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부자의 일탈

by 경자호

즐거운 일상을 보내며 부부는 부부동반 모임에 나간다.

이직 후 바쁘게 일하던 스타트업도 비즈니스모델이 확실히 만들어지며 나날이 매출이 올라갔고, 격리 후 복귀한 일상도 익숙해지며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낸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긴 했지만 길어진 유행기간만큼 사람들도 점차 익숙해져 간다. 오래간만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척동생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거의 만나지 못했는데 얼굴이라도 보자는 연락이었다.


안 그래도 장모님 댁에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차라리 아이를 장모님 댁에 맡기고 아내와 부부동반으로 만나면 재밌을 것 같았다. 생각한 바를 아내에게 이야기하자 아내도 흔쾌히 좋다고 이야기한다. 친척동생과는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다니던 대학교의 위치도 서로 멀지 않아 학교 다닐 때 한 번씩 만나며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가장 할 말이 많았을 시절의 만남이었기에 정치얘기부터 미래의 생활에 대한 얘기까지 나누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같은 대학을 다니던 동생보다 나와 나이차이가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만나며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서로 사회생활을 할 때도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한 번씩 만나며 대화를 나눌 때면 가장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확실히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인연이 깊어서였는지 친척동생과 아내가 같은 직장으로 서로 이직하여 동료가 되며 나보다 오히려 아내와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다. 옆 팀에서 근무하던 친척동생 부부와의 모임을 갖자는 말에 아내도 흔쾌히 허락한 것이었다.


뻔하지 않고 독특한 모임을 가지다.

기왕 오래간만에 만나게 된 마당에 그동안 해보지 않은 독특한 일정을 가져보고자 생각했다. 늘 육아를 하며 아이와 함께 하는 일정만 해오던 것에 염증을 느껴 도파민이 터지는 흥미로운 체험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방탈출 카페에 가자고 제안한다. 2시간 안에 방을 탈출해야 하는 공포방이었다. 친척동생 부부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여 방탈출 카페가 많은 혜화동으로 약속장소를 잡고 근처 커피숍에 집결했다.


오래간만에 아내와의 둘만의 외출에 설레며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곧바로 친척동생 내외도 와서 브리핑을 시작한다. 서로 처음 해보는 체험인지라 긴장감이 흐르고 특히나 아내는 공포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겁이 많아 긴장을 배로 하기 시작한다. 아내를 달래며 약 2시간 동안의 즐거운 체험을 한다.


즐겁긴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내부에서 나온 문제를 맞힌 것보다 전화기를 통해 힌트를 받아서도 맞추지 못해 번번이 추가 도움을 받고 음산한 분위기에 아내는 내 목덜미를 잡고 놔주질 않는다. 무엇을 더 해보기도 전에 다음 고객의 대기 문제로 아르바이트생에게 끌려 나오다시피 체험을 마친다.


게임의 달성여부와는 별개로 체험자체에 굉장히 즐거움을 느끼며 방탈출을 마무리하고 이동하여 당시 핫하다던 익선동 고깃집으로 간다. 노포와 야장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래된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으며 마치 결혼 전 잘 나가던 전성기를 떠올리며 한잔 두 잔 술잔을 들이켠다. 이직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라 꽉 잡고 있던 나와바리였다. 익선동 고깃집의 야장을 지나면 앞쪽의 도로로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깔려있고 다시 골목을 잡아 돌아 걸으면 송해길에 자주 가던 전라도 실내포차가 반긴다.


아내와는 을지로에서 회사를 다닐 때 처음 소개를 받아 걸어서 10분 거리에 회사가 서로 위치해 있어 회사업무를 마친 후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면서 데이트를 했던 장소여서 이 근처의 분위기가 늘 즐거웠다. 그렇게 든든히 배를 채우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2차 체험장소로 락볼링장을 제안했다.


