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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09. 2019

11. 저는 하고 싶은 게 없는데요

    지난 편 - 10. 의미 없는 반복 업무에 지쳐간다면?


저는 하고 싶은 게 없는데요


| 달대리의 오후 5시 55분 |

아! 어느덧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오후 6시는 형식상의 퇴근시간일 뿐.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다. 퇴근 직전에 날아든 상사의 지시 때문에 힘껏 당겨놓아 봤자 퇴근시간은 제자리다. 오늘도 쌓여가는 업무를 뒤로한 채 급한 불만 끄고 퇴근길에 오른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늦은 밤. 남들처럼 자기 계발이나 취미에 쏟을 시간은커녕 가족과의 대화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오늘 하루도 쉴 새 없이 지나갔네. 도대체 왜 이리 바쁜 거지? 남들은 앞으로 잘도 헤쳐나가는데, 나는 언제나 느린 거북이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자신만 제자리인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간절한 목표 하나라도 붙잡고 죽어라 발버둥 치고 싶어도 그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다. 매일 같은 모습의 일상을 살아가지만, 내 안의 ‘방향을 잃은 한 어린아이’를 보는 순간 현실이 낯설어지고 만다. 도대체 여긴 어디며, 난 왜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인가.


진정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르겠다면 나침반을 상실한 것이다. 회사라는 바다를 헤엄치며 거친 파도에 너무 많은 물을 들이켰다. 적당한 수분 섭취는 경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지만, 지나치면 자아는 익사한다. 무턱대고 일에만 파묻히다 보니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 자아가 해변에 떠밀려와 의식 없이 누워 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말할 의식 조차 남아 있지 않다.

 당신은 목적지를 설정해야 한다. 목적지가 없으면 표류를 거듭하다 거센 파도를 만나 다시 해변으로 떠내려올 것이다. 목적지로 가는 방향만 확실하다면 항로를 잃고 표류하다가 떠밀려오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고 싶은가? 우리에게는 메시아가 없다. 모세나 마호메트처럼 갑자기 계시를 받을 순 없다. 대부분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짐을 버려야 한다. 첫째가 ‘진정’이고, 둘째가 ‘일’이다. 일단 그냥 하고 싶은 활동부터 찾아보자.

 ‘진정’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별할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하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인지, 주변에서 좋다고 하니까 덩달아서 하고 싶은 것인지 잘 구별하지 못한다.

 ‘회사 때려치우고 카페나 차릴까?’ 직장인 중에 이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으리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주인의 밝은 표정을 보고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진정으로 커피를 좋아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는가? 단지 평온함을 원하는 것인가? 욕구(평온함)와 그 욕구를 채우려는 수단(카페)을 구분하자. 휴일 없이 일하는 카페 주인은 주말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당신의 평온함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일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활동을 발견해도 당장 돈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지 않아서다. 하고 싶은 활동을 지속하다 보면 그 활동을 통한 돈벌이 능력은 자연스레 생긴다. 내가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때는 2년 전이다. 글과 담을 쌓았던 공돌이라 전공서적 외에는 거의 읽지 않았다. 우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의 구절이나 신문의 칼럼을 베껴 썼다. 글은 그냥 써지는 게 아니었다. 지식이 턱없이 부족해 글

이 막힐 때마다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통찰 또한 부족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 걸을 때나 밥 먹을 때도 곱씹으며 사고력을 키웠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빨리빨리’ 강박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속성 마케팅이 활개를 친다. “3개월 완성!” 그 짧은 기간 안에 영어를 마스터하고 S라인을 만들 수 있다

고 한다. 빨리 이루려는 욕심을 경계하자. 그렇지 않으면 마케팅에 현혹되어 비싼 수업료만 날려버린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이유가 뭘까? 진정한 욕구를 선별할 안목과 숙련된 능력을 갖추지도 않았는데 마음속에서 펑! 하고 나타나길 바랐으니 안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저’라는 명목으로 경유해보기


 그저 하고 싶은 활동부터 일단 해봐야 안다. 아무리 시시하고 의미 없어 보이더라도 약간의 호감만 가면 그것부터 해보자. 스무고개 놀이에서 답을 찾는 것처럼, 질문을 던져야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단 실천함으로써 질문을 던져보라. 스무고개 놀이가 재미있는 건 질문을 할수록 답이 좁혀지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여정 또한 스무고개 놀이처럼 즐거울 것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댄스, 수영, 요가, 스쿼시 강습도 받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피아노와 카메라는 별로 쓰지도 못하고 집에 모셔두었다.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만큼 잘하지도 못했고 계속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결코 시간과 돈 낭비가 아니었다. 의식을 깨우는 심폐소생술이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경유지였다.

