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케네스 긴스버그 교수는 회복탄력성의 핵심 요소로 7C를 꼽았다. 능력(Competence), 자신감(Confidence), 유대(Connection), 성품(Character), 공헌(Contribution), 대처 기술(Coping), 자기통제력(Control)이다.
7C의 정의는 이렇다. ‘능력’은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기술이다. ‘자신감’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유대’는 가족, 친구, 학교, 공동체와 맺는 친밀한 관계다. ‘성품’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감각이다. ‘공헌’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여다. ‘대처 기술’은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법이다. ‘자기통제력’은 자기 결정과 행동의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7C는 유대(관계)에서 시작한다. 아이는 어른과의 유대를 통해 능력을 키우고 자신감을 얻는다. 깊은 유대를 통해 성품이 다듬어진다. 능력과 성품은 공헌으로 이어지며 자기통제력이 자란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가장 좋은 대처 기술을 사용한다. 자신과 강한 유대를 맺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카우아이의 아이들도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에게 의지했다.
우리는 가족을 이루기 전보다 힘든 현실에 잘 버틸 수 있다. 당신을 지지하는 배우자와 당신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는 덕분이다. “이번 시험 몇 점 받았어?” 아이에게는 관리를 베푸는 부모가 아니라 유대로 감싸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회복탄력성의 7C 중에 스트레스를 다루는 대처 기술이 있다. 역경을 극복해갈 때 사람에게 의지하는 유대도 좋은 대처 기술이지만, 스트레스와 같은 버거운 감정을 직접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이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여러 감정적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번 과제를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며 부담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 사람과는 너무 맞지 않아. 힘들어’라며 동료와의 갈등으로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에 무작정 참다가는 결국 탈이 난다.
감정은 다스릴 수 대상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만 배우면, 감정을 체계적으로 다스리며 앞으로 견고하게 나아갈 수 있다. 감정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감정은 사건을 판단할 때 생기는 결과물이다. 인지 치료의 한 종류인 ‘합리적 정서·행동치료’에서는 감정이 일어나는 3단계인 사건(Accident)과 신념(Belief)에 따른 판단과 감정적 결과(Conclusion)를 가리켜 ‘감정의 ABC’라고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함께 정신치료의 세계 양대 산맥인 인지 치료의 뼈대가 되는 개념이다.
1단계(사건)와 3단계(감정적 결과)는 쉽게 받아들인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긍정적인 감정이, 나쁜 일이 있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다. 이는 당연하다. 문제는 2단계(신념에 따른 판단)다. 판단도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 직장에서 있을 법한 사례를 살펴보자.
어느 날 당신의 책상 위에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웬 떡이지? 갈증이 나던 참에 잘 됐다!’라며 홀짝홀짝 한 모금씩 마시며 일을 했다. 문득 ‘부장님이 사주신 건가?’라는 생각이 들자 목에 턱 걸렸다. 부장님이 커피를 살 때는 단 한 가지다. 급한 야근 부탁. 허구한 날 야근만 하다 언제 연애해보냐며 탄식하고 있는데 회의실에서 막 나온 신입사원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커피 잘 드셨어요?” “응, 고마워.” 아무렇지 않은 듯 짧게 대답했지만 ‘어, 그린라이트인가!’라는 생각에 볼이 금세 뜨거워졌다. 볼에서 핏기가 빠진 후에야,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다시 물어봤다. “어디서 난 거야?” “손님 오셔서 사둔 건데, 한 분이 불참하셔서요.” 돌다리가 우르르 무너졌다. 걱정할 필요도 기대할 필요도 없었다. 커피 한 잔을 받은 것은 똑같다. 하지만 커피 한 잔에 부장의 야근인지 신입의 대시인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딸아이가 늦게 잠드는 편이다. 내 컨디션이 좋을 때는 늦은 밤까지 지치지도 않는 딸아이가 너무 이쁘다.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그래! 우리 이 밤의 끝을 잡아보자’라며 함께 놀다가 딸아이가 먼저 지치기라도 하면 아쉬운 생각마저 든다.(이런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딸아이가 늦게까지 같이 놀자고 하면 ‘왜 이리 잠이 없는 거야?’라며 한숨을 푹푹 삼킨다. 밤늦도록 생기발랄한 딸아이는 그대로다. ‘이 밤을 불태워보자’ vs ‘잠 좀 일찍 자자’. 내 판단에 따라 각기 다른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감정 관리는 자기감정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한다. 감정의 메타인지를 하는 것이다. 감정이 1~3단계 중 어느 단계에서 발생했는지 파악하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2단계 판단 단계에서 자신이 오해한 것이라면, 오해를 바로잡음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 아이에게 식사하자고 말하고 밥상을 차리고 있는데, 아이가 밥상에 소꿉놀이 그릇을 올려놓으면 짜증이 올라온다. ‘부모 말은 안 듣고, 오히려 부모 일을 방해하는 걸 즐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라온 짜증은 아이가 “엄마 냠냠”하며 엄마 입으로 장난감 그릇을 가져오는 것으로 쏘옥 내려간다. 아이는 매일 엄마가 밥 차려주듯, 자기도 엄마한테 맛있는 거 해주고 싶었던 거다. 아이의 의도를 이해하자 짜증이 감동으로 변신해 승천한다.
