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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10. 2019

12. 내 발목을 무는 착각 벗어나는 법

느리게 열린 답 찾기

| 월요일 아침 팀 회의 |

부장: 지난주 경제성 검토 지시한 프로젝트들 어떻게 돼가나?

과장: 첫 번째 프로젝트는 이익 확보가 힘듭니다. 레드오션 상품이라 경쟁이 치열합니다. 최근 유사 프로젝트도 저가 수주로 논란이 많았고요. 두 번째는 추진하기 곤란합니다. 전담인력을 편성해 3개월이나 투입해야 하는데, 타 프로젝트에 인력을 투입하느라 인원이 부족합니다.

부장: 왜 안 된다는 말뿐인가! 직무별 전담인력 규모와 기간을 상세히 파악해서 다시 보고하게. 달대리와 막내 데리고 서둘러 검토해.

막내: 전 저번에 지시하신 건 마무리해야 해서 힘들 것 같습니다.

부장: 그럼, 달대리만 데리고 상세보고서 작성해.

달대리: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기획안 보셨는지요?

부장: 급하지 않은 건이니 일단 보류하자고.


| 달대리의 머릿속 |

‘부장님은 왜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 걸까? 정말 독단적이야. 이대로 가다간 실적이 떨어지고 말 거야. 팀의 운명도 오래가지 않겠어!’

‘과장님은 왜 매사에 부정적인 거야. 이야기하다 보면 에너지가 쭈욱 빠져버린다고.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안 된다는 말만 하려고 출근한 건가. 배울 게 없는 사람이야. 상대하지 말아야겠어.’

‘막내는 도대체 왜 그래? 회사에 놀러 오는 거야? 어쩜 저리도 뺀질거리고 엄살이 심한 거지. 내가 모를 줄 알어? 의자에 엉덩이 좀 진득하게 붙이질 못하고 수시로 사라지질 않나. 퇴근시간만 되면 약속있다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버리고. 항상 화면에 띄워져 있던 메신저만 닫았어도 진작에 끝냈을 일을 아직도 끌고 있네. 쯧쯧. 누군 정말 원해서 일하는 줄 아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 정말 요즘 신입들은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지 않단 말야.’


생각의 속도 늦추기


달대리가 동료를 신중하게 판단하는가? 아니다. 동료들의 단편적인 모습에 투정할 뿐이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특히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은 잠시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근무시간 중에는 끊임없이 빠르게 생각하는 직장인으로서 존재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제때 처리하려면 어쩔 수 없지만, 일상에서는 빠르게 생각하려는 습관 때문에 단편적인 생각만 이어질 뿐이다.


문제는 빠른 생각의 관성으로 동료에 대해서도 단편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다. 편견은 설익은 감정을 생산한다. 작은 것에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나며 의욕이 떨어진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대화를 나눌수록 바르게 내릴 수 있다. 성급한 판단을 억제하여 부정적인 감정도 예방할 수 있다. 성급한 판단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3가지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 성급한 판단은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새옹지마塞翁之馬는 변두리 땅에 사는 노인의 말이란 뜻으로, 성급한 판단의 부질없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다.


나라 변두리의 외진 마을에 살던 노인에게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어느 날, 말이 국경을 넘어 달아나자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노인을 위로했다. 하지만 노인은 덤덤했다. 어느 날, 말이 암말과 짝을 이뤄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환호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역시 노인은 덤덤했다.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자 마을 사람들은 슬퍼하며 노인을 위로했다. 하지만 노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쟁이 터지자 마을의 젊은이가 모두 징집됐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앞의 일로 왈가왈부, 일희일비한다. 노인이 덤덤하게 일상을 충실히 돌보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일을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했으며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그동안 정작 자신의 일상은 돌보지 못했다. 노인은 이미 숱한 경험을 하며 체득했을 것이다. 짧은 기간의 표면적 사실에 휘둘려봤자 그것은 모두 부질없음을.