 경유지를 거치면서, 주변에서 비롯된 욕구가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욕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경우 감정과 마음의 원리에 대해 관심이 깊었고, 아는 내용을 정리해서 나누길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직장에서도 스스로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나눠주며 보람을 느꼈다. 직장 생활에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매뉴얼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자 이왕이면 ‘책을 내고 저자가 되자’는 목표도 생겼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고 에너지가 고갈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에너지가 증가한다. 음식을 섭취해야 몸의 심장이 뛰듯이, 하고 싶은 활동을 섭취해야 마음의 심장이 뛴다. 마음의 심장이 뛰면 삶이 재미있고 활기가 넘쳐흐른다.

 결코 시간이 부족하지도 않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불필요한 활동은 하지 않게 된다. 목표가 생기면 해야 할 업무는 보다 빨리 처리한다. 오히려 지나가는 시간은 줄고 살아가는 시간은 늘어난다. ‘지나가는 시간’은 의도치 않게 주변에 휩쓸려 보내는 헛된 시간이고, ‘살아가는 시간’은 자신의 의지로 빚어내는 참된 시간이다. 우리는 지나가는 시간은 사라지는 시간임을 잘 알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여정은 삶의 빈자리를 의미 있는 기억으로

부지런히 채워나가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여정이 업무의 질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할 때, 그 활동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 세상에 완벽히 분리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통하는 법이다. 밖에서 얻은 영감을 업무에 적용할 때 창의적인 성과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여정은 업무에 도움 주는 관계로만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업무가 당신의 여정을 도와주기도 한다. 내 경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글을 쓰고 배우는 데 전념하고 싶었지만, 잦은 야근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회사만큼 글쓰기 소재가 풍부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이 해결됐다. 근무시간은 더 이상 자신의 발목을 잡는 억압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소재를 찾는 작가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직장인과 작가라는 두 마리 토끼가 직장인이자 작가라는 근사한 한 마리 토끼로 바뀐 것이다.


욕심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기


 욕구와 행복의 관계를 착각한다. “욕심을 내지 마라”라는 말을 자주 듣지 않는가? 욕심이 진정한 내면에서 나왔는지, 주변에서 온 것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욕심을 좇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해라”라는 말은 무분별한 욕망 추구 때문에 현재를 놓치지 않도록 잘 살펴보라는 의미다. 이 말을 오해해서 ‘적극적인 욕구 실천’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땅에 조그만 원을 그리고 그 안에 갇혀버린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자조한다. 욕구가 없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마음이 죽은 것이다.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욕구가 없을 수는 없다. 욕구에 휘둘리지도 않고 억압되지도 않을 때, 균형 잡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 조선 말기 쇠퇴하던 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선사의 일화는 사람이 어떻게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경허 선사가 청양 장곡사長谷寺에 머물 때의 일이다. 선사가 곡차를 잘 드신다는 소문을 듣고 인근 사람들이 곡차와 파전을 비롯한 여러 안주를 들고 왔다. 이것을 먹다가 만공에게 물었다.

“너는 술이나 파전이 먹고 싶은데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러자 만공이 대답했다.

“저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습니다. 굳이 먹으려 하지 않지만, 생기면 또 굳이 먹지 않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선사가 대견한 듯이 보는 척하다가 말했다.

