 목적에 있어서 상대를 위한 선의가 아닌, 개인의 영달을 드러내는 순간 상대는 경계한다.
우선 상대의 처지를 먼저 파악하고 가장 최적의 상품을 제안하여 이익으로 설득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운다면 상대는 오히려 경계를 누그러뜨릴 것이다. 바로 진정성을 담보한 최대한의 배려를 통해 제로섬 게임이 윈윈 게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도의와 이익을 먼저 이야기하고, 만약 따르지 않았을 경우의 큰 손해를 들어 설득을 했다. 건물에 붙은 타일이 실제로 길가에 떨어진 경우가 많아, 그 점을 들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신축의 필요성을 대의로 내세웠다. 신축에 협조하여 지금 집을 비워주는 경우, 보증금 반환 시 이사비용을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회유했다. 금액은 기대 이상으로 정하고, 사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다. 단, 협조하지 않을 경우 계약기간 종료 후 재계약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땐 이사비용도 없었다.
최대한 낮은 자세와 언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하고자 노력했다. 가장 관계가 없었던 집부터 이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한두 집이 빠지기 시작하자 마음이 약한 다른 집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세가 만들어지기 전에 신속하게 대면하여 진정성을 가지고 설득했다. 무거운 바위가 처음 한 번만 구르기 시작하면 수월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대부분은 처음 이사한 집을 필두로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어느 곳에서든 80%는 큰 노력 없이 적정선에서 합의가 되고 좋게 마무리가 된다. 다만 삶의 법칙처럼 나머지 20%는 늘 나쁜 위치에서 기다린다. 첫 번째 상대는 이삿짐센터였다. 주택과는 다르게 상가 쪽이 확실히 난도가 더 높았다. 이사를 다녀보면 안다. 대부분의 이사 업계 종사자가 거칠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 찾아가 대화했을 때는, 본인들 딴에 적은 보상이라고 판단했는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한차례 보상금액을 더 올려서 협상을 시도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잔뜩 약이 오른 상태로 이삿짐센터 사장을 찾아가 말한다.
"사장님, 저도 어쩔 수 없이 결정된 부분이라, 이해를 구하고자 보상까지 드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장은 콧방귀를 뀌며 툭 뱉는다.
"여기서 장사하면서 단골도 생기고 하는 건데, 갑자기 나가라면 못 나가죠."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최대한 불쌍한 어투로 말한다.
"사장님, 다행히 오신 지 얼마 안 되셔서, 차라리 이번에 더 좋은 상권으로 가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 보증금으론 더 좋은데 못 가죠."
"그 돈으론 다른 데 가지도 못해요."
이 말을 통해서 핵심이 돈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차라리 잘됐다.
"사장님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지금 보증금에 이사비용으로 보증금 더 얹어 드릴게요."
"한마디로 보증금 더블 어떠세요?"
들어온 지 1년도 안된 업체였다. 그러다보니 명도를 하는 명분자체가 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금전적 이익을 예상보다 크게 제시하면 충분히 움직일 것으로 판단했다. 대화과정에서 사장이 쓴 '단어'들을 들으며 확신했다.
이삿짐센터 사장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야기했다.
"언제까지 나가면 될까요?"
조금은 어이없을 만큼 쉽게 마무리됐다. 세상에 가장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이 돈으로 해결하는 일이다. 오히려 감정이 끼어드는 경우 해결이 굉장히 까다롭다. 일을 추진할 때 감정이 섞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마지막 끝판왕이 남았다.
마지막 남은 세탁소는 우리 집에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어머니와 막역한 사이였다. 다만, 깊게 쌓인 인연의 시간은 서로 간의 '계약'이란 선명한 약속의 색을 바라게 만들었다. 세탁소와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의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다. 긴 세월 동안 보증금을 모두 까먹고 월세도 많이 밀려있었다. 법적으로는 강제집행을 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밀린 월세를 모두 감해주고, 이사비용까지 주는 것으로 협상조건을 세웠다.
