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 - 16. 아이가 책을 읽을 '진짜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온 당신에게는 또 다른 생각이 말을 걸 것이다.
‘아, 책을 빨리 읽는 것은 좋지 않구나.’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게 책 읽는 시간을 늘려줘야지.’
‘그럼 한 살이라도 빨리 한글부터 떼야겠다.’
지나친 조기 독서는 아이를 망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우샤 고스와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5세에 독서를 배운 아이보다 7세에 독서를 배운 아이의 성취가 뛰어나다. 똑같은 내용을 가르친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가르치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의 믿음과 상반된다. 이유는 5세 아이의 뇌와 7세 아이의 뇌가 다르기 때문이다.
뇌는 20대 중후반까지 성숙하는데, 5세 아이의 뇌는 스스로 글을 읽기엔 성숙하지 못하다. 껍질을 벗긴 전선 뭉치에 강한 전기를 흘리면 어떻게 될까? 번쩍거리는 스파크가 일고 전선 뭉치가 불탄다. 6세 이전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뇌신경세포에 마이엘린이라는 껍질이 제대로 씌워지지 않은 상태다. 시각, 청각, 언어, 개념 영역을 통합해야 하는 독서는 어린아이의 뇌에 과부하를 주는 강한 전기다. 불타는 전선 뭉치처럼 초독서증(hyperlexia)이라는 유사자폐증에 걸리기도 한다. 꿀은 인류에게는 보약이지만, 영아에게는 사약이 되는 이치다. 영아는 간의 해독력이 부족해서 보툴리누스균의 독소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할 수 있는 절대적 나이는 없다. 개인차가 있고 성차도 있다. 일반적으로 여아가 문자를 학습할 수 있는 시기가 빠르다. 하지만 100명 중 17명은 여아 같은 남아, 남아 같은 여아이므로 여아라서 무조건 빠르고 남아라서 무조건 느린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략 6세까지는 문자를 인위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오감으로 학습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경험이 학습의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일상의 경험이 풍부한 만큼 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놀이를 할 때, 던진 공이 떨어지는 장면을 수없이 본 경험이 중력을 이해하게 한다. 미끄럼틀을 탈 때 점점 빨라지는 속도를 느낀 경험이 중력가속도를 이해하게 한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속력을 낼 때까지는 힘이 들지만 일단 속력을 내면 죽 나아가는 경험이 관성을 이해하게 한다. 개울보다 바다에서 수영할 때 몸이 더 잘 떠오르는 경험이 부력과 비중을 이해하게 한다.
경험의 힘은 과학의 이해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의 이해도 깊게 한다. 다음은 한용운의 <지는 해>의 한 구절이다.
창창한 남은 빛이
높은 산과 먼 강을 비치어서
현란한 최후를 장식하더니
홀연히 엷은 구름의 붉은 소매로
뚜렷한 얼굴을 슬쩍 가리며
결별의 미소를 띄운다
경험은 이해의 바탕이다. 어릴 적 집에는 스무 평 남짓한 옥상이 있었다. 해가 질 때면 옥상에 올라가 석양을 바라보곤 했다. 석양의 풍경은 하루하루가 달랐다. 석양이 물들인 구름과 대지의 모양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머릿속의 다양한 석양 풍경 덕분에 시에서 묘사한 풍경도 쉽게 떠올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는 해를 보지 못하고 학원 강의실에 갇힌 아이는 이 시가 묘사하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없다. 풍부한 경험은 단어 하나하나를 깊게 이해하도록 한다. 독서의 격이 달라진다.
경험은 언어의 이해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가치관을 키운다. 다양한 석양을 본 덕분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한용운 시인은 석양에 영웅의 최후라는 음울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나에게 석양은 내일이 올 때까지 컴컴한 밤 동안 마음속에 담아두는 희망의 빛이었다. 석양을 바라볼 때의 감동이 내 영혼을 깨웠고, 깨어난 영혼은 컴컴한 밤 동안 삶의 이치를 밝혀 갔다.
다음은 프랑스의 지성 폴 발레리의 <석류>의 한 구절이다.
알맹이들의 과잉에 못 이겨
방긋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숱한 발견으로 파열한
지상(至上; 지극히 숭고한)의 이마를 보는 듯하다.