 

 둘째, 분노는 분노한 사람의 가슴속에만 있다. “분노란 뜨거운 숯을 자기 손으로 잡는 것이다”라고 붓다는 말했다. 아무리 분노해봤자 소용없다. 신은 당신의 아픔을 위로해주지도, 상대에게 벌을 내려주지도 않는다. 감정만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감정이 생성됐는지를 역으로 추적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오해를 바로잡거나 그 사건 자체를 방지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셋째, 완벽한 것은 없으며, 항상 마음에 들 수도 없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성철스님은 말했다. 산사태나 홍수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산이나 물을 원망한다. 하지만 산이나 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산은 산사태를 일으키긴 하지만 신선한 공기와 훌륭한 목재, 희귀한 약초를 제공해준다. 물은 홍수가 되어 우리를 덮치지만 땅의 갈증을 해결하고 온갖 생물을 자라나게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파편으로 판단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달대리는 곰곰이 생각을 다듬어보았다.

 ‘아직도 내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은 부장님께 서운해. 하지만 생각해보니 부장님께서는 요즘 회의가 많아 부쩍 바빠지셨는데, 의견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들으실 여유가 없었을 것 같아. 게다가 나는 과장님에게도 보고하지 않은 걸 바로 부장님께 보고 드렸어. 신입사원이 나에게 회사 실정과는 엉뚱한 얘기를 하듯이, 나도 맥을 제대로 짚지 못했을 수도 있어. 오히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등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아. 과장님께 조언을 구하고 다듬은 후에 다시 말씀드려야겠어.’

 ‘과장님은 요즘 난관에 부딪힌 일만 잔뜩 맡았던데…. 아마 마음이 조급해서 고민이 많으시겠지. 바쁘고 힘들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지. 이런 때일수록 과장님의 업무도 나눠 처리하고 자주 도와드려야겠어.’

 ‘후배가 고민이 있는 게 아닐까? 일하는 즐거움을 못 느끼는 건 아닌지 이야기를 나눠야겠어. 나도 사원일 때는 상사의 관심에 항상 배고팠잖아. 방치되는 설움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 써야겠어. 내가 먼저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차분히 나눠보자.’


 3초만 참으면 화에 휘둘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료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서기 전에 3가지를 이해하면 된다. 그러면 파편에 의한 오해가 본질로의 이해로 바뀔 것이다. 3가지 이해는 나, 상대, 상황을 바르게 보는 것이다.

 첫째, ‘나의 판단 기준이 너무 높진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아무도 넘을 수 없는 기준 앞에 세울 수 있는 동료는 그리 많지 않다.

 둘째, ‘상대에게 다른 사정이 있는지’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우선 동료의 탓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동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살펴보면 다른 사정이 있었음을 알기 마련이다.

 셋째,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전체 업무의 마감기한이 부족하면 각 부서마다 일정 확보를 위해 아옹다옹 다툴 수밖에 없고, 모두 야근하며 희생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다들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내 몫의 희생을 감내하고 동료를 다독이며 함께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열린 답 찾기


위 3가지 요소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내려야 할까? 사람과 상황에 대한 고정된 잣대가 아니라 그 특성에 맞는 유연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 달대리, 입사 2년 차에도 좌충우돌 |

 신입 첫 해는 신규사업TF에서 사업분석 보고서와 설계 매뉴얼을 구축했다. 특히 설계 매뉴얼 구축은 신속함보다는 꼼꼼함이 중요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일주일간 충분히 고민하고 나서 묻도록 지시받았다. 1년을 일하다 보니 이것이 일하는 방식으로 굳어졌다.

 2년 차에는 새로운 팀에서 실제 입찰을 준비하게 됐다. 상황이 변했음에도 예전 방식을 사용하다가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마감시한이 일주일인데, 마감일이 되어서야 각종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정성껏 보고했기 때문이다. 해당 업무에는 무엇보다도 신속성이 중요했는데, 여전히 정확성 위주로 일을 했던 것이다.


