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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21. 2019

19. 내 감정이 생기는 원리(2단계: 사건 인지)

지난 편 - 내 감정이 생기는 원리(3단계: 상황 판단)


발원지에 이르다


드디어 강의 발원지에 도착했다.

발원지는 총 여섯 곳이었다.

다섯 곳은 흔히 알고 있는 오감(눈, 귀, 코, 혀, 피부)이었다.

모두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몸의 경계에 있었다.

의외로 여섯 번째 발원지는 두뇌였다.


 2단계는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단계다. 우리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라는 5가지 감각으로 외부의 자극을 인지한다. A사원은 상사의 질책이라는 ‘시청각적 자극’을 느꼈다. B대리는 원치 않은 메일이라는 ‘시각적 자극’을 느꼈다. 그 외에도 소화기관 작동이 시원치 않은 누군가에서 누출된 가스(후각)로 얼굴을 찡그리게 될 수도 있고, 뒤통수에 여래신장–영화 <쿵푸허슬>에서 주성치가 익힌 궁극의 무공, 하늘에서 내려오는 손바닥–이 내려오는 전근대적인 훈계(촉각)의 대상이 될 때도 있다. 회식자리에서 상사가 강권한 독주의 쓰디쓴 맛(미각)을 느끼기도 한다.

 2단계의 인지과정은 지극히 수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발생한 상황을 안 보고 안 들을 수가 있는가?’라며 자의지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의 뇌는 감각을 선택해서 입력하고 있다. 사람은 6가지 자극 입력 통로(눈, 귀, 코, 입, 몸, 기억)를 항상 모두 열어놓지 않는다. 주로 한 두

개의 통로만 열어놓을 뿐이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을 때는 귀의 통로만 열어놓고, TV를 볼 때는 눈과 귀의 통로를 열어놓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글자를 인식하는 시각과 종이(or 키보드, 마우스, 터치 화면)의 질감을 느끼는 손끝의 촉감 외의 미각과 후각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책을 집중해서 읽는 동안에는 음악 소리마저 작게 들리거나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당신은 감각을 일정 부분 제어할 수도 있다. 눈을 감아 서 눈의 통로를 닫을 수도 있다. 소리를 한쪽 귀로 흘린다는 상상으로 귀의 통로 또한 좁힐 수 있다. 의식의 힘으로 6개의 통로 모두 어느 정도는 더 벌리거나 좁힐 수 있다.

 또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이 악화되기도 하고 완화되기도 한다. 이는 분명 능동적인 과정이다. 엄밀히 따지면 ‘A사원이 상사의 질책을 군말 없이 계속 듣기로 했다’는 것, ‘B대리가 메일을 열람하기로 했다’는 것은 회사 생활을 지속하려는 자신의 욕구를 따른 것이다. 잘 관찰되지는 않지만, 분명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결정한 행동이다.


 북아메리카에는 유카꽃과 유카나방이 있다. 유카나방이 유카꽃에서 꽃가루를 모아 다른 유카꽃으로 가져온다. 이때 유카나방은 유카꽃의 씨방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고, 가져온 꽃가루 뭉치로 씨방의 구멍을 메워준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유카꽃의 씨를 먹으며 자라난다.


 언뜻 보면 기생 관계처럼 느껴지지만, 이 둘은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유카는 다른 곤충에 의해서는 수분이 되지 않고, 오로지 유카나방만이 유카꽃을 찾아온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유카 나방)는 꽃가루(업무성과)를 회사(유카꽃)에 주고, 월급(성장한 애벌레)을 받는다. 공생관계다. 평일 오전 9시에서 6시까지는 회사라는 유카꽃이 핀다. 유카꽃은 유카 나방이 독차지하듯, 이 시간에는 사무실에 머물기만 하면 경쟁 없이 적어도 이번 달 월급은 받을 수 있다. 프리랜서처럼 치열하게 외부와 경쟁할 필요 없이, 안정적으로 애벌레를 키우기 위해 기꺼이 꽃가루를 나르기로 한 것이다. 즉 유카나방이 되기로 선택한 주체는 나 자신이다.