프랑스의 대표 시인 폴 발레리는 석류가 익어 갈라지는 모습을 ‘성숙을 위한 인고’라고 해석했다. 나의 옥상에는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거의 매일 석류나무를 바라보았다. 달콤한 석류나무의 수액을 진딧물이 가만둘 리 없었다. 석류나무의 가지에는 진딧물이 촘촘히 붙었다. 개미도 석류나무를 오르내리면서 진딧물의 수액을 수확하느라 분주했다. 매일 자신의 수액을 진딧물에게 빼앗기면서도 결국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석류나무에서 시인이 말하는 성숙을 위한 인고를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경험은 여기서도 시인의 뜻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만의 해석으로 나아가게 해 줬다. 나에게 석류는 어떤 빨강보다 영롱한 빛을 지니지만, 그 매력을 투박한 껍질로 절제하는 겸손이었다. 그 겸손이 석류의 진짜 매력이었다.
독서다운 독서의 전제는 글을 삶으로 읽는 것이다. 경험이 글을 진정으로 읽게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부모가 따스하게 안아주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를 이해하려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많아야 한다. 연애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책으로 연애를 배웠냐?’ 사람을 대하는 연애는 직접 부딪혀가며 배워야 한다. 책이 유용한 학습 도구이지만, 책 이전에 그를 뒷받침할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미래 인재의 조건인 협업, 의사소통, 공감 역시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에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험이 결여된 반쪽짜리 독서로는 절대 습득할 수 없는 역량이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지식보다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다. 초등학생의 뇌는 단순한 언어적 수리적 사고는 할 수 있어도, 복합적인 언어적 수리적 사고를 할 만큼 성숙하진 않다. 5세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 비효율인 것처럼, 중학교 이전의 뇌에 선행학습은 비효율이다.
중요한 것은 시기별 균형이다. 초등학생까지는 책을 덮어 놓고 실컷 뛰어놀 게만 하라는 게 아니다. 미취학 때는 풍부한 체험이 우선이다. 부모도 아이도 모두 즐겁다면 부모가 읽어주는 책도 훌륭한 영양분이 된다. 초등 때는 독서 쪽으로 좀 더 균형추가 옮겨간다. 아이의 기질과 흥미, 계절, 학년 등에 따라 균형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서는 봄, 가을에는 체험 활동을 많이 하고, 여름, 겨울에는 독서의 비중을 높일 수도 있다. 학년에 따라서도 읽을 책을 정할 수 있다. <공부가 쉬워지는 초등독서법>에서는 1학년은 규칙, 시간 개념, 친구 관계에서의 행동을 배울 수 있는 그림책을, 2학년은 친구 관계를 위한 공감 능력을 키우는 동화를, 3학년은 도덕적 가치와 인성을 높이는 책을, 4학년은 수업의 흥미를 높이도록 배경지식을 갖추는 다방면의 책을 권한다. 나 역시 초등시절 과학 백과를 읽길 좋아했다. 추운 겨울에 고구마 까먹으며 읽은 위인전이 좋은 거름이 되었다. 독서는 당연히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와 경험과 멍 때려도 되는 자유 시간의 균형이다.
대중 매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성공한 다양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어두운 면도 쉽게 눈에 띈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불면증이나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심리치료나 약물에 의지해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성공. 부모라면 원치 않을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삶은 불행한 성공도 무능한 행복도 아니다. 성공과 행복을 모두 놓치지 않는 것이다.
빈약한 경험으로 자란 아이는 폴 발레리의 <석류>를 보고 ‘석류 = 인고’라고만 여길 것이고, 한용운의 <지는 해>를 보고 ‘석양 = 최후’라고만 한정할 것이다. 편견과 비관에 물드는 삶에 노출될 것이다. 스스로도 삶을 해석할 때 비관적 의미로 채워 넣을 것이다.
어릴 적 긍정적인 경험의 축적이 아이의 정서가 된다. 아이 삶의 방향성이 된다. 나에게 석류는 겸손의 미덕이고 석양은 내일을 비추는 빛이다. 어른으로서 바라본 회색빛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면, 아이로서 바라본 천연 빛 세상이 풍부해야 한다. 어릴 적 풍부하고도 긍정적인 경험의 축적이 긍정적인 삶을 위한 자양분이다. 나에게 해가 지는 이유는 영웅이 죽어서도, 해가 서쪽 하늘로 옮겨가서도 아니었다. 내 마음의 하늘에 서서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편 - 누구나 할 수 있는 '내 아이 사고력 높이기'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