아이는 부모에게서 배운다. 밥을 먹고 씻는 기술에서부터 언어까지도. 감정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낯선 감정에 어떻게 할 줄 모른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보고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간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에서는 단계별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 담겨 있다.
1단계 : 아이의 감정 인식하기
2단계 : 감정적 순간을 좋은 기회로 삼기
3단계 : 아이의 감정 공감하고 경청하기
4단계 : 아이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도와주기
5단계 :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1단계, 아이의 감정 인식하기에서는 표정과 행동 너머에 있는 아이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눈물을 흘릴 때는, “울지마! 뚝”, “착한 아이는 울지 않아요”처럼 울음을 그치길 강요하지 않고, 눈물 뒤에 자리한 아이의 슬픔을 바라보자. 아이가 문을 쾅 닫았을 때 “너, 어디서 버릇없이 문을 쾅 닫아!”라고 맞받아치는 대신, 왜 화가 났는지 알아보자.
닫힌 질문보다 열린 질문으로 아이의 감정에 다가서자. “지금 화났어?”라고 물으면 ‘네’, ‘아니요’란 대답에 그친다.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열린 질문을 하자. 아이가 어려서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다면, ‘아직 자기 싫은데 자라고 해서 슬펐어?’, ‘미리 알려주지 않고 장난감을 치워서 화났어?’, ‘오늘은 이 옷을 입기 싫은데 이 옷을 입으라고 해서 화났어?’ 등의 질문으로 먼저 다가가 보자.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의 감정에게 함께 다가가 보는 것이다.
2단계, 감정적 순간을 좋은 기회로 삼기다. 부모는 흔히 아이의 감정을 자녀 교육의 장애물로 여긴다. 게다가 예민해서 짜증을 잘 내는 아이나 다혈질이어서 화를 잘 내는 아이라면 더더욱 아이의 감정을 억누르려고만 한다. 부모 또한 감정이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정은 억누르는 게 아니라 적절한 행동으로 풀어줘야 할 에너지다. 감정(emotion)의 어원도 밖으로(ex-)와 행동(motion)의 결합으로, 행동을 이끌어내는 존재라는 뜻이다.
감정은 삶을 바꾸는 힘이다. 자주 짜증을 낸다면 식습관과 생활 리듬을 점검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멀리하고 밥을 규칙적으로 먹고 잠을 충분히 자는 것만으로도 딸아이의 짜증이 줄었다. 어느 날에는 작은 일에도 소리를 지르길래, “소리 지르지 않아요”, “이런 못된 짓 누구한테 배웠어?” 강요하거나 맞받아치는 대신에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이집에서 장난감을 빼앗는 친구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단 걸 알게 됐다. 제 딴에는 힘으로 안 되니, 소리 지르는 걸 대응방법으로 익힌 것이다. 아이의 대인관계 고충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줄고 더 밝아졌다. 감정은 삶의 장애물이 아니다. 더 나은 삶으로 올라서는 상승 기류다.
3단계,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경청하기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할 때의 장애물은 ‘깔보는 마음’이다. ‘쪼그만 애가 화가 나면 얼마나 났겠어?’, ‘저렇게 어린애가 진짜 슬픔이 뭔지 알 리가 있어?’라면서 아이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본다.