“그래? 참으로 너의 도력道力이 대단하다. 근데 나는 말이다. 너만큼 도력이 없어서 술이나 파전이 먹고 싶으면 참을성이 없어서 말이다. 밭을 정성스럽게 갈고 좋은 거름을 주고는 좋은 밀씨와 파씨와 깨씨를 구해다가 정성스럽게 가꾸고 알뜰히 키워서 밀로 누룩을 만들고 깨로 기름을 짜고 밀가루와 파를 버무려서 맛있는 파전을 만들어 술과 함께 맛있게 먹겠네.”

그 말을 들은 만공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당시 제자인 만공스님 또한 어떠한 환경에도 휘둘리지 않는 평온함과 자유를 누리는 경지에 있었다. 하지만 경허 선사는 그 경지를 초월해 생각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깨달음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휘몰아치는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유야무야 허비 하지 말고, 경허 선사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

 심리학의 기본 뼈대가 되는 ‘인지 부조화 이론’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환경이 다르면 견디지 못한다. 오히려 환경에 맞춰 생각을 바꿔버린다.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 높은 곳에 열린 탐스런 포도를 먹지 못하자 생각을 바꾼 여우처럼. 마음의 평온은 두 가지다. 자신을 속이는 평온과 자신이 만족하는 평온. 환경이라는 색안경을 쓴 채 자신을 속이지 말고, 환경을 직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펼쳐 자신이 만족하는 평온을 추구해야 한다.

 지혜로운 삶은 갈등을 줄여가는 삶이다. 자신과 주변이 연결되어 어울리는, 조화로운 삶이다. 머릿속 생각과 환경이 따로 놀면 절대 평온할 수 없다. 머릿속 욕구와 현실은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한다.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고 추구하면, 현실과의 간극을 한 걸음씩 좁힐 수 있다. 좁히는 한 걸음마다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저마다 인생을 바꾼 이야기나 좌우명이 있을 것이다. 경허 선사의 일화로 내 인생은 바뀌었다. 필자는 열다섯 살까지 시험 성적에 대단히 집착했다(그렇다고 모든 과목을 잘한 것은 아니었다). 내면은 무시하고 현실에만 휘둘려 살았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성적에 끌려가는 인생에서 무상함을 느꼈다. 현실에서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이후 서른 이전까지 현실을 등한시했다. 도를 이루고자 고1부터 수년간 단전호흡 수행을 하기도 했다. 현실 세계를 천대하고 유야무야 살았다.

 서른에서야 경허 선사의 일화를 접하고 삶이 바뀌었다. 허와 실 한쪽에 집착하지 않고, 비로소 중용을 추구했다. 불교에서 금지한 오훈채(마음을 어지럽히는 다섯 채소 :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와 술을 먹겠다니, 경허 선사를 엉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 불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깊은 깨달음을 펴신 분이다. 깨야 할 착각이 그토록 두텁고 견고하기 때문에 강하게 표현했던 것뿐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성공을 쫓는 불나방 같은, 실의 세계보다는 허의 세계에 살지도 모른다. 자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유폐된 내면의 욕구를 일상으로 구출하자.


자원이 되지 말고 자산이 되어라


2015년 봄, 간담회에서 CEO는 애정 어린 마음을 담아 당부했다. ‘영스데이Young’s Day’라는 간담회 이름만큼이나 필자가 본 CEO 중 젊은 직원과의 소통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 사람이었다. 자원은 소모되어 사라지지만 자산은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니, 부디 자산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냉정히 고민해 보았다. 자원에 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산이 되기로 다짐했다. 굳은 다짐이라는 훌륭한 디딤돌이 있었기에 이 책 또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진정한 리더는 부하를 잘 써먹는 데 머무르지 않고, 부하 스스로 깨우치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면, 흔들리지 않는 현재를 살면서 보다 견고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욕구를 발견해가면서, 잡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중심 잡힌 행보는 자산이라는 견고한 미래로 이끌어줄 것이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라는 잣대는 이제 그만 내려놓자. 아무도 대답하기 힘든 어려운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 그 대신 자신에게 보다 더 하고 싶은 활동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자.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내딛자.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란 없다. 세상 어느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이다. 우리는 쉼 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보고 들으며 산다. 그런 우리가 항상 같은 욕구를 가진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 또한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대체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말고, 일생이 다할 때까지 ‘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자.


다음 편 - 내 발목을 잡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법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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