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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07. 2019

9. 이곳에 뼈를 묻겠다고?

지난 편 - 8. 상사와의 적절한 거리는 얼마인가?


이곳에 뼈를 묻겠다고?


병아리 한 마리가 농장에서 태어났다.

암탉으로 자라 알을 낳자, 더 많은 모이를 먹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닭은 모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우두머리 편에 서서 시중만 들면 마음껏 모이를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더 이상 알을 낳지 않아도 됐다.


평온이 이어지던 어느 날, 시련이 다가왔다.

우두머리가 싸움에 져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닭은 예전처럼 모이를 맘껏 먹지 못했다.


더 큰 시련이 덮쳤다.

농장의 경영이 악화되어 문을 닫은 것이다.

알을 낳는 닭들은 다른 농장에 팔려 목숨을 부지했지만,

닭은 나머지 닭과 함께 도살장으로 처분됐다.

오랫동안 알을 낳지 않아 알 낳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음과 현실이 이렇게 멀었나 싶을 때가 언제일까? 바로 정년이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56세까지 다니면 도둑(오륙도), 45세면 정년(사오정), 38세까지만 다녀도 선방(삼팔선).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기업들도 있다지만 서류상 조건일 뿐, 실제 정년퇴임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다. 모 대기업에서는 20대 신입사원을 명예퇴직으로 내몰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리해고 뉴스가 심심찮게 터진다. 머리로는 고용이 보장되지 않을 거라 알고 있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만기 정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은 머리 주변을 맴돌지만, 지금까지 월급을 꼬박꼬박 받았으니 가슴으로는 앞으로도 쭉 월급을 받을 거라 여긴다. 분명 근로기준법에도 해고는 30일 전에만 통보하면 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먼 나라 얘기로 흘려듣는다. 해고되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내 일 아니라는 듯 애써 현실을 외면한다.


평생직장이라는 착각


 평생직장이란 인식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성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각자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는 일단 자기 자신부터 챙길 수밖에 없다. 이직을 위해 이력서에 채울 화려한 업무에만 관심을 둔다. 조직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티 나지 않는다면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려 하니 팀의 성과가 날 리 없다. 하지만 안정된 고용에서는 팀워크가 강해지고 창의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뛰어난 성과를 낸다.


 문제는 평생직장이란 인식에 지나치게 기댈 때 발생한다. 외부 환경이나 자신의 역량, 성과와 관계없이 정년까지 직장을 다닐 거라 생각한다. 이에 여러 가지 병폐가 뒤따른다.

 첫째, 일단 해고되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몸서리친다. 내가 본 해고자 중, 해고당할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각기 쓸모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둘째, 삶의 중요한 가치를 외면한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가족과의 시간, 취미 등은 삶에 반드시 필요한 가치들이다. 우리는 직장을 ‘30년 치 연봉이면 몇 억’으로 평가하며 가치의 우선순위를 왜곡시킨다.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기 욕구를 희생하며 항상 회사를 우선순위로 고려한다. 행복에 소홀할 뿐만 아니라 역량을 키울 기회도 놓칠 수 있다. 회사라는 담장 안에 스스로 갇혀 새로운 도전을 꺼리고 외부를 두려워하게 된다.

 셋째, 실무보다 정치를 중시한다. 동료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상대평가에서 쟁쟁한 동료들에게 실력으로만 앞서기는 너무 벅차다. 끝없는 야근과 자기 계발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취를 이루는 길이 하나 있다. 바로 정치다. 정치의 매력이 달콤한 이유다.


 앞서 소개한 닭의 최후를 그린 이야기는 사내정치에 의존한 직원의 결말을 빗댄 것이다. 병아리가 알을 낳는 암탉이 되듯 신입 사원이 성과를 만드는 실무자로 거듭난다. 하지만 우두머리에 기대어 알을 낳지 않듯, 임원의 라인이 되면 실무를 등한시한다. 임원의 해고로 입지가 흔들리고, 결국 회사의 합병으로 해고되는 운명을 맞는다.

 회사는 상대평가 시스템이다. 우리는 팀원을 동료이자 적으로 대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는 생각한다. ‘절대 강자가 될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곰과 마주칠 때, 곰보다 빠를 필요는 없다. 다만 동료보다 빨리 도망치면 살 수 있다. 정리해고의 칼날도 동료보다 빨리 피하면 될 뿐이다.’

 이 때문에 동료보다 더 착하게 보이고자 애를 쓴다. 자신의 진솔한 의견보다는 상사의 의견을 두둔하고, 퇴근 후 은밀하게 사람들을 모아 소수만을 위한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 세계에 끼지 못한 동료는 배척한다. 하지만 상사와 은밀히 가까워진다고 자신의 안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상사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은 아니다


 사내 정치의 번지르르한 외면 뒤에는 몇 개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첫째, 당신은 피폐해질 것이다. 상사뿐만 아니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당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끝내 욕심을 충족시켜줄 수 없게 되면 당신에게 실망할 것이다. 당신은 끝없는 희생으로 피폐해질 것이다.

 둘째, 이중인격자가 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상사에게는 무조건 옹호를, 반대편에게는 무조건 공격을 퍼부어야 한다. 주인에게만 꼬리를 흔들고, 그 외에는 짖는 ‘동물’이 되어야 한다. 만약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게 된다면, 집(상사의 권력기반)을 지키는 쓸모가 없어진다. 회사의 이익보다는 상사의 이익을 지키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올바른 신념대로 살지 못한다면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없다.

