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새로운 곳' 응원하기
아무도 찾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이전 회사 팀장들이 OB모임을 제안한다.
반가운 마음에 날짜를 잡고 만난다.
왕십리에 위치한 허름한 횟집
노포분위기가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회를 시키면 나오는 곁들이찬이
장난이 아니다.
미나리 전, 석화찜, 각종 해산물
메인급 곁들이찬이 끊임없이 나온다.
좋아하는 해산물을 잔뜩 젓가락에 올려
한입 넣으니 얼마 전 다녀온 남도가 떠오른다.
나까지 모두 여섯 명이 모인 만남
다들 다행히 괜찮은 회사를 찾아갔다.
세명은 수천억 매출을 하는 물류회사에
두 명은 수백억 매출을 하는 유통회사에
각각 팀장으로 입사하여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운영하던 회사의 평판이 좋아
거래처나 경쟁사에서 팀장님들을
좋은 조건으로 모셔갔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들어가 하나둘씩 모이는
팀장들과 대화하며 어느 회사든 똑같다
생각한다.
기존에 있는 팀의 새로운 팀장으로 간 사람도
새로운 보직이 생기며 그 자리로 간 사람도
체계가 없어 힘들다고 툴툴댄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행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정말 힘들면 힘들다는 얘기도 안 나온다.
툴툴댈 정도면 일이 있다는 것
본래 일은 다 힘들다.
힘든 일을 불평하며 자신이 극복하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고 알려준다.
술고래들과 만나 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가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회사를 닫은 장본인임에도 팀장들은 연신
그래도 고마웠다고 이야기해 준다.
회사를 한 달 만에 정리하라는 통보를 받고
팀단위로 회의를 소집하여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하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경쟁사를 찾아가 기존 재고와 거래처를
넘기고 대신 직원들을 채용해 주고자
부탁했다.
협력사를 찾아 연관 직군 직원들의
채용을 또 부탁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회사에 대해 감정이
좋지 못한 직원들이 그래도 찾아준다.
가끔씩 회사 욕을 섞어가며
그래도 상무님이 있어 다행이었다며
치켜세워준다.
여섯 명이 모인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내가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이야기해도
한 번 상무님은 영원한 상무님이라고
깎듯이 존대한다.
감사한 마음에 술잔을 들어 건배를 외친다.
같이 회사를 정리할 때까지 마지막까지
돕던 팀장들과 좋은 마무리를 해서
정말 다행이다.
즐거운 모임에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동안의 행동을
복기해 본다.
한 달간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매일 울었다.
거래처와 협력사, 경쟁사를 만나며
매일 술을 마셨고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정말 많이 울었다.
자존심이 상했고 책임지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고 재고와 창고를 팔고
팀원들을 이직시키고
마지막으로 팀장들까지 이직시켜 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상황을 전부 정리하고
퇴사했다.
퇴사한 다음 주 대표의 저녁 먹자는 말에
당당히 나가 술을 한잔 걸쳤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잃을 것에 전전긍긍
하는 모습이 꼴배기 싫었지만
마지막 마무리는 깔끔히 하고 싶어
술 한잔 걸치며 따끔히 말해줬다.
한 달 만에 문을 닫는 거면 사전에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고
못해서 강행하면 직원들에게
용서는 구했어야 했다고
이 말에도 끝까지 미안하지 않다고 한다.
어차피 직원들도 저 살 궁리만 하지
회사가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는단다.
더 이야기할 수 없어 한잔 마신다.
그리고 조용히 물어본다.
"그래도 나한텐 미안한 거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비싼 방어회를 산다고 하는데
얻어먹기 싫어서 몰래 계산하고
왜 그랬냐는 말을 들으며 헤어진다.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그래도 가장 친한 친구라 연락을
기다려 봐도 그 이후로 연락이 없다.
먼저 연락하긴 또 꺼려져서
기다려 보기로 한다.
마지막까지 떳떳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복기해 봐도
부끄러울 것 없는 행동이었다.
혼자 자위하며 늦은 밤거리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따뜻하게 맞아 주는 식구들이
있지 않나?
눈물로 점철된 일상을 다 반사(反射)하자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이 나타난다.
하기로 마음먹은 일들에 집중하여
시간을 소중하게 쓰기로 다짐한다.
팀장들의 새로운 직장,
나의 새로운 미래를 응원하자
흐뭇한 마음에 미소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