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 - 15. 창의적인 답을 화수분처럼 내뿜는 아이의 비결적인 답을 화수분처럼 내뿜는 아이의 비결
‘오호라~ 미래의 인재로 키우려면 책을 많이 읽혀야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독서를 한다고 아이의 역량이 자랄 수 있을까? 그저 많은 책을 읽는다고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질 수 있을까?
흔히 착각한다. 책을 읽으면 빨리 읽으나 느리게 읽으나 1권은 읽는 것은 똑같다고. ‘에이 그건 아니지’라며 생각하겠지만, 이런 착각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누군가 수천 권을 읽었다면 눈이 가지 않던가? 하지만 통찰 없이 지식만 줄줄 읊는 헛똑똑이 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책을 많이, 빨리 읽을수록 좋다는 생각과 찰떡궁합인 독서법이 있다. 속독이다.
“호호호~ 우리 아이는 하루에 책을 7권이나 읽어요.”
“으흠! 1시간에 한 권쯤이야 가뿐하게 읽는다니까요!”
이런 말이 귀를 스쳐 가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귀걸이처럼 당신의 귀에 걸려 맴돌 것이다. 남들이 속독을 배우는데 내 아이만 속독을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속독의 열풍은 이미 여러 차례 불었다. 하지만 지속되진 않았다. 많은 사람이 속독을 배웠지만 그중 대부분은 속독하지 않는다. 비싼 수업료 들여서 배웠는데 쓰지 않는다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속독을 배웠지만, 현재는 쓰지 않는다. 군 제대 후 복학하기까지 직접 일해서 모은 돈으로 비싼 수업료를 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300페이지 소설책을 9분 만에 읽었다. 내용을 확인하는 시험을 보고 수료증도 받았다.
하지만 속독을 버렸다. 속독으로 습득한 지식은 사고력으로 이어지기는커녕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바빴다. 새로운 지식은 기존의 지식과 연계되지 못하면 금세 잊힌다. 뇌에 퍼붓는 지식의 급류는 뇌에 스며들지 않고 뇌의 표면을 따라 흘러내리고 마는 법이다.
속독의 유혹에 흔들린다면 책을 읽는 본질을 상기하자.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식을 쌓아 비판적 사고의 잣대로 삼고 문제 해결의 바탕으로 삼는다.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독은 간과한다. 문제 해결과 창의성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함을. 창의적 사고는 지식만 쌓으면 폭발하는 게 아니다. 차근차근 체계적인 과정을 거친다. 신경과학이 뒷받침해주는 이론이 있다. 프랑스 수학자 자크 아다마르의 창의적 사고 4단계다. 준비기, 배양기, 조명기, 검증기다.
‘준비기’는 난관에 봉착할 때까지 계속 생각하는 단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한계까지 쌓는다. ‘배양기’는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단계다. 하지만 뇌는 쉬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잠자던 부위가 휴식할 때 깨어나 기억을 선별하고 재조합한다. 이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고 한다. ‘조명기’는 통찰로 명확해지는 단계다. 통찰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통찰이 갑작스럽게 되었다고 느끼지만, 통찰을 느끼는 순간의 최대 8초 전에 우뇌의 뇌파가 갑작스럽게 치솟는다. 창의성은 갑작스레 생기지 않고 뇌신경이 차곡차곡 작용하여 생기는 것이다. ‘검증기’는 답이 맞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체계적인 비판적 사고로 아이디어를 검증한다.
DMN은 단순히 창의성만 높이지 않는다. 자신과 관련된 사건이나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자아 성찰’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아이의 DMN이 깨어나도록 자유 시간을 주면,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과 자기감정을 짚어보는 ‘자립력’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연합력’ 모두를 높일 수 있다.
속독의 유혹에서 소매를 간수하자. 속독은 지식과 역량의 균형보다는 지식의 편중을 추구한다. 아무리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도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이라면, 어떤 인간보다 신속하게 학습해 대답하는 존재가 이미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인간은 절대 인공지능의 데이터 입력속도를 이길 수 없다. 혹시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아이를 밀어 넣고 있진 않은가?
책은 빨리 섭취해야 할 지식의 열매가 아니다. 아이의 사고력이 천천히 자라는 정원이다. 책을 빨리 읽길 바라는 마음이 없는 곳에서 아이는 자란다. 간밤에 푹 잠든 아이가 아침에 훌쩍 자란 모습을 본다. 아이는 자라난다. 재촉이 아닌 멈춤의 순간 속에서.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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