 셋째, 자존감을 상실한 채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빗나간 충성 행위에 몰두할수록 실력은 점점 빈약해진다. 결국 자립능력을 상실하고, 상사에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실력이 빈약해지니 자존감이 무너지고, 점차 비굴해진다. 비굴함을 애써 덮고 허장성세로 살아야 하니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넷째, 쉽게 버려질 것이다. 음모에 가담하면 ‘운명을 함께하겠다’, ‘끝까지 같이 가자’고 유혹할 것이다. 하지만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는다. 이탈리아 정치 철학가 마키아벨리는 강자들의 행태를 예리하게 지적했다.


“강자들의 기만은 항상 효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모든 일을 강력하고 확고하게 약속하면서도 끝내 지키지 않는다. ”


 진시황제는 제나라 왕에게 항복조건으로 사방 500리의 영지를 내걸었지만, 항복 후 제나라 왕은 인적 없는 산골짜기에 유폐됐다. 강자는 굳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은밀한 상사는 당신 없이도 얼마든지 그 동물이 되어줄 이를 구할 수 있다.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 데이비드 드스테노David DeSteno 교수는 높은 지위와 권력은 낮은 신뢰로 이어진다며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Q.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 신뢰도가 낮은, 다시 말해 못 믿을 사람으로 변해간다고 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A. 다른 사람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신뢰가 중요한 자산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돼야만 타인의 협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보스 마음속에는 부하 직원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부하 직원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부하 직원이 나를 더 필요로 해. 그러니까, 내 단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부하직원과 장기적인 신뢰관계는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이 때문에 보스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행동을 부하 직원에게 쉽게 하게 된다.


 진짜 충성은 달콤하지 않다. 달콤한 줄 알았던 기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사와 부하의 권력관계는 절대로 평등하지 않다. 탄탄한 실력과 성실한 직무 수행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아닌, 은밀하거나 부정적인 관계 맺기는 지속될 수 없다.

 맹목적 충성은 사탕이다.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단단히 물어줄 당신의 치아를 썩게 할 것이다. 부당하게 이익을 챙기려는 욕망은 튼튼한 밥줄인 실력을 녹슬게 한다.

 내면의 탐욕을 경계하자. 은밀하고 달콤한 관계보다는 투명하고 담백한 관계를 추구하자.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실무에 열중하는 것이 자신과 회사 모두를 발전시키는 진짜 충성이다.


나를 위해 일터에 애정을 갖자


 정치에 열을 쏟지 말고 일터에 애정을 품자. 평생 수입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회사를 적대하고 내 것만 챙기면 난 괜찮을까? 사람은 배부르면 굶주렸던 과거를 잊는다. 하루 9시간 이상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 시간을 원망과 적대감으로만 채운다면 삶이 어두워질 게 뻔하다. 회사 밖은 굶주린 구직자로 가득하다.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로써의 회사를 상기해보자.

 군 제대 후 복학하기까지 부모님의 작은 음식점에서 8개월간 일한 적이 있다. 개업 초기 가게가 자리 잡지 못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변 상가와 학원, 병원 등을 직접 발로 뛰며 홍보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굳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홍보한 덕분에 다행히 매출이 궤도에 올랐다. 하루 14시간 이상 일했다. 오토바이 배달과 영업 외에도 청소와 설거지, 서빙, 식재료 다듬기 등 온갖 일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빌딩 11층까지 철가방 3개를 들고 걸어 올라간 적도 있었다.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다치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고작 가족의 인건비만 건질 뿐이었다. 매출이 떨어지는 조짐을 보이면 ‘어떤 문제가 있나? 새로운 메뉴를 추가해야 하나?’ 등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취직해서 너무 좋았다. 50cc 스쿠터에 목숨을 싣고 덩치들이 질주하는 도로에 위태롭게 뛰어들지 않아도 됐다. 하루하루 매출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으며,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될 뿐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너무나 감사했다.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과 경제적 안정 덕분에 삶이 풍요로워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 수많은 기업이 일어나고 쓰러지는 격변의 시대다. 한낮의 사막에 내리쬐는 태양처럼 변화는 강렬하다. 잠시만 태양을 쳐다봐도 한동안 눈을 뜰 수 없다. 급변하는 환경에 마음을 가누기 힘들다. 한 달만 수입이 끊겨도 은행 계좌는 마이너스로 고꾸라진다. 일자리 구하기는 별 따기보다 어렵다. 자아실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불안감에 아무 회사나 지원서를 넣느라 급급해질 것이다.

 회사라는 울타리는 선글라스와 같다. 낮 동안 강렬한 태양에게서 눈을 편안히 안정시키고 주변을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선사한다. 안정감은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고 대처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니,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볼 기회도 생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추구할 여유가 생긴다.

 다만, 밤에는 선글라스를 벗어야 한다. 멋에 취해 밤에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다면, 영혼을 밝혀주는 별빛은 물론 생명을 위협하는 전갈이나 뱀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큰 회사에 다녀도, 아무리 높은 연봉을 받아도, 명함이 미래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 선글라스는 그만 내려놓고, 다가올 추운 새벽에 대비해 실력이란 두꺼운 옷을 챙겨 입자. 평생직장이라는 착각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 채, 삶의 중요한 가치를 외면하지 말자.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의 책상 또한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진 못할 것이다. 회사와의 계약은 ‘평생 충성하는 상하 계약’이 아니라 ‘한때 거래하는 평등관계’ 임을 명심하자. 또한 회사를 ‘나를 책임지고 평생 먹여 살릴 절대적 존재’ 대신 ‘합리적인 거래를 주고받는 상대적 존재’로 대면하자. 현실을 직시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때 현재의 삶을 지키고 보다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다음 편 - 10. 언제까지 같은 업무를 반복해야 하나요?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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