 물론 외부 자극을 능동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다. 상사가 면전에서 화를 내면 후다닥 도망가거나 눈을 감고 입으로 ‘아아아’ 소리를 내면서 귀를 막으면 된다. 상사의 질책 소리와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피할 수 있다. 다만 이 얘기를 더 꺼낸다면, 이 책은 보다 나은 감정의 주인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보다 빠른 퇴직의 주인공을 만들 것이다. 이 경우에는 조금만 소극적으로 대처해보자.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자. 눈과 귀와 뇌는 각기 하나의 톱니바퀴이다. 이들은 평소에는 연결되어 있어서, 눈이나 귀라는 톱니바퀴가 돌면 뇌라는 톱니바퀴도 돌아간다. 하지만 자동차 변속기의 중립 기어를 넣는다고 상상해보자. 중립 기어를 넣으면 연결된 톱니바퀴가 살짝 떨어진다. 그럼 눈이나 귀라는 톱니바퀴가 아무리 돌아도 헛돌 뿐, 뇌라는 톱니바퀴를 돌리진 못한다. 시, 청각적 자극이 우리의 감정 제조기를 마음대로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감정 제조기의 2단계를 활용하는 묘미는 외부의 첫 자극으로 상처입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상사의 한 마디 질책에는 별 상처를 받지 않는다. 질책은 몇 분 동안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가공할 위력을 갖게 된다. 단 한 번의 공격이 아니라 연속적인 공격 기술이 조합될 때 무공은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상사에 대해 알고 있다. 어떤 경우에 화를 더 내고, 어떤 경우에 화가 점차 누그러지는지 말이다. 여기서 2단계 활용의 묘미를 발휘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외부 자극을 더 격하게 만들 수도 있고 누그러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상사의 화를 완화시킬지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순간적인 분노가 폭발하지만 곧 이성을 되찾는 상사에게는 화를 가라앉힐 시간을 주고 찾아가야 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상사에게는 호출 즉시 달려가야 한다.

 자신의 의견이 일단 관철되기를 바라는 불도저식 상사에게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분석적이고 정확한 해결책을 원하는 상사에게는 성급한 대답 대신 시간은 다소 걸리더라도 최대한 논리적으로 대답해야 한다.

 이런 당신의 행동에 따라서 상사의 분노가 곱셈이 될지 뺄셈이 될지 결정된다. 즉 외부 상황을 어느 정도는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눈과 귀에 어떤 정보를 담을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자기 권한 밖의 일에 너무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장이나 임원, 다른 부서 또는 회사 시스템에 불만이 있는 경우다. 당연히 이런 문제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지언정, 변화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의견만 제시하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도록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눈과 귀에 담을 필요가 없다. 불만에 눈과 귀를 집중시킨다면 삶은 불만으로 가득 찰 것이다.


 당신은 동료와 건전한 티타임을 갖고 있는가? 티타임은 동료가 모두 참여하고 적절한 시간마다 이뤄져야 한다. 기분 전환을 통해 업무수행의 완급을 조절함으로써 일의 효율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동료들과의 공감대를 넓히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팀워크를 향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끼리끼리의 비밀스런 티타임은 변질되기 마련이다. 티타임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에 대한 험담이 오가고 곧 가속이 붙는다. 험담의 대상자는 조직에서 배제되고 팀워크는 붕괴된다. 또한 이런 험담은 시간 가는 줄 모르기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업무 리듬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온갖 험담으로 머릿속은 오염되어버렸다. 업무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부정적인 언행을 일삼는 동료가 있는가? 험담에 동조하지 말자. 동료의 입에 장착된 험담 머신을 터보 모드로 작동시키는 일이다. 덤덤하게 듣고 있다가 대화가 건전하게 흐르도록 중립적인 의견을 중간중간 내비침으로써, 험담 머신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눈과 귀에 들어오는 해로운 자극을 예방하는 것이다. 해로운 자극은 기억으로 남아 당신의 마인드 프로그램에도 오류를 심어놓을 것이다. 험담 머신은 한 예에 불과하다. 부정적인 모든 자극으로부터 당신의 감각을 보호하자.


다음 편 - 20. 내 감정이 생기는 원리(1단계: 사건 발생)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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