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라며 아빠를 무척이나 닮아간다. 우선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여행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이 아빠를 닮았다. 절약에 대한 습관도 어렸을 적부터 자리 잡아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바로 일어나 끄고 온다. 지금까지 받은 세뱃돈을 그대로 저금통에 간직하고 쳐다도 보지 않는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는 가정 내 권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여행을 강행하지만 지속적인 부자의 반대 속에 차츰 그 동력을 잃어 간다.
그러던 중 엄마가 새로운 여행방식을 제안하며 가족의 여행에 중흥을 도모한다. 지금까지 호텔이나 리조트 위주의 여행을 가던 것을 캠핑으로 바꾸며 비용을 절감하되 여행의 빈도를 높이라는 강압적인 요구였다. 부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가장 큰 논리가 가정 내 예산초과로 인한 여행중단을 명분으로 삼아왔는데 이제 그 방식이 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그동안 비용 때문에 여행을 많이 못 다녔던 거니 이제 캠핑을 자주 다니자고..."
"아니 거의 두 달에 한 번 꼴로 여행을 다녔는데 그게 많이 못 다닌 거면 자주 다닌다는 기준이 뭐야?"
"기본적으로 내 친구 중에 캠핑 좋아하는 애는 거의 매주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매 주면 리조트보다 더 비쌀게 자명했다.
"아니, 그렇겐 못 다니지... 일단 비용이 줄어들긴 하는 거야?"
"그럼 기본적으로 호텔이나 리조트 숙박하면 아무리 싸도 20만 원 가까이하는데, 캠핑은 싼 사이트는 5만 원이고 노지도 있어, 그런데는 무료야"
"근데 가서 쓰는 돈도 만만찮고 캠핑도구들도 다 비싸다고 들었는데?"
"밥 같은 건 미리 많이 안 사가고 그냥 근처 하나로마트 같은 데서 그날그날 보고, 캠핑도구는 생활비로 안 하고 내가 복지포인트 받은 걸로 제일 저렴한 걸로 구비할 거야"
일단 방침이 정해졌으니 근본을 건드리면 해결이 안 된다. 우선 다른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 없다는 말에 지켜보기로 한다. 그렇게 구비한 사계절 텐트와 최소한의 캠핑장비로 최소한의 여건이 갖춰지고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거의 2주에 한 번 꼴로 캠핑을 다닌다. 장비와 관련해서는 엄마의 회사 복지포인트를 활용하여 구비했기 때문에 따로 추가 예산청구가 없어 넘어갔고, 식비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하나로 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식재료를 구매해 직접 해 먹으며 실제 다른 여행대비 건별 비용이 최소화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나간다면 캠핑이 더 경제적이라는 사실이 판명되고 너무 잦은 캠핑일정만 통제해 가며 여기저기 다양한 지역을 여행한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겨울이 찾아왔다. 예산을 최소화해서 장비를 구비한 우리에게 유일한 텐트는 사계절 텐트 하나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엄마는 겨울 캠핑의 묘미를 느끼기 위해 또다시 캠핑을 준비하여 통보한다. 텐트가 얇아 춥지 않겠냐는 염려의 의견에 단지 기우일 뿐이라고 엄마가 일축한다.
때는 12월 23일 장소는 겨울에 그토록 춥다는 월악산 중턱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유독 추웠다. 23일은 금요일로 회사에서 퇴근 후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집에 오니 이미 7시가 넘어 서둘러서 출발해도 밤 10시가 넘을 예정이다. 엄마는 이미 짐을 싸두었고 짐을 가지고 내려가 차에 넣고 앉았는데 어제 온 눈이 꽁꽁 얼어붙어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 주차장에 서있던 차의 창문이 눈으로 덮인 채 묵묵히 서있다.
일단 빨리 출발을 해야 했기에 앞유리 쪽으로 히터를 켜고 기다려보는데 도무지 녹을 생각이 없다 급한 마음에 내려서 유리창을 닦는데 꽁꽁 얼어 잘 닦이지 않는다. 짜증이 한차례 솟구쳤다. 하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리면 여행 내내 분위기가 다운되니 표정관리를 하며 다시 차에 앉아 겨우 녹은 눈을 와이퍼로 문지르며 출발한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차를 서둘러 몰아 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달려 어느덧 서울을 지나 마장휴게소가 보였다. 퇴근 후 바로 출근하느라 저녁식사를 못 했고, 당시 전기차를 신차로 받아 타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전기충전량이 거의 바닥이었다. 우선 마장휴게소에 가서 전기차도 충전하고 간단히 요기도 하기로 한다.
넓은 마장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전기차 충전장소를 찾았더니 넓은 주차장 저쪽 구석에 한자리 밖에 없었다. 급한 마음에 차를 몰아 전기차 충전소 자리에 차를 세우자 바로 옆에 똑같이 전기차를 충전하려던 차가 간발에 차로 우리 옆에 주차하고 우리 충전이 끝나기를 기다리기 위해 차를 세운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금만 늦었어도 충전을 못할 뻔했다.
차에서 내려 얼른 충전기 쪽으로 다가갔다. 한발 늦은 옆 차주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기분 좋게 충전기로 다가가 충전시작 버튼을 누르고 이제 차의 충전커버를 여는 버튼을 누르는데 이상하게 작동을 안 한다. 잘못 눌렀나 싶어 리모컨의 그림을 다시 확인하고 다시 꾹 눌렀는데 여전히 반응을 안 한다. '얼었나?' 그렇다 충전커버 안쪽이 얼어서 기계식으로 열리지 않는 것이다. 따로 수동으로 여는 방법이 없어 계속해서 리모컨을 눌러보지만 반응이 없다.