 일의 특성에 따라 업무방식이 달라지듯, 사람에 따라서도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내하라”는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다. 물론 충동적인 사람이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는 조언이다. 하지만 참는 게 습관인 사람에게는 화병을 키우고 사업 타이밍을 놓치게 하는 엉터리 처방이 된다.

 “자신을 내려놓아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란 자아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자만심을 품기 쉽다. 이때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해짐으로써 끝을 모르는 탐욕과 자신이 최고라는 독단을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내려놓을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자존감의 기근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독이 되는 말이다. 더 내려놓다간 남은 목숨줄마저 내려놓을 수도 있다.


 갈등의 해결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와 병의 해결책은 치우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다. 처방전이 각기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강식품을 유행을 좇아 무분별하게 먹어 치운다.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었다면 세계 초일류 건강대국이자 장수민족이 됐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의학에서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증상이라도 동일한 처방을 내지 않는다. 내장기관의 허실을 따져 균형을 맞추도록 각기 다르게 처방한다. 유행에 따라 떠다니는 명언을 추종하기보다는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지침을 받아들여야 한다.

 직원의 특성에 따라서도 지침은 달라야 한다. 너무 꼼꼼해서 일이 잘 진척되지 않는 직원에게는 성과물의 마감시한을 강조해야 하고, 일처리가 빠르긴 하나 듬성듬성 일하는 직원에게는 일의 질과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어야 한다.

 업무의 특성에 따른 대응도 달라야 한다. 긴급한 일은 최소한의 수준만 갖춰 빨리 처리해야 하고, 회사의 명운이 걸린 일은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서 최고의 결과물이 나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500년 전 공자도 제자맞춤식 교육을 했다. 《논어》 <선진>편에서 좋은 말을 들으면 즉시 행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해 공자는 제자에 따라 다른 답을 한다. 성격이 급한 제자에게는 “집안 어른과 상의해서 결정하라”고, 성격이 꼼꼼하고 소극적인 제자에게는 “들은 즉시 실천하라”고 했다.

 혹시 당신은 닫힌 답으로 무작정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닫힌 답은 성급한 결론이다. 나름의 장점이 있는 동료들 앞에 단점으로 가득한 허수아비를 세워 비난하고 있는 꼴이다. 현실을 왜곡하는 허수아비를 세운다면 동료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형편없는 허수아비로 둘러싸여 꽉 막힌 사무실엔 불만이 위험수위까지 차오를 것이다. 고깃국은 오래 끓여야 제맛이다. 오래 고아야 깊은 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동료도 오랜 기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아야 깊은 면을 볼 수 있다. 얼마 끓이지도 않고 맛이 형편없다며 투덜거리진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착각은 성급함에서 비롯된다. 고려사항을 생략하고 결론으로 비약하기 때문이다. 답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평가에 앞서 다양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동료에 대해 생각한다면 깔끔한 일처리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따스한 말을 종종 건네는 정겨운 사람인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까지 챙기는 동료애를 가지고 있는지, 포용적인 사람인지 등을 봐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상사 P는 때론 부하들을 혹독할 정도로 몰아붙이지만, 탁월한 업무능력을 가지고 부하를 속 깊게 사랑했다. 상사 H는 업무능력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동료애로 팀워크를 이끌어냈다. 파편을 보면 비난받을 수도 있으나, 전체를 보면 장점과 단점이 뒤섞인 인간미를 풍기는 동료였던 것이다.


 열린 답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나와 상대방, 상황의 특성이 다르기에 해결방법 또한 모두 다르다. 답 또한 바뀔 것이다. 예전 상황에서는 맞았던 답이 현재에는 더 이상 정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지러이 널린 처방전을 맹신하지 말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처방전을 선별해 유연하게 받아들이자.


다음 편 - 13. 내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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