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부자의 겨울 - 2부

by 경자호

그해 겨울 가장 추운 날 캠핑을 위한 사투를 벌이다.

이날 저녁 늦게 출발하여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약 밤 10시 30분으로 기억한다. 그해 가장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 아빠는 겨우 배정받은 자리로 차를 몰아세우고 다행히 천막 아래 사이트에 텐트를 세울 요량으로 밖으로 나선다. 출발할 때도 추웠지만 월악산 중턱의 밤바람은 유난히 매섭다.


아이는 차에서 유튜브를 보게 하고 얼른 트렁크를 열어 텐트를 꺼낸다. 지하주차장이 없어 지상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오랫동안 트렁크 안에 방치되어 있던 텐트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지퍼를 열고 텐트를 꺼낸 후 사이트에 맞게 펴두고 서둘러 폴대를 찾아서 연결하기 시작한다. 본래 폴대에는 내부에 고무줄 형태의 줄이 있어 펴주면 거의 자동으로 구멍에 맞춰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쪼그리고 앉아서 폴더에 구멍에 맞춰 연결을 하는데 힘이 없다. 너무 추워서 고무줄이 얼어버린 것이다. 축 늘어져 버린 탄성줄을 붙잡아 폴대의 구멍 안 속에 조금씩 밀어 넣어 연결한다.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연결하는데 고무줄에 힘이 없어 아치형으로 세워지질 않고 그냥 빠져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왼쪽 끝에 고무줄을 밀어 넣어두고 바로 이동하여 오른쪽 끝까지 밀어 넣고 끼워 넣으니 왼쪽 고무줄이 밀려서 튀어나오고, 다시 왼쪽을 밀어 넣으니 오른쪽이 튀어나온다. 순간 짜증이 급속하게 올라온다.


폴대를 연결하지 못하고 악전고투하며 30분이라는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간다. 아내는 새로 산 난로에 관심이 꽂혀 텐트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른 채 등유난로를 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고 텐트부터 완성해야 한다고 버럭 소리를 친 후 둘이 동시에 양쪽에서 폴대 끝쪽에 탄성줄을 밀어 넣는데 탄력 없는 탄성줄이 서로 밀어내며 튀어져 나온다. 진심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아내에게 말한다.


"여보 이거 일이 심상치가 않아... 여기서 못 잘 것 같은데?"

아내가 무심한 듯 이야기한다.

"정말 연결이 안 되네..."

다급한 마음에 걱정되는 어투로 말한다.

"지금 여기 월악산 중턱인데... 어쩌지? 집에 다시 가야 하나?"

아내가 별 일 아니라는 듯 편하게 이야기한다.

"다시 어떻게 가... 일단 민박이 있나 찾아볼게..."


이후로 아내는 한참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고 결국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손도 시리고 잠도 오고 배도 너무 고팠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쪼그리고 앉아서 폴대를 맞춰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때 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력을 바탕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아내에게 말을 한다.


"여보, 일단 저 등유난로 켤 수 있어?"

"응, 거의 해놔서 등유만 넣고 켜면 돼"

"그럼 일단 저거부터 켜봐"

"왜?"

"잘하면 텐트 칠 수 있을 거 같아서, 지금 민박도 없지만 있어도 사이트비용에 민박비까지 추가로 나오잖아."

"그렇긴 하지... 일단 그럼 틀어볼게"


아내는 새로 산 등유난로에 다가가 난로를 켜고자 이것저것 설명서를 보며 움직이는데 켜질 생각이 없다. 결국 직접 다가가서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한다. 등유가 난로에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확인하니 급하게 등유가 쏟아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등유호스를 넣고 세게 눌러줘야 등유가 쏟아져 나오는 장치였다. 쪼그리고 앉아 등유 넣는 구멍에 잘 맞춰 등유호스를 끼고 위에서 꽉 누르자 콸콸콸하고 등유가 난로의 연료통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넣자 더 이상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등유를 내려놓고 가운데 레버를 세게 돌리자 가스레인지 불이 켜지듯 가운데 심지에 불이 붙으며 빨갛게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바로 끄면 가스레인지처럼 불이 꺼져버릴까 한참을 돌리며 관찰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안정적으로 불이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다시 텐트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조금 기다리자 난로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때 바로 폴대를 난로 위에 올려본다. 폴대 안에 탄성이 있는 줄이 얼어서 기능을 못하는 게 문제라고 판단하고 줄을 녹여보고자 시도한 것이다. 난로에 올리자 마치 오징어 다리가 구워지듯이 고무줄이 쪼그라들며 팽팽해지기 시작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머리를 쥐어짜가며 세웠던 가설이 정확히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바로 아내에게 얘기한다.


"여보 지금 이거 탄성이 생겨서 폴대들을 설치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내가 전달하면 하나씩 연결해"

기쁨의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띠며 아내가 말한다.