하지만 감정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 미란이 화났어?”, “우리 영호 슬프구나” 말로만 공감하는 척하면서, 표정은 ‘우리 애기 우쭈쭈~’와 같이 재미있다고 미소 지으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말보다는 부모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는 게 익숙한 아이다.
경청할 때도 “왜 울어?”와 같은 ‘왜’ 대신 ‘무엇’과 ‘어떻게’로 물어보자. ‘왜’처럼 어려운 질문도 없다. 어른도 화가 나면 그 이유를 제대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에게는 ‘왜’라는 질문은 너무 어렵다. 상황 전체를 정리해서 말하도록 요구하는 ‘왜’ 대신, 상황의 한 가지 요소씩 묻는 ‘무엇’과 ‘어떻게’를 활용해 차근차근 물어보자.
4단계, 아이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도와주기다. 어른인 우리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는 힘들다. 소감 인터뷰에서 자신의 감정을 한두 마디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굉장히 드물다. 대부분은 머뭇거리며 산만하거나 모호하게 이런저런 감정을 늘어놓는다. 하물며 아이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도록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자. “아빠에게 소리 질러서 놀랐어”, “장난감을 소중히 여기길 바라는데, 던져서 슬퍼”, “아빠에게 함께 놀자고 해서 기뻐”, “음악에 맞춰 함께 춤춰서 즐거워” 등 일상에서 부모의 감정을 솔직하게 많이 표현하자. 그리고 그림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도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하자. 감정에 이름을 붙여줄수록 감정에 당황하지 않고 감정을 잘 다스릴 것이다. 존 가트맨 박사는 감정 표현하기를 ‘감정이라는 문에 손잡이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 손잡이에 닿으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5단계,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하기다. 아이 스스로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가령 친구가 자꾸 속임수를 써서 게임에 이겨서 아이가 기분이 상했다면, 아이 스스로 낼 수 있는 해결책은 ‘걔랑은 게임 안 하면 되죠’에 머문다. 그럴 때는 ‘친구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처럼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다. 아이 스스로 해결책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다른 방법은 없을까?”,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도출한 해결책을 함께 살펴보고선 아이에게 스스로 해결책을 선택하도록 하자.
부모는 모범이다. 아이는 부모의 모든 걸 따라 한다. 웃긴 표정에서부터 밥을 먹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까지도. 당신이 물건을 던지면 아이 또한 장난감을 던질 것이다. 하지만 화분의 초록잎을 곱게 쓰다듬는다면 아이도 곱게 쓰다듬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감정을 다루는 법도 따라 한다. 자기감정의 주인이 되어, 감정코칭의 5단계를 익히자. 감정을 다루는 법을 따라 하는 아이는 자기감정의 주인으로 자랄 것이다.
딸아이는 침대에서 뛰는 걸 좋아한다. 아이가 침대에서 뛰는 건 괜찮은데, 팔푼이 아빠까지 침대에서 뛰다 보니 벌써 매트리스 스프링이 두어 군데 꺼져버렸다. 하지만 다행이다. 일상에서 쌓는 즐거움이 아이에게 ‘인생은 즐겁기에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줄 테니까. 이 생각은 아이가 힘들 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워 줄 아이 마음의 스프링이 될 것이다. 매트리스 스프링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아이 마음의 스프링으로 환생했으니까.
딸아이는 우리 부부가 동요를 ‘예쁘게’ 불러줄 때보다, 대중가요에 ‘흥겨워서’ 흔들어댈 때를 더 좋아한다. 삶의 해답을 아이가 말해주는 것 같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풍부하고 긍정적인 오감 경험이며, 그중에서도 으뜸은 즐거운 부모의 모습이라고. 아이에게 우선으로 입력할 데이터는 ‘내가 부모이니 널 위해 이 정도로 노력하고 있어! 삶은 애쓰고 노력하는 거야!’라는 의무 투성이의 삶이 아니다. ‘삶이라는 건 즐거운 거야!’라는 기쁨이 풍요로운 삶이다.
인간 vs 인공지능. 인공지능 시대에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투가 날로 살벌하게 전개될 것이다. 생존한 인간 vs 생존한 인간. 인공지능에게 점령되지 않은 지대에서도 인간의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치열한 경쟁에서도 꺾이지 않는 아이로 자라게 한다. 이윽고 인공지능과 인간 경쟁자 위에 올라서는 미래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