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생존의 핵심은 창의력”
“4차 산업혁명에 5년간 510만 개 일자리 증발”
4차 산업혁명을 다룬 뉴스가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온다.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기에 이다지도 시끄러울까? 왜 그렇게 많은 일자리가 증발하는 걸까? 우선 4차 산업이 무엇인지 정체를 밝혀야 한다. 1, 2, 3차 산업혁명의 발자취를 보면, 4차 산업혁명의 정체는 자연히 드러난다.
문명은 주변의 힘을 이용한 역사다. 인간은 스스로 노동하는 대신 주변의 힘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동물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힘도 세고 튼튼하다. 당나귀를 길들여 무거운 짐을 옮기고, 말을 길들여 먼 거리를 활보했다. 도구가 발달하자 동물의 쓰임이 더 넓어졌다. 수레로 더 많은 짐을 더 멀리 옮겼다. 소에 쟁기를 달아 농업 생산력을 높였다.
둘째, 여러 도구가 결합한 기계가 발달했다. 물로 물레방아로 움직이고, 바람으로 풍차를 돌려 곡식을 빻았다. 물과 바람처럼 자연에서 움직이는 힘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과학의 발달로 자연에서 잠자는 힘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무와 석탄 속에서 잠자는 에너지를 이용했다. 나무와 석탄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다. 증기기관으로 방적기를 돌려 실을 뽑고 방직기를 돌려 천을 짰다. 생산력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증기는 장거리 운반이 어려웠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다. 전기는 증기보다 운반이 쉬웠다. 가느다란 전선만 설치하면 됐다. 전기 덕분에 땅 대부분이 기계로 덮였다. 더 많은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됐다.
3차 산업혁명은 ‘정보’다. 1, 2차 산업혁명에서 이송한 것은 증기와 전기라는 힘이다. 힘을 쓰는 노동자가 대체됐다. 3차 산업혁명으로 정보를 전달해 기계를 원격 작동할 수 있게 됐다. 기계를 다루는 조작자도 대체됐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기술 및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고 제품과 서비스가 지능화되면서 경제‧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혁신적인 변화다.
4차 산업의 정의가 1, 2, 3차 산업과는 다르지 않은가? 1차는 증기, 2차는 전기, 3차는 정보라는 중심이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클라우스 슈밥 교수가 2015년 12월 〈포린어페어스〉지에서 언급하며 시작되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요소를 한 가지씩 뜯어보면 꽤 낯이 익다. 대표적인 요소는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다. 첫 번째,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1950년대부터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다. 두 번째, 사물 인터넷도 1980년대에 등장했다. 이미 일상이 되었다. 집의 조명과 냉난방 등을 자유자재로 원격 조종한다. 세 번째, 빅데이터는 그 기준이 없다. 언제부터가 빅데이터 시대인지, 얼마만큼이 빅데이터 인지 명확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여러 기술은 새롭게 나타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다. 마트에서 새로운 과자봉지가 눈에 띄어 다가가니, 기존 과자들을 묶은 멀티팩인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다. 2017년 1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가 펴낸 2035년 세계동향분석 보고서에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2050년에야 3차 산업혁명의 절정에 이르러 21세기 후반부 내내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의 3차 산업혁명 정의는 이렇다.
①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
② 모든 건물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만드는 미니 발전소
③ 불규칙하게 생성되는 에너지를 수소 저장 기술 등으로 보존
④ 모든 대륙의 전력망이 연결
⑤ 전기차 전환 및 대륙 간 스마트 전력망으로 전력 매매
그의 정의에 따르면, 3차 산업혁명을 달성하기에도 갈 길이 멀다. 쐐기를 박자.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약 후진국 몇몇 나라가 지금을 6차 산업혁명의 시대라며 열광한다고 하자. 그들 나름의 이유는 있다. 전기를 넘어 ‘원자력’을 이용하니 4차 산업혁명이고, ‘사물인터넷’이 실현되니 5차 산업혁명이며, 여러 기술이 융합하니 6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시큰둥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열광하는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 또한 그러할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럼 왜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떠들까? 언어에는 응집력이 있다. 사회 변화를 대변하는 언어가 등장하면 너도나도 그 흐름에 동참한다. 그 언어의 힘이 더 커진다. 그리고 그 언어의 힘을 이용하려는 마케팅이 활개 친다. 웰빙, 한 달 살기, 미니멀리즘, 소확행 등의 언어가 나타날 때마다 얼마나 요란하던가?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언어에 기대, 연구자는 신기술을 개발한다며 연구비를 확보하려 한다. 사교육자는 새로운 인재로 키운다며 고액의 수업료를 받아내려 한다. 자칭 전문가도 나타나 4차 산업혁명을 들먹여 몸값을 높이려 한다.
삼인성호는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진실처럼 믿게 된다는 의미다. 허무맹랑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실제 이야기다.
중국 전국시대에 위나라 혜왕은 조나라에 태자와 중신 방총을 볼모로 보냈다. 방총은 조나라로 떠나기 전, 왕에게 아뢰었다.
방총: 전하,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있다고 말하면 믿겠습니까?
혜왕: 믿지 않을 것이네.
방총: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같은 말을 한다면 믿겠습니까?
혜왕: 그래도 믿지 않을 것이네.
방총: 만약 세 명이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혜왕: 그때는 믿을 것 같네.
방총: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과 위나라의 수도인 대량의 거리는 임금과 저잣거리의 거리보다 멉니다. 저를 비난하는 자 또한 셋보다 많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를 살펴주십시오.
방총이 혜왕과 대화를 나누고 떠나려는데, 떠나기도 전에 방총을 헐뜯는 참언이 올라왔다. 결국, 몇 년 후 태자는 위나라로 돌아왔지만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돌아오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종이호랑이를 매일 듣는다. 세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사익을 위해 4차 산업혁명을 목청 높여 외친다. 4차 산업혁명이란 언어의 힘은 막강해졌다. 인간의 판단은 합리가 아닌, 더 많은 노출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랑이가 저잣거리에 나타날 수도 있고, 묶음 포장에 불과한 4차 산업혁명이 부모의 마음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종이호랑이에 겁먹을 필요가 없듯이, 4차 산업혁명에 겁먹을 필요도 없다.
이제 그만 4차 산업혁명의 불안에서 벗어나 중요한 알짜에 집중하자. 4차 산업혁명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묶음 포장에도 알짜가 있다. 부모가 집중할 것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우리와 아이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사물 인터넷과 빅데이터는 아이의 경쟁자가 아니라 아이가 이용할 도구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에 흔들리지 말고, 인공지능에 집중하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알고 자신을 알면 미래가 위태롭지 않다. 아이의 미래가 위태롭지 않으려면 인공지능을 알아야 한다. 다음 장에서 아이의 막연한 경쟁자, 인공지능의 실체를 밝혀보자.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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