"정말이야? 알았어 줘 봐"


팽팽해진 폴대를 서둘러 아내에게 건넨다. 하지만 날씨가 얼마나 추운 것인지 전달한 폴대가 전달과 동시에 축 늘어진 엿가락 마냥 다시 탄성을 잃고 쳐져버린다. 큰 시련을 맞닥뜨릴수록 더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불사른다. 탄성을 유지하여 버티는 시간이 짧은 것이 문제니 난로에 녹인 후 바로바로 하나씩 폴대를 연결해서 설치하기로 전략을 수정한다.


"여보, 지금 녹여서 잠깐만 시간이 지나도 바로 쳐져버리니까, 이번엔 내가 녹여서 전달하자마자 하나씩 완성하자."

아내는 마냥 해맑은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래, 알았어."


이번에도 폴대 하나를 난로 위에 올리자 오징어처럼 쪼그라들며 탄성이 생긴다. 어느 정도 폴대가 작동할 것처럼 보이자마자 바로 아내에게 전달하며 외친다.


"하나, 둘, 셋, 지금이야."


그와 동시에 아내와 일심동체가 되어 바로 양쪽 끝부터 폴대를 맞춰나간다. 약 1초 안팎의 찰나의 순간 폴대하나가 완성된다. 탄력을 잃을 세라 바로 텐트의 양끝에 폴대를 연결하자 둥그렇게 아치형을 그리며 텐트에 안착한다. 됐다. 이후로 남은 4개의 폴대도 동일한 방식으로 완성하여 세우며 겨우 텐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미션임파서블을 해결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시계를 한 번 보니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겨우 텐트를 완성하고 아내가 그토록 시험해 보고자 염원하던 난로를 텐트 안에 넣는다. 좋은 난로여서 분명히 따뜻할 거라는 말과는 다르게 이곳저곳 빈틈이 많은 사계절용 텐트 사이로 매서운 칼바람이 들어와 난로의 위엄을 깎아내리고 있다.


아이는 이미 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조심히 안아 취침하는 공간에 침낭으로 감싸 눕힌다. 산속에 전기가 약하여 사용이 불가하다고 하여 온풍기도 가져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챙겨 온 작은 전기장판 위에서 아이가 소곤소곤 자고 있다.


너무 졸렸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육체노동만 몇 시간을 하여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자 활동공간 쪽에 식탁을 펴고 앉는다. 난로가 앞에서 불을 열심히 내뿜고 있지만 추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내는 두 번째 낭만을 위해 냉동피자를 난로 올린 후 바라보고 있다. 그냥 대충 먹고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조용히 앉아 피자가 익기만을 기다린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아내가 말한다.


"여보, 어때 좋지? 피자도 맛있겠지? 이 난로 어때?"

일단 비쌀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복지포인트로 산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일까?' 큰 의문을 가지며 조용히 대답한다.

"어... 피자는 금방 익겠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아내는 자신의 로망을 이어나간다.

"여기 가운데 심지에 불을 봐봐 이걸로 불멍해"

"그래... 피자 이제 그냥 대충 먹을까?"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가 자고 있는 취침공간으로 들어가 침낭 속에 빠지듯 몸을 넣어 눕는다. 전기장판을 켜고 있어 등 안쪽이 따뜻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온풍기를 틀지 않아 공기가 차다. 밖으로 내놓은 얼굴이 차갑게 경직되고 콧속의 콧물이 얼어붙는 것 같다. 그렇게 아내가 자랑하던 밖에 켜둔 난로는 여름에도 사용하는 사계절 텐트를 포근하게 감싸기엔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 겨울에 일산화탄소로 사고를 당하는 캠퍼들이 많다는데 이곳저곳 어디 하나 막혀있는 곳을 찾기 힘든 사계절 텐트여서 다행히 그 걱정은 없이 피곤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든다.


2박 3일 일정은 무척이나 길었다.

월악산 중턱에서 맞이한 한겨울의 텐트 속 아침공기만은 상쾌했던 것 같다. 다만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니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찌뿌둥하다. 콧속의 고드름을 치우며 잠에서 일어나 침낭을 나오자마자 다시 침낭 속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불을 지핀다.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밤사이 거의 소진된 등유를 다시 한통 난로 속에 채워 넣는다.


아침을 먹고 산속 낭만을 느껴야 하는데 너무 춥다. 아침해가 드리웠지만 햇빛만으로 몸을 녹일 수 있는 추위가 아니다. 컵라면을 하나씩 끓여 먹고 작전상 후퇴하기로 한다. 시내에 문을 연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우선 전기차를 근처 공영주차장에서 충전을 해두고 카페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인다. 오랜만에 느껴본 따뜻함에 처음으로 몸의 긴장이 풀어진다.


