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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13. 2019

13. 내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

 밭을 일구기 위해서는 작물이 자라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씨앗에서 싹이 돋고, 어떻게 그 싹

이 줄기와 가지를 뻗고 잎을 펼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

야 불행이라는 해로운 열매가 어느 씨앗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으며, 좋은 씨앗임에도 불만족이

라는 쭉정이가 열리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열매가 열리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처럼 감정의 생성원리를

알면 마음밭을 지혜롭게 가꿀 수 있다.


“왠지 불안해.”

“그냥 우울해.”

“나도 모르게 화가 나.”


 감정은 막연하다. 그래서 왠지, 그냥, 나도 모르게 느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감정은 막연하게 생기

지 않는다. 감정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생성된다. 부정적 감정이든 긍정적 감정이든 생성원리는 같다.

마인드 프로그램은 감정이 생성되는 절차다. 그 절차를 수정하여,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거나 긍정

적 감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마인드 리프로그래밍’이다.


감정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생성된다


마인드 프로그램


<오전>

A사원이 보고서를 제출한다.

과장: 야! 입사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보고서가 이따위야? 내가 저번에 말했지? 제대로 좀 써!

A사원: 네….


<오후>

상담실의 문이 열리고, 우울한 표정의 A사원이 들어온다.

A사원: 너무 슬프고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상담사: 왜 슬프고 불안하다고 느꼈나요?

A사원: 저는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데, 능력이 모자라서 슬퍼요. 동료들은 저마다의 몫을 잘 해내고 있는데, 저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요. 게다가 이런 능력으로는 앞으로 직장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해요.

상담사: 어떤 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됐나요?

A사원: 보고서 때문에 과장님께 혼났어요. 지난번에도 혼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정말 잘하고 싶었거든요.

 

 위의 사례에서 A사원은 불행을 느끼고 있다. 당신 또한 회사생활에서 분노, 억울함, 슬픔, 무기력 등 부정적 감정을 느낀 적이 많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생성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감정제조기’를 가지고 있다. 이 감정제조기는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기도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기도 한다. 감정제조기가 작동하는 단계를 보면 우리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은 4단계를 거쳐 생성된다.



 사건(1)을 알아차리고(2), 나름의 판단(3)을 내렸기에 감정이 생성(4)된다. 판단 결과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감정이 생성된다.


 당신이 숲에서 열매를 따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발소리를 죽인 그림자가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1).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피자 저 멀리 있던 털 뭉치가 근처까지 다가와 있는 게 아닌가(2).


 때마침 아버지가 신신당부하며 피하라고 알려줬던 그 냄새가 코에 스민다. 그건 털 뭉치가 아니라 사자였다(3).


 온몸의 털은 쭈뼛 서고, 심장이 쿵쾅거린다(4).


 A사원의 사례를 살펴보자. A사원은 ‘과장의 질책’이란 사건(1)을 눈과 귀로 인지했다(2).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지속적인 직장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언젠가 생계가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3). 그 결과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불안을 느꼈다(4).


다음은 B대리의 상담 내용이다.


B대리: (숨을 몰아쉬며) 너무 화가 나는데, 한편으로는 무기력해요.

상담사: 왜 화가 나고 무기력하다고 느꼈나요?

B대리: 제가 하는 일이라곤 매일 의미 없는 일만 반복하는 거예요.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도 없어요. 게다가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상담사: 왜 보람을 찾을 수 없고, 상황을 바꿀 수도 없다고 느꼈나요?

B대리: 오늘도 메일을 받았어요. 그건 불필요한 관행적인 업무였어요. 아무리 관리팀에 개선해달라고 건의해도 소용없었어요. 그들은 그 업무를 지시한 임원에게 말 한마디 뻥끗하지 않는 걸요. 실무부서를 압박하면 보고서는 만들어질 테니, 굳이 임원 눈 밖에 날 필요가 없거든요. 그러니 제가 아무리 하소연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B대리는 업무 지시 이메일(1)을 눈으로 인지했다(2). 그리고 바꿀 수 없는 불만족스런 현실에 처해 있다고 판단했다(3).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게 됐고 분노를 느꼈다(4).


 감정은 이 4단계를 거쳐서 형성된다. 감정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겼는지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이 아니다. 체계적인 반응의 결과로, 신경자극을 통해 호르몬이 생성되는 물리화학적인 반응이다. 전자현미경으로 신경세포를 물리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화학적으로 검출할 수 있다. 단지 우리는 이 과정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고, 감정을 다루는 훈련 또한 받지 않았기에 막연하게 느꼈을 뿐이다.