옆에 차주가 유심히 내 행동을 관찰한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 거면 비켜달라고 할 것 같다. 여기서 비키면 저쪽 차 충전시간 40분에 우리 차 충전시간 40분 오늘 안에 못 간다. 등뒤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바로 아내를 부른다.
"여보, 대만이 손에 들고 있으라고 준 손난로 있지 그거 빨리 줘봐"
"왜? 그러는데?"
"여보 뒤 보지 말고 저쪽 차에서 비켜달랄 수 있어, 어서 건네줘 충전커버가 안 열려..."
상황을 파악한 아내가 재빨리 대만이 주머니에 있는 손난로를 꺼내 준다. 온기가 있지만 부족하다. 서둘러 위아래로 흔들어 마찰을 가한다. 어느덧 열을 내며 뜨거워지자 바로 충전커버가 있는 곳에 손난로를 대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비기 시작한다. 커버와 본체사이 틈으로 최대한 난로를 밀어 넣고 미친 듯이 비벼댄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옆차에서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고 이제 바꿔달라고 할 것 같다. 안된다. 무조건 충전 빨리하고 가야 한다. 미친 듯이 손을 비벼댄다. 얼마쯤 비볐을까? 옆차에서 문소리가 들린다. 나와서 얘기하려나 보다. 속으로 '안돼'하고 외치며 영혼까지 비빈다.
그 순간 충전기 커버 안쪽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그와 동시에 리모컨을 누르니 드디어 열렸다. 물 한 방울이 안에 들어간 채로 얼었나 보다. 그 눈물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옆 차주가 무언가 말하기 전에 바로 플러그를 내차의 충전기에 꽂는다. 살았다. 옆차주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자기 차에 오른다. 겨우 충전을 시작한 나를 보며 아내가 말한다.
"배고파"
"아... 여기가 메인 휴게소에서 멀어서... 뭘 사 와서 차에서 먹자."
"그래 그럼 빨리 사 와"
"어?... 어 그래 그럼 떡볶이랑 애 먹을 핫도그 같은 거 사 올게"
"그래 얼른 사와 배고파"
"응"
그렇게 가장 추운 겨울날 한참을 걸어 간식을 판매하는 메인 거리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 한적한 마장휴게소 어느 한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핫도그를 서둘러 구매하여 차로 향한다. 차로 향하는 그 길이 참으로 멀다.
겨우 차에 도착하여 운전석에 잽싸게 앉는다. 아내와 아들이 목을 빼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아내에게 사온 간식을 건넨다. 이때... 대만이와 대화하며 간식을 받던 아내의 손에서 간식이 미끄러진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음식이 떨어진다. 대형사고이다.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떡볶이다. 그걸 쏟았다.
천만 다행히 봉지 속의 내용물이 밖으로 쏟아지지 않아 인계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차는 무사하다. 다행히 핫도그까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핫도그를 건네고 살릴 수 없는 떡볶이는 봉지채 버리고 돌아온다. 그렇게 굶기로 한다. 또 사러 갈 기분도 아니고 이제 충전도 어느 정도 끝나서 옆차를 위해 자리를 빼줘야 하며 심지어 갈길이 멀다. 그렇게 월악산 중턱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눈이 많이 쌓여서 있다. 자세히 보니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것이 우리 앞으로 달린 차가 없어 보인다. 만약 있었다면 눈 위로 타이어 자국의 길이 나있어야 하는데 소복이 쌓인 채로 우리를 반기고 있다. 겁에 질린 채 가로등 하나 밝히지 않은 어두운 산길을 쌓인 눈을 헤치며 달리며 캠핑장으로 간다.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얼마나 달렸을까? 상향등을 켜고 달리던 차의 불빛에 캠핑장의 간판이 들어온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살았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피로가 찾아온다. 빠르게 텐트를 치고 요기를 하고 그냥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캠핑장에 들어서니 인기척이 없다. 조용한 산중턱에 위치한 캠핑장에 인적이 없으니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아내에게 캠핑장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하라고 이야기한다.
아내가 전화를 걸어도 대답이 없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다 주인집처럼 생긴 집을 발견하여 그 앞쪽으로 차를 댄다. 아내가 내리고 주인집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뒷좌석에서 그저 앞만 바라본다. 한참을 두드리자 주인집 문이 열리고 캠핑장 여주인이 나온다. 나오면서 보인 그 경외의 눈빛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 날씨 이 시간에 과연 사람이 온 것인지 귀신이 온 것인지 잔뜩 의심하는 눈빛이다.
한동안 대화를 나눈 후 아내가 다시 조수석에 올라탄다. 캠핑장 주인이 알려준 번호를 찾아 눈에 반사된 흐릿한 달빛을 따라 번호를 하나씩 확인하며 나아간다. 다행히도 텐트 자리 위에 천막이 쳐져 있는 자리를 배정해 줬다. 몇 개 없는 자리인 것 같은데 우리 외에는 날씨 때문에 다들 캠핑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장박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 텐트 외에 주변에 어떠한 텐트도 쳐져 있지 않았다. 이 넓은 캠핑장에 거의 우리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천막아래 배정해 준 텐트자리 주위로 눈이 쌓이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빠는 텐트를 꺼내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데...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