하루종일 "엄마, 추워"를 외치던 대만이도 나른 한지 몸을 쭉 뻗고 유튜브를 본다. 카페에 앉아 오늘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는 필요하면 돌아가자고 하지만 환불이 안된단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비용의 효용을 몸소 다 느끼고 가기로 최종 결정이 난다. 도저히 바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근처의 박물관에 들러 마음껏 따뜻한 공기를 누리고 다시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고 길을 떠난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캠핑장에 도착하고 서둘러 저녁식사를 준비하려고 나선다. 추위를 잊으려면 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술을 왕창 마신 후 잠이 드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내가 준비한 로망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려는데 아내가 또 일을 시킬 것이 있는지 목소리톤이 올라간다.


"여보, 저녁 먹기 전에 할 게 있어."

"또 뭔데?"

"말 그렇게 할 거야?"

"아... 그래 뭔데? 하하하"

"이거 꺼내봐"


큰 박스 안에 무언가 들어있는 것 같다. 박스를 뜯어서 꺼내자 무거운 비닐 같은 것이 나오는데 다 펴보니 텐트 전면부에 장착하는 우레탄창이 들어있다. 마치 포장마차에 온 것처럼 투명 우레탄을 전면에 설치하여 저녁을 먹을 때 설경이 보고 싶어서 마련한 것 같다. 무엇을 하고 싶은 지는 알겠는데 머릿속에 그린 대로 현실의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우선 짜증부터 밀려온다. 감정을 드러내면 또 혼날 것 같아 잘 억누르고 말없이 우레탄창을 마저 편다.


설명서를 봐가며 위쪽에 구멍에 줄을 연결해 텐트에 묶는 것들을 맞춰본다. 구멍에 줄을 모두 묶어 놓고 우레탄창을 들어 텐트에 묶으려는데 젠장, 엄청 무겁다. 앉아있는 아내를 불러 밑에서 받쳐달라고 이야기한다.


"여보 이것 좀 밑에서 잡아줘. 엄청 무거워"

"그거 혼자 못해? 알았어"


아내가 밑에서 창을 받치자 위로 쭉 당겨서 묶으려는데 설명서와 다르게 위치가 맞지를 않는다. 이상한 느낌에 아내에게 묻는다.


"여보, 이게 지금 다 위치가 안 맞는데 이거 이 텐트에 맞는 거야?"

"다 대충 맞는 걸로 보고 샀는데?"

"지금 봐봐, 여기 위치에 묶는 게 없잖아. 이거 꼭 해야 되는 거야?"

"그럼 사서 다 잘라서 만들어 놨는데 안 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시 위치에 맞춰서 설치를 해보는데 좀처럼 맞질 않는다. 억지로 꾸역꾸역 왼쪽을 맞춰 고정시키면 오른쪽이 뜨고, 오른쪽에 맞추면 왼쪽에 고정자리가 안 나온다. 1시간을 넘게 씨름을 하며 이쪽저쪽 맞춰보는데 어느덧 해가 또 지려고 한다. 평정심의 임계치를 넘어버린 몸과 마음이 자꾸만 편해지라고 한다.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어우, 이쪽 좀 잘 들어봐. 거기 또 뜨잖아... 내가 그쪽으로 갈게 여기 잡아. 어우 잡으라고 했잖아"

"아니 이게 잘 안 맞아서 그러지"

"그러니까 안 맞는 걸 사서 맞추려니 이러지."

"맞는 줄 알았지, 잘해봐 여보가"

임계치의 끈이 어느덧 끊어져 버리고 결국 한마디 내뱉고 만다.

"야, 너 나 요절시키고 내 돈 다 쓰고 가려고 그러지?"


그 소리에 아내가 피식 웃는다. 속마음을 들켰나 보다. 아내의 웃음에 식탁 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던 아이의 오른쪽 입꼬리도 같이 따라 올라간다. 공범인가 보다. 그렇게 거의 두 시간의 사투 끝에 결국 완벽하게 설치하는 것은 포기하고 오른쪽이 틈이 크게 뜬 채로 완성을 선포한다. 각이 안 맞는 것을 잘 보지 못하는 결벽증이 있는 나로선 크나큰 결심이었다. 장수를 위해 각을 포기했다. 더 했다가는 남 좋은 일만 시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포장마차 분위기의 우레탄 창을 바라보며 분위기 있게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다만 아무도 없는 캠핑장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고요한 산중턱에서 분위기 있게 바라본 맞은편은 너무나도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불투명 텐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에 쓴웃음을 지으며 겨울 캠핑의 낭만을 마무리한다.


다음날 아침 혹한기에 어느 정도 몸이 적응하며 어제보단 덜 추위를 느끼며 일어난다. 이제 웬만한 추위는 별로 추울 것 같지도 않다. 유독 추위에 약한 몸을 단련하며 아침도 먹지 않고 텐트를 철수하며 크리스마스의 낭만적인 캠핑을 마무리한다.


아빠와 아들은 엄마에게 단호하게 겨울캠핑은 다시없음을 강하게 선포한다.


이 말에 엄마는 그럼 여름캠핑을 준비하겠다는 말로 부자를 경악하게 만드는데, 이 말이 정말로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여름캠핑으로 이어질 줄은 정말로 몰랐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