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인생의 위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세상에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누구나 살면서 자주 들었을 법한 말이지만 실제로 큰 위기를 마주치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상량식[건물 골조를 올린 후 내부 인테리어 공사 전 하는 기원의식]을 마치고 한창 내부공사를 진행하던 와중에,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미국을 넘어서 한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뉴타운 열풍을 타고 한참을 휘몰아치던 부동산 광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삽시간에 가라앉는다. 개발이 확정되었던 뉴타운 건설계획도 줄줄이 연기된다. 임대보증금 반환과 건축비 20% 선지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은행에서 대출을 잔뜩 받았다. 신속하게 분양하여 대출을 상환하고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데, 신용경색으로 인해 부동산시장에 돈줄이 막혀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일을 추진할 때,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모두 계산하여 대응방안을 마련한 후 실행을 결정했다. 충분히 일어날 만한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제시할 카드를 남겨둔 채 진행상황에 따른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IMF급 금융위기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없었다. 어디까지 위기가 번질 줄 모르는 상황을 앞에 두고 등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미국 굴지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부동산 정책기금 운용업체인 금융공기업 페니메이와 프레디맥까지 파산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무너져 나갔다. 인생에 처음 맞닥뜨리는 위기 속에서 어떻게 상황을 타개할지 막막했다. 미국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은 자명했고 이 위기가 국내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신속하게 판단해야만 했다. 국내 유동성이 급속하게 말라가는 와중에 주택시장이 얼어붙어 분양이 안되면 그대로 부채를 끌어안고 망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주위에서 해주는 걱정을 듣고 막연히 우리 집이 망한다고 판단했다. 집으로와 바로 앓아누웠다. 이번 프로젝트에 전재산이 들어갔다. 행여나 잘못되면 아프신 아버지, 앓아누운 어머니 그리고 아직 학생인 동생까지 줄줄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정신이 아득하고 의식이 혼미하다. 하지만 혼미한 의식에 갇혀있을 수만은 없었다. 누군가는 해결을 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먼저 앓아누운 어머니의 멘털부터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앓아누운 어머니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위로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 발생한 상황은 아무것도 없어.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어떻게든 해결하면 돼"
어머니는 누워서 꼼짝 않고 말이 없다.
"..."
목청을 조금 높여, 어머니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 선분양이 안돼서 완공 후에 분양해야 될 거 같아"
"대출 추가로 받아서 먼저 건축비 완납하고 팔 거야"
어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다.
"..."
위기가 느껴진다.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정 안되면 전세로 임대하고..."
그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언제 앓아누웠냐는 듯이 기운이 넘치는 투지로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낚아챘다.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멱살을 붙잡혔다. 진정을 시키려 멱살을 풀고 좀 떨어지려 했으나, 필사의 힘으로 붙잡고 있는 팔뚝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다. 공포에 질린 채 안정을 시키려 말을 하려는 찰나, 어머니가 악을 쓰며 이야기한다.
"이놈~이놈~ 내가 어린놈 말을 듣고... 너 때문에 우리 집이 망했어."
굉장히 당황했지만, 간혹 가다 있던 일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머니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려 다른 주제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엄마 놔~, 이거 내가 제일 아끼는 옷이야"
어머니는 절대 놓지 않는다. 그대로 멱살을 붙잡은 채로 매달린다. 세월이 지나며 많이 가벼워진 어머니였지만 기를 쓰고 매달리는 악에 받친 힘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어머니의 무게가 그대로 내게로 전해진다. 어머니의 외침이 들려온다.
"이놈~ 내가 어린놈 말을 듣고..."
그 순간 '주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얇은 라운드티의 목부분이 힘없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아끼는 옷이 찢어졌다는 사실과 함께 마음도 찢어졌다. 잘해보려고 한 일이다. 그동안 너무 고생만 하고 살아서 이제 새로 지은 집에서 편하게 살며 걱정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물이 새거나 보일러가 동파되면 늘 우리 집에 쫓아와 고쳐내라 요구하는 소리를 듣는 게 지겨웠다. 월세가 밀려 찾아가 얘기하면 적반하장으로 소리치는 그들과 다퉈야 하는 것도 힘겨웠다. 외벽에 타일이 떨어져 길가에 부딪힐 때면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괴로웠다.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하고 있던 어머니를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옷이 찢어지고 그 마음도 같이 찢어지는 고통이다. 내색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감정을 누그려 뜨리고자 담담히 다시 읊조린다.
