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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08. 2019

10. 의미 없는 반복 업무에 지쳐간다면?

지난 편 - 9. 이곳에 뼈를 묻겠다고?


| 1936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풍경 |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컨베이어 앞,

찰리 채플린은 스패너로 볼트를 조이는 한 가지 동작만 반복한다.

컨베이어에 쉼 없이 딸려오는 일감에 정신 차릴 틈이 없다.

볼트 조이는 동작만 미친 듯이 반복하고, 잠깐도 멈출 수가 없다.

채플린의 눈에는 이 세상 모든 게 조여야 할 볼트로만 보인다.

결국 동료의 코까지 스패너로 조이려 달려든다.


| 80년 후, 사무실 풍경 |

“달대리! 주간회의 자료 아직이야? 빨리 마무리해!”

달대리는 회의 자료를 다급히 작성하고 있다.

매주 반복되는 일상. 내용도 별 차이 없이 반복된다.

오히려 글자 크기와 줄 간격을 맞추는 데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료의 질을 위한 고민은 없고, 형식을 위한 기계적인 손놀림뿐이다.

머리에 그렸던 창의적 인재의 모습은 없고, 컴퓨터 한 대만 덜렁 남아 있다.


 매일, 매주, 매월 수많은 보고서가 쉼 없이 찾아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가 지겹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왜 일해야 하는지 명분도 부족한 데다 경력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소재를 주고는 참신한 보고서를 비벼보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의미 없는 반복 업무에 속박되어야 하는 현실은 열악하다. 그러나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고 체념해버리면 삶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의욕 상실로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쳇바퀴 속에 있기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인식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시키니까 하는 거죠 뭐”, “전 일개 톱니바퀴일 뿐이라고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 자유가 없다면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떠밀려하는 일은 효율도 나지 않거니와 괴로움만 커질 뿐이다.


 둘째, 업무능력이 퇴화한다. 자신의 업무를 반복 업무로 한정 짓기에, 새로운 일은 기피한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자원이 투입되어야 해요. 현실성이 부족해요”, “예전에는 비슷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결국 취소됐어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일을 맡지 않으려 발버둥 칠 것이다. 새로운 업무는 진취적인 사람에게는 멋진 자극제이지만, 쳇바퀴에 갇힌 사람에게는 끔찍한 스트레스가 된다.


셋째, 삶이 불행해진다. 쳇바퀴를 굴리는 것은 부정적 인식이다. 오염은 번지기 마련이고, 부정적 인식 또한 당신의 생각 전체를 잠식한다. “직장 생활은 머슴살이지”,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먹고살려고 직장 나오는 거지”라며 시시때때로 중얼거릴 것이다. 부정적 인식의 바퀴가 당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굴러다니게 되면, 당신은 점차 무기력해지며 우울해질 것이다.


쳇바퀴 속에 갇힌 인식을 구해내자


 반복 업무의 늪에 빠진 당신의 생각들을 몇 개 건져내 보자.

 첫째,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의 인식이 달라진 것뿐이다. 반복 업무라는 인식은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당신은 반복 업무를 했지만, 각 업무의 흐름을 읽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이제야 훤히 알게 됐다. 반복 업무라고 규정지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것이다. 비로소 부하에게 물려줄 실력을 갖추었다. 그러니 반복 업무라는 부정적 생각보다는 통과의례로 받아들일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반복 업무는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게다가 회사 규모가 클수록 관리와 유지를 위한 업무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에서의 신뢰가 높은 만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기업의 내부 절차가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당신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에 반복 업무를 처리할 누군가는 꼭 필요하다.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한동안은 그 희생을 나눠 짊어진다는 마음가짐 역시 필요하다. 나의 경우, 당장은 희생이라 생각될지라도, 지나고 보면 ‘자신이 희생되었다’는 오해 대신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해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의미 없는 반복 업무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삶을 더 빛나게 할 수 있다. 바로 ‘메기 효과’다. 미꾸라지를 장거리 운반할 때 미꾸라지만 있으면 금방 죽는다. 하지만 천적인 메기를 넣어주면, 미꾸라지는 메기 때문에 도망치느라 목적지까지 생기 있게 헤엄친다. 미꾸라지를 산 채로 목적지까지 운반할 수 있다.

 의미 없는 반복 업무는 소중한 시간을 먹어치우는 메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메기 덕분에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허비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시간을 잡아먹는 포식자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태만하게 시간을 보내버렸을 것이다. 반복 업무에 대한 불평보다는, 남은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넷째, 당신은 반복 업무를 평생 맡지 않는다. 한동안 맡을 뿐이다. 나 역시 단순 보고서 작업에 매몰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상사에게 반복 업무 전담에 대한 부당함과 경력 개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어필했고, 상사도 그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다. 1년 4개월 만에 그 보직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 업무는 1년 순환보직으로 운영된다. 꾸준한 건의 덕분에 필자뿐만 아니라 부서의 인력순환도 건강하게 바뀐 것이다.


반복 업무는 모두의 일이다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반복 업무로 인한 시간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보고는 빨리 해치우고, 본연의 업무에 돌아오라.” 신입사원 때 멘토가 해준 조언이다. 신규사업 TF(Task Force)여서, 보고 업무가 참으로 많았다. 보고받는 사람만 다를 뿐 내용이 비슷한 중복 보고서도 많았다. 많은 보고서 때문에 정작 실무를 처리할 시간이 없어, 실무 진도는 지지부진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멘토는 매번 신속하고 논리 정연한 보고서로 신임을 받았다. 실무 또한 일정에 맞춰 척척 진행했다. 최초 보고서와 근거 자료

를 잘 구축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양식의 보고서에도 신속하게 대처한 덕분이다.


 후배가 있다면 잘 알려주고 물려주면 된다. 상사 J는 유쾌한 사람으로 팀의 활력소였다. “내가 일하기 싫어서 미루는 게 아냐. 너와 나 모두를 위해서야! 알지?(웃음)” 종종 이런 농담을 하며 업무를 후임에게 돌리곤 했다. 그는 업무가 익숙해졌다고 판단되면 나에게 물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었고, J는 내가 업무를 했던 그 시간에 새로운 업무를 익혔다. 자잘한 일에 매몰되는 대신 큰 그림을 고민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곤 했다.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도 기여했다.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일은 소홀한 채 부하의 일에 침범하는 이들도 있다. 본인이 해야 할 의사결정은 하지 않은 채 부하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한다. 업무를 물려주지 않고 꼭 껴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선장이 됐으면 키를 잡고 배를 몰아야 하는데, 수시로 노를 빼앗아 젓고는 “나 잘하지? 내가 소싯적에 노 좀 저었어!”라며 인정받고 싶어 한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항상 평탄할 순 없지만, 힘들고 두렵더라도 반복 업무에 숨지 말자. 부하에게 일을 잘 물려주고 부하와 함께 크는 사람이 되자. J의 유쾌함도 자신을 반복 업무에 옭아매지 않았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복 업무를 피할 수 없는 당신. 이제 갈림길 앞에 섰다. 쳇바퀴 속에 살 것인지, 아니면 마음속에 메기를 한 마리 키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반복 업무가 눈에 들어오면 ‘메기’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메기를 키운다면, 반복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미꾸라지처럼 목적지까지 싱싱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메기가 찾아올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얄미웠던 메기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방해꾼’이 아닌 ‘조력자’로 탈바꿈할 수 있다.



다음 편 - 11.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요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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