어머니는 자신이 대화하는 것이 나을거라며, 기분 좋게 세탁소에 들어갔다.
"언니 이번에 우리가 사정이 이렇게 돼서, 그동안 밀린 월세감하고 이사비용까지 드릴 테니 양해부탁해요."
이미 상황을 예견한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변한 세탁소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니, 그럼 우리 보고 이사비용 푼돈 받고 나가라는 거야?"
어머니는 넘치는 화를 누르고 다시 한번 좋게 이야기한다.
"언니, 그동안 보증금 다 까먹고, 월세까지 봐주고 있었는데, 그냥 나가라는 게 아니지"
세탁소 아주머니는 깨질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몰라, 우린 그 돈이면 길거리에 나앉으니까, 죽어도 못 나가."
어머니의 1차전은 일방적인 싸움으로 마무리되었다. 감정적인 어머니가 나서면 상황이 악화될 듯하여, 급하게 치열한 전장에서 철수시켰다. 상대가 만만찮다는 것을 알아채고 전략을 수정했다. 우선 상황적으로 이삿짐센터와는 처지가 달랐지만, 긴 세월의 무게만큼 보상금액을 더 올려서 다시 접근하기로 했다. 다른 가구가 모두 명도가 끝난 상황에서 이 한 가구 때문에 전체 일정이 미뤄지는 것이 더 큰 손해였다. 이삿짐센터 때와 동일하게 보상금액을 보증금만큼 올려 협상조건을 다시 세웠다.
신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장님 그동안 섭섭하셨다면 사과드리고 보증금 전액 돌려드리는 조건으로 다시 제안드립니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콧방귀를 뀌며, 웬만한 자동차보다 커 보이는 세탁기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그럼 500만 원 해준다는 거야? 그 돈으로는 저 세탁기가 여기서, 요기 저 문 밖도 못 나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밀린 월세를 다 감해주고, 까먹은 보증금까지 보전해 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제안했건만, 돌아온 답변은 희대의 명언이었다. "여기서, 요기도 못 나가"라니 세탁기를 몸짓으로 드는 흉내를 내며 바로 문앞까지 옮기는 시늉을 했을 때 정말 기가 찼다.
하지만 시간은 내편이 아니었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종결해야만 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쌓이는 이자는 우리를 그대로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선 세탁소 아주머니와는 냉정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협상대상부터 다시 정했다. 아주머니에게는 나보다 나이 많은 두 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정하여 객관적인 상황에서 냉철하게 대화 해보기로 했다.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어느 날, 세탁소 아주머니의 두 아들들과 어느 조용한 유적지 주차장 앞 벤츠에 앉아서 이야기한다.
길어지던 정적을 깨고 말했다.
"제가 어머님께는 말씀드렸는데, 일단 어렵다고 하셔서 최종적으로 준비된 조건을 말씀드릴게요."
기다렸다는 듯이 큰아들이 말을 걸어왔다. 이쪽도 속으로는 당연히 초조했을 것이다.
"그래 이 일로 우리 부모님도 걱정이 많아, 어느 정도 더 생각해 줘야겠어. 조건이 뭔데?"
큰 결심이 선 것 마냥,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냉정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우선 월세 다 제하고, 보증금 보전처리해 드리고, 특수이사 가능하시게끔 200만 원 더 지원해 드릴게요."
"저도 더 이상의 지원은 어렵고, 만약 받아들이기 힘드시면, 이대로 강제집행 들어가겠습니다."
"이상은 협상 불가입니다."
그들도 법적으로 다투었을 때,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이야기를 꺼내도 불같이 화를 내는 아주머니와는 다르게 이들은 냉정하게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큰 아들이 조용히 되물었다.
"그럼 총 700만 원 제시 하는거지?"
단호하게 말했다.
"네, 한 달 안에 이사 가시는 조건으로 합의서 써주시면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큰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작은 아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는 건지 시종일관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자식 간의 합의가 끝나고 마지막 남았던 세입자까지 전부 명도를 완료했다. 드디어 길고 지루했던 나의 큰 산은 힘겹게 정복되었다.