"아이~ 엄마 찢어졌잖아"
"이제 놔줘"
아끼던 라운드티의 목부분이 허리춤 아래까지 찢어져 굉장히 부끄러운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여전히 찢어진 옷을 붙잡고 어머니가 매달려 앉아 있고, 나는 부끄러운 채로 서있다. 정면에 있던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친다. 슬픈 눈을 한 내가 서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슬퍼하고 있기에는 해결할 일들이 산더미다. 한바탕 해프닝이 끝나고 감정적으로 털어내신 어머니가 다시 자리에 앓아눕는다. 옷을 갈아입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으며 앓아누운 어머니의 걱정을 끝내겠다 다짐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속으로 외친다.
부동산의 변동성은 일반적으로 주식보다 낮다. 주식은 쉽게 사고팔 수 있는 반면에 부동산은 크게 한 번씩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주식의 변동성이 부동산보다 크다. 하지만 부동산에는 주식과 다른 세 가지 변수가 있다. 첫 번째 절대가격이 높다는 것과 두 번째 레버리지를 이용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시장참여자가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 특징으로 인해 주식의 위기보다 부동산의 위기가 사회적으로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일반적으로 주식이 부동산보다 더 위험하지만 금융위기가 오면 다르다. 주식은 거래단위의 절대가격이 낮아 일부 고위험추구자가 아니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돈에서 투자한다. 리스크를 한정하기 쉽다. 반면에 부동산은 절대가격이 높다. 변동성의 비율이 주식보다 낮게 출렁여도 절대가격이 높아 변동금액은 훨씬 크다. 여기에 보유자금 외에 대출을 포함하여 소유한다. 즉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거래금액도 커서 위기가 발생하면 통제가 어렵다. 빚을 안고 그대로 파산하는 것이다. 더 무서운 점은 주식은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참여자들 안으로 위기가 제한되지만, 부동산의 시장참여자는 대한민국 국민 전부이다. 누구도 부동산과 관련 없는 사람은 없다. 집주인이 문제가 되면 바로 세입자에게 위기가 전가된다. 이로 인해 신용이 무너지는 시기에 부동산의 위기는 사회적 위기로 이어진다.
당시 대한민국은 대처를 잘했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해 전 세계가 빚을 내기 쉬운 상황이었다. 미국은 채무자의 신용도 보지 않고 집을 담보 잡아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주었다. 홈리스들에게 마저 대출이 이루어지고 부동산가격은 끝도 없이 올라갔다. 올라간 부동산 가격을 담보로 다시 심사를 통해 대출금을 늘려 홈리스들의 갚지 못하는 지연 이자를 충당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끝이 정해진 게임이었다. 무한정 올라가는 자산은 없다. 어디선가 가장 약한 고리가 끊기자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용도 보지 않고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빌려준 채무를 한데 모아 다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위기관리를 아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파생상품은 폭탄처럼 시장을 돌다 결국 터져버렸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다행히 우리나라는 LTV, DTI 등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는 금융정책을 통해 부동산 부채의 확장을 제한했다. 그로 인해 자산가치가 대폭 하락하고 자금이 마르는 상황에서도 IMF때처럼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금리를 낮추며 위기를 적절히 극복해 나갔다. 나에게도 행운이었다.
금방 어떻게 될 것 같은 시간이 지나간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의 여파는 지속됐지만 그런 와중에도 집은 완공됐다. 완공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잔금을 납부했다. 원래 계획은 내부인테리어 공사 중에 분양을 끝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한 채도 팔리지 않았다. 당연히 위기 중에 제1금융권에선 대출이 나오지 않았다. 동분서주 백방으로 대출을 알아봤고 다행히 지역농협중 한 곳에서 대출을 받았다. 제2금융권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높아 비용이 늘어난 점만 빼면,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를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도 시간이 지나며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안정을 찾는다.
다세대주택은 1층 필로티 주차장, 2~5층까지 4개 층에 2세대씩 배치되어 총 8세대 규모로 완공되었다. 4층에 볕이 잘 드는 한 집을 골라 입주했다. 분양은 어려웠지만 전세는 바로 임대했다. 2층의 두 집과 3층에 한집 총 3 개집을 전세로 임대했다. 3 개집을 임대한 전세보증금으로 지역농협에서 받은 대출을 갚았다. 이제 높은 이자를 낼 필요가 사라졌다.
아직 비어있는 집들은 실거주자를 찾아 분양하고, 3개의 전셋집은 투자자를 찾아 매각할 생각이다. 금융이자가 사라지자 다시 시간은 나의 편이 된다. 하지만 주변에 팔리지 않는 다세대신축들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팔리기만 바라고 있을 수는 없다.
집을 팔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