 감정제조기의 4단계 작동과정은 인지 치료의 ‘3단계 인지과정(사건 → 신념 → 결과)’을 바탕으로 한다. 인지 치료는 가장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심리치료법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치료와 더불어 심리치료의 양대산맥이다. 2천년 이상 인정받아온 스토아철학과 불교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스토아철학의 대가 에픽테토스는 “사람은 실제 문제보다는 실제 문제에 대한 상상적 불안 때문에 근심한다”고 말했다. 미국 심리학자 알버트 앨리스는 인지 치료의 할아버지다. 스토아 철학에 기반해 인지 치료의 모태가 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를 창안했다. 인지 치료 또한 스토아철학에 근간한다.

 붓다의 가르침에서도 공통점이 관찰된다. 그도 인지과정을 5온(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다섯 단계로 분류했다. 외부의 사건(색)은 감각으로 인지(수, 상)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행)한 후 에야 감정(식)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지 대상은 외부의 것뿐만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도 포함된다. 그래서 인지 대상은 5가지 외부 요소(빛, 소리, 냄새, 맛, 닿음)와 내부 요소(정신의 온갖 것)를 묶어 육경(六境)이라고 했다. 또한 외부 요소를 느끼는 5가지 인지기관(눈, 귀, 코, 입, 혀, 피부)과 내부기관(생각)을 묶어 육근(六根)이라고 했다. 생각이 인지와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를 들어보자


 오늘 김부장에게 뭔가 좋은 일이 있나 보다. 무슨 일에도 싱글벙글이다. 하지만 김부장의 웃는 얼굴을 보고도 난 기쁘지 않다. 왜냐하면 김부장의 얼굴을 보면 어제 소개팅 간다며 일찍 나간 자신을 질책한 기억이 떠올라서다.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평일 약속을 잡는 잘못됐단 말인가. 굳이 평일 저녁에 약속을 잡아 자신보다 일찍 퇴근한다며 핀잔을 준 김부장이 야속했다. 하지만 오늘 기분이 나쁘진 않다. 어제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외모는 물론 성격까지 딱 내 스타일이었다. 다음 데이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보라. 감정은 ‘현재’ 김부장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 김부장의 핀잔을 기억하고 ‘미래’ 소개팅남과의 관계를 상상하는 것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가.

 사람이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수풀 너머 사자의 갈색 털 뭉치(색色)가 있다. 빛이 털 뭉치에 반사되어 독특한 파장으로 사람 눈에 닿는다(수受). 막대 모양의 간상세포는 파장의 세기를 감지하고, 원뿔 모양의 3가지 원추세포(적추체, 녹추체, 청추체)는 파장에서 빨강, 초록, 파랑의 정도를 감지한다. 두뇌에서는 4가지 세포의 자극치를 조합해서 갈색 털 뭉치라는 사물을 만들어 낸다(상想). 과거 학습한 정보와 비교해 갈색 털 뭉치가 단순한 털 뭉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자의 갈퀴임을 안다(행行). 위험한 상황으로 인식하므로 심장이 쿵쾅거린다(식識).


앞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태껏 감정제조기의 원리를 왜 몰랐던 걸까? 첫째는 배우지 않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둘째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위협을 느끼면 일단 도망치려 하는 본성이 있다. 맹수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뛰어야 한다. 아니면 늦다.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행동한다. 감정은 불확실한 생존환경 속에서 최적의 행동을 취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감정(emotion)의 어원 또한 ‘안에서 밖으로’를 뜻하는 전치사 ‘e-’와 행동 ‘motion’의 결합이다. 즉 내면에서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환경에 맞게 당신의 마음을 관리하라


 환경이 바뀌면 생존법도 달라야 한다. 온갖 맹수로부터 위협을 받았던 원시시대에는 감정에 즉각 반응해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생존을 위협하는 맹수는 없다. 대신 도움을 주고받을 동료만이 있다. 거슬리는 감정을 느낀다고 동료를 해치거나 회피하면 곤란하다.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살피고, 갈등을 해결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자. 감정을 맞서거나 회피하려는 야생의 도구로 쓰지 말고, 갈등을 해결하고 더 나은 관계를 맺는 문명의 도구로 쓰자.

 행동하려고 감정이 생겼는데, 행동은 하지 않고 감정을 역추적한다?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다. 원시인처럼 사소한 것에 두려워하고 화내지 않으려면, 감정을 일으키는 원시인의 DNA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감정을 살펴보자. 맹수에게서 도망치지 않게 된 후로 인간은 지구의 주인으로 우뚝 섰다. 사육사는 한술 더 떠 맹수를 요리조리 다룬다. 사육사에겐 조련서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우리를 불안으로 몰아넣는 맹수다. 이 책은 감정 조련서다. 감정을 다루면 감정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감정은 결코 미지의 대상이 아니다. 감정제조기의 원리를 한 단계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감정이 발생한 근원까지 다가갈 수 있다. 각 단계별로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불행을 없애거나 긍정적인 경험과 감정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다음 편 - 14. 4단계(감정 생성)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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