뒷집의 디벨로퍼와의 대화에서 약간의 불편한 느낌이 있긴 했어도 큰 틀에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하고 최대한 신뢰를 보내며 집을 지어 나갔다. 뼈대가 올라가고 인테리어를 하는 시간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초기에 했던 약속들이 하나씩 지켜졌다. 전체 도급금액의 20% 납입[계약금, 중도금]으로 건물은 완공되었고, 공사기간 동안 우리는 뒷집에 신축된 디벨로퍼의 다세대 빌라 중 한 곳에서 살았다. 건물 전면에 대리석이 시공되고, 복도에는 당시에 흔치 않던 클림트 그림을 모사한 아트타일이 붙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계획된 시나리오에 맞춰 흘러가고 있었다.
남에게 못쓸 짓을 하면 그 벌이 그대로 돌아온다. 이 오래된 격언이 현실에서 증명되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옆집에서 민원을 넣는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결국 일전에 내가 주도했던 민원이 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날 저녁 하이타이를 한 박스 사들고, 옆집 주인아저씨를 찾아갔다. 뒷집에서 동일한 민원이 있었을 때, 함께 만나서 뒷집에서 받을 보상금액을 논의한 전례가 있던 아저씨였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하이타이를 내려놨다. 공손히 말을 꺼냈다.
"아저씨 잘 지내셨나요? 저희가 너무 실례를 끼치고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본인도 민망했는지, 웃는 얼굴로 하이타이를 만지며 아저씨가 말을 받았다.
"어이구 뭘 이런 거까지, 그런데 소음이랑 먼지로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지?"
다 안다는 초월한 얼굴을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피해 안 끼치려고 물 뿌리고 조용히 한다고 하는데도 어쩔 수 없네요?"
"피해를 끼쳐 송구합니다. 안 그래도 보상방안에 대해선 생각을 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아저씨는 허허허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니 꼭 보상때문만은 아니지만..."
얼른 말을 가로챘다.
"아니에요. 저희가 늦었습니다. 뒷집때와 동일하게 300만 원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민원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이 분은 디벨로퍼의 처음 제안이었던 300만 원을 수락했었다. 당시 나는 좀 더 다퉈서 500만 원을 수령했었고, 이 아저씨는 그것을 몰랐다. 디벨로퍼가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었기에 단지 약속을 지켰던 것뿐이다. 디벨로퍼의 귀띔을 듣고 300만 원으로 민원을 종결했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건축시장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하나씩 튀어나오는 사건들이 다 리스크였다. 당시만 해도 지자체 접대가 있었던 듯싶다.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아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공사에 지장이 갈지 몰라 소액의 접대비를 지출했다. 23세 젊은 청년은 사회가 돌아가는 프로세스를 유연하게 하나씩 배워나갔다.
마지막으로 재밌었던 일화가 있다. 이제 막 20대 초반, 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술이 약했다. 하루는 부쩍 가까워진 디벨로퍼가 건설업계 사장모임에 초대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에게도 아프신 아버지를 모시고 다세대 신축까지 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아이가 궁금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중국술을 접했는데, 베테랑들을 상대로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권하는 술을 기를 쓰고 받아마셨다. 분명히 끝까지 정신력으로 버텨서 인사하고 헤어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집에 도착해서 상황이 기억이 안 난다. 어머니는 그냥 "개"였다고 한다. 개처럼 인사불성이 되어 잔뜩 토하고 잠들었다.
작은 일들이야 늘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시나리오대로 사업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매일 보던 신문에서 짤막하게 누군가의 의견으로 기사화된 조각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는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신문의 A1면을 향해 가더니, 결국 대문짝 만하게 대대적으로 언론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리먼 파산 한국 금융시장 ‘검은 월요일’"
"서브프라임發 글로벌 신용경색 심화…韓 외화유동성 비상"
"서브프라임 사태, 국내 부동산 시장까지 확산되나"
진짜 큰일 난 것이다. 살면서 이런 두려움은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