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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23. 2019

24. 회복탄력성

: 경쟁자는 무너져도, 내 아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일도 인생도 매우 괴롭네요.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2015년 12월 25일. 24세의 다카하시 마츠리는 엄마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회사 숙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혹독한 야근에 시달렸다. 53시간 동안 회사에 붙잡힌 적도 있었다. 53시간 중 외출시간은 단 17분이었다. 죽음을 한 달 앞두고 우울증 증세가 나타났다.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휴일을 반납하고 만든 자료가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미 4시다. 몸이 떨린다. 죽어야겠다.”

     

 그녀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덴쓰의 직원이다. 덴쓰는 일본 1위의 광고기업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이다. 그녀는 일본의 최고 명문 도쿄대 출신이다.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고 최고의 기업에 입사할 정도로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보통의 인내로는 이루기 어려운 이정표다.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삶의 모범이었다.

 광고계는 악명이 높다. 매 프로젝트마다 피 말리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이 1명의 승자와 나머지의 패자로 나눈다. 경쟁의 기준 또한 가격경쟁력을 높이거나 상품의 질을 높이는 객관적인 잣대가 아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근무 강도와 근무 시간 모두 여느 업종 못지않게 혹독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포기할 법한 곳이다. 업계 최고의 기업이라면 더더욱.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광고계가 일하기 힘든 곳이지만, 광고계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곳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고수했다. 자신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취업난과 반대로 일본은 인력난이다. 그녀의 훌륭한 조건이라면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아 다시 취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능력을 증명하려는 삶의 행로     


 “목적을 완수하기까지는, 죽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그녀가 암기하도록 강요받은, 덴쓰의 귀십칙(鬼十則) 중 다섯 번째 규칙이다. 그녀는 주어진 의무에 최선을 다했다. 귀신처럼 일 잘하게 하는 10가지 법칙이라더니, 진짜 귀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그녀가 첫 번째도 아니었다. 

 우리 또한 주어진 의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교육받았다. ‘이번에도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해!’ 당장은 분발을 촉구하고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마음가짐이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에도 무리하게 몰두한다면 성과가 아닌 비극을 가져온다.


 삶은 마주한 과제를 해결해 가는 시간의 합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과제에 직면하고 해결하길 반복한다. 과제는 어린 나이에 시작된다. 과제 수행 결과가 좋으면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이어진다. 부모의 칭찬, 선생이나 상사의 격려, 친구나 동료의 부러움을 산다. 주변의 긍정적인 반응에 ‘있는 그대로의 자아’보다는 ‘성과를 내는 자아’가 강해진다.

 삶의 과제는 점차 무거워진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한다. 취학 전보다 초등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학습 시간도 더욱 늘어난다. 눈덩이가 굴러 커지듯이, 노력의 크기에도 가속이 붙는다.

 노력의 요구량에 가속이 붙는 만큼, 성과를 못 내는 것에는 소홀해진다.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의 가치는 점차 물러나고 오로지 성과를 내기 위한 시간으로 삶이 채워진다. 사람 냄새를 공유하며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줄어들고, 성과를 내는 도구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난다. ‘성과를 내는 자아’는 한층 덩치를 키우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아’는 날로 수척해진다. 아이가 자신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를 성과에 두는, 능력을 증명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성공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성과를 내는 자아’ 또한 더욱 강해진다. 이어지는 성공으로 자신감이 강해지고, 어떤 일이든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이 자란다. 자신감과 믿음이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성공은 영원하지 않다.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마주할 수도 있고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할 수도 있다. 실패를 마주할 땐, 이미 ‘있는 그대로의 자아’는 상실한 상태고 ‘성과를 내는 자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성과를 내는 것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은 만큼, 실패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난 실패자야.’ 성과를 내기 위해 달려오느라 쭉정이밖에 남아 있지 않은 자아는 절망한다. 절망은 극단적인 선택을 초대한다.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죄송해요.” 상위 2%가 입학하는 자율형 사립고 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전 엄마에게 보낸 메시지다. 그는 인문 계열 전교 1등의 수재이기도 했다. “이제 됐어?” 외고 3학년이 아파트에서 투신하기 전 페이스북에 남긴 단 네 글자의 유서다. 엄마가 그토록 요구하던 성적에 도달한 직후였다.

 OECD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단면이다. 부모가 칭칭 감은 그 학생들의 목줄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줬다면, 살아갈 즐거움이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비극이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딴짓할 시간이 어디 있어!”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할 때일수록, 인간적인 따뜻한 시간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아’가 허약해지지 않도록 보살핌이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 아이의 온기는 식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순 있어도, 결국엔 크게 넘어지고 만다.      


회복탄력성의 비결     


 하와의 제도의 카우아이섬에서 대규모 연구가 시행됐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겪는 건강 문제, 사건, 가정환경, 사회경제적 환경이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1955년에 태어난 아이 833명을 30세가 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관찰했다. 

 1955년 당시 카우아이는 세계적인 관광지로써 하와이가 아니었다. 1959년 하와이가 미국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그저 가난한 식민지에 불과했다. 주민은 대대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다. 대다수는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다. 출생은 곧 불행한 삶의 시작이었다.

 833명의 아이 중에서도 특히 환경이 열악한 201명을 분류했다. 확실히 이들이 사회 부적응자로 자란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다. 정신질환을 앓거나 미혼모가 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예상할만한 결과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72명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마이클을 10대에 낳은 부모는 20대 중반에 헤어졌다. 마이클의 아빠는 마이클을 데리고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다. 아빠와 할아버지는 사사건건 다투었고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마이클의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SAT(미국의 수능)도 상위 10%였다. 긍정적이고 자율적이며 도덕성까지 고루 갖췄다.

 예외는 마이클뿐만이 아니다. 케이는 10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늘 다투던 부모는 결국 별거했다. 하지만 케이는 통찰력, 자기 조절, 공동체 의식 등에 뛰어났다. 근면하고 차분하며, 타인을 존중했다. 

 메리는 중증 신경과민 환자인 엄마를 두었다. 그녀는 늘 메리에게 짜증을 냈고, 메리는 열 살 때까지 학대에 시달렸다. 하지만 메리의 성적은 늘 평균 이상이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주변을 배려했다.

 

 심리학자 메리 워너 교수는 열악한 환경의 아이가 훌륭한 어른으로 자란 비결을 분석했다. 어떠한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그 속성에 ‘회복탄력성’이란 이름을 붙였다. 회복탄력성을 지닌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의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해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잃지 않았다. 아무리 형편없는 환경이라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란 걸 잊지 않았다. 


다음 편 - 25. 회복탄력성의 비밀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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