전 직장에 다닐 때 회식 후 동료들과 한 번씩 가던 곳으로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며 볼링을 칠 수 있는 곳이었다. 평소 같으면 예산을 정해두고 예산안에서 활동을 한 후 집으로 복귀했겠지만, 이 날은 작정하고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그동안 억눌러온 본능을 터트린 날이었다. 그렇게 내기 볼링을 치고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래 같으면 볼링을 끝으로 헤어졌겠지만 제대로 필을 받은 넷은 아쉬운 마음에 한잔 더 마시기로 한다.


원래 만선호프에 가서 젊음의 분위기를 더 이어가려고 했지만 중간에 뭉티기 집을 보고 마음이 바뀐다. 육회 뭉티기와 회에 소주 한잔 마시고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종각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친척동생 부부와는 자주 보던 사이여서 편하게 그동안의 근황을 다시 이야기하며 시간과 함께 자리도 무르익는다. 그렇게 점심 전에 만난 모임은 어느덧 새벽을 향해 치닫는다. 막차를 타고 가려면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


시간을 확인하며 누구랄 것 없이 함께 자리를 파하고 일어난다. 헹여나 막차를 놓칠세라 두 가족은 연신 시계를 확인하며 지하철역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렇게 다른 호선을 따라 두 부부는 헤어진다.


한 끝차이로 놓친 막차,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다.

장모님이 계신 곳은 종각에서 지하철로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고 갔는데 아뿔싸 코로나 시기여서 그런지, 주말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일찍 지하철이 끊긴다. 눈앞에서 놓치다시피 해서 더 아쉬울 수밖에 없다. 혼자였다면 아무 고민 없이 약 3~4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갔을 텐데 아내가 옆에 있어 눈치를 살핀다.


아내도 지하철을 놓친 게 당황되었는지 다른 이동수단이 없는지 휴대폰을 보고 있다. 제발 택시어플만은 아니길 속으로 바라며 연신 걷는 방법도 있다고 어필한다. 아내는 듣지도 않고 여기저기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내 택시어플을 틀고야 만다. 택시어플을 트는 것을 보고 속으로 잡히지 않기만을 손꼽아 기도한다.


놀랍게도 정말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시기여서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운 때가 있었다. 이때가 그 정점에 해당되는 때로 아내가 아무리 택시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유일하게 금액이 많이 올라가는 비싼 택시만 가능했는데 택시가격을 본 아내가 결국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조용히 말을 꺼낸다. "걷자" 묵묵부답으로 연신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던 아내가 내가 걷는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당시 위치는 을지로 3가 역이었고, 3호선 라인을 따라서 무작정 걷는다. 술을 마시고 대중교통이 끊길 때마다 택시를 절대 타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늘 집까지 걸었던 나에겐 생소한 일이 아니었지만 아내에겐 황당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한 번씩 뒤에서 포효가 들려온다. 걷고 다리 아프고 힘들면서 짜증이 몰려오는 것 같다. 그래도 한참을 걸어 경복궁역을 지나 서촌에 다다랐다.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그나마도 걸으며 거의 술이 깬다. 제정신이 들며 아내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갑자기 무서운 목소리로 뒤에서 나를 불러 세운다.


"멈춰~"

"응 그래, 왜?"

"택시 좀 더 잡아보게, 언제까지 걸을 거야?"

"아? 택시? 이제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다 오긴 뭘 다와? 아직 멀었는데?"


여기까지 걸은 게 아까워서라도 더 걸을 것 같았지만 단호한 아내의 명령에 잔뜩 움츠려 숨죽여 기다린다. 결국 비싼 택시 외에 일반택시는 전혀 잡히지 않고 약 20분간의 씨름 끝에 다시 둘은 걷기 시작한다. 아내의 기분을 살피며 걷기의 중요성과 건강에 이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설파하는데 다시 아내가 짜증이 올라오는지 불러서 운다.


"멈춰~"

"응 왜 또 그래?"

"이렇겐 못 갈 거 같아 잠깐만"


아내의 명령에 다시 길을 멈추고 조용히 대기한다. 아내 옆에 따릉이라는 자전거가 있었는데 아내가 인터넷을 뒤지더니 사용법을 알아낸 것 같다. 휴대폰을 자전거에 가져다 대자 이내 잠금장치가 풀린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내가 아내에게 말을 건다.


"아! 이걸 타자고?"

"그래 힘들어서 더 못 걷겠어. 자전거 타면 나을 거 아냐?"

"오 좋은데?? 이건 안 비싼가?"


가격을 물어보는 모습이 꼴배기 싫었는지 말없이 내 휴대폰을 뺏어 들어 따릉이의 잠금을 풀고 자기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다. 뒤쳐질 세라 얼른 잠금이 풀린 따릉이에 올라타서 뒤따라간다. 서촌을 지나 독립문으로 독립문을 지나 무악재까지 쉼 없이 고개를 넘는다. 초행길이라 몰랐는데 언덕이 정말 많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 길이 상쾌했는데, 뒤에서 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내가 많이 힘든 것 같다. 자전거를 멈추고 기운 내라고 응원을 북돋는데 그게 화를 돋운 거 같다.


험한 소리에 다시 페달을 굴려 앞서간다. 아내는 연신 한숨과 험한 소리를 번갈아 내며 쫓아온다. 마치 추격전을 벌이 듯 도망가는 느낌이 들고 뭔가 멈추면 안 될 것 같다. 이대로 내달린다. 어느새 홍제동을 지나 녹번동을 향해 페달을 밟는데 눈앞에 아득한 언덕이 보인다. 왠지 저 언덕을 넘으면 희망찬 미래로 나아갈 것 같은 생각에 설렌다. 그렇게 뒤를 돌아보는데 뭔가 느낌이 싸하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기운 내라고 이야기하며 출발하고 결국 높은 언덕의 중턱에 올랐다. 그때 아내가 뒤에서 소리를 치고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택시~"


하필이면 아내가 오르는 언덕의 골목길에서 갑자기 택시 한 대가 튀어나온 것이다. 아내는 본능적으로 택시를 잡아 세우고 그대로 따릉이를 내팽개친 후 택시에 올라탄다. 나는 "안돼, 여보 절대 안 돼, 거의 다 왔어, 저 언덕만 넘으면... 지금까지 온 게 아깝잖아"라고 연신 만류하지만 택시에 탄 아내가 안 타면 간다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비용이 들 거면 둘이 효용을 느끼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는 생각과 엄청난 피로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릉이를 내려놓고 택시에 올라탄다. 그렇게 고개를 몇 개 더 지나 한참을 더 가서 장모님 댁에 도착하여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든다.


단잠을 깨고 의식을 되찾음과 동시에 "따릉이~~~"라고 외치며 잠에서 깬다. 그렇다 어제 아내가 택시를 잡고 그대로 타는 바람에 따릉이를 버려두고 온 것이다. 그대로 분실하면 물어줘야 한다는 두려움이 앞서 악몽과 함께 잠에서 깨는 대로 따릉이를 외치며 일어난 후 바로 아내를 깨운다.


"여보, 여보 우리 따릉이 그대로 버려두고 왔잖아. 물어줘야 하는 거 아냐?"

"어우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놓고 왔네. 생각해 보니..."

"얼른 옷 입어 거기 가보자."


바로 옷을 주워 입고 차에 시동을 걸고 따릉이를 놔둔 위치로 출발한다. 이대로 분실 시 자전거 값을 물어주게 된다면 가장 멍청한 선택과 비용이 되어버린다. 그냥 비싼 5만 원짜리 택시를 타든, 근처 숙박업소에서 자고 오든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은가...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며 근처에 왔는데 그 어디에도 따릉이가 보이지 않는다. 분실이 되었거나 수거를 해 간 것으로 보인다.


절망적인 마음에 도대체 보상비용이 얼마일지 가늠도 안 되는 상태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결과적으론 다행히도 수거를 해 간 것인지 자전거 비용에 대한 보상대신 반납을 안 했으니 전화 준 시간까지의 사용요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비용도 상당했지만 그 이상의 보상이 없다는데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부는 이제 좀 적당히 놀고 끝내자고 다짐하며 힘든 일탈을 마무리한다.


힘든 일탈을 보내고 아빠에겐 새로운 차가 생겨 예전 차를 처분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그 일로 동생과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벌어지는 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