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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Apr 22. 2019

2. 문제적 상사 : 온갖 일을 수집하는 고물상

지난 편 : 1. 문제적 상사 : 일을 미루기만 하는 포워딩 머신


A부장은 유관 부서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익숙한 불안이 달대리를 엄습했다.

‘설마 오늘도 그러시는 건 아니겠지.’

회의가 끝나고 A부장이 달대리 쪽으로 다가온다. 또 업무를 잔뜩 받아온 모양새다. 오늘도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달대리! 오늘 퇴근 전까지 처리해.”

달대리 생각에는 B부서가 그 업무를 담당하는 게 맞다. 하지만 오늘도 부장은 이 일 저 일 덥석덥석 받아와 버렸다.

‘자기만 좋은 사람 되고 싶나?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부하를 굴리다니…’

오늘도 달대리는 부아가 끓는다. 엉뚱한 일 때문에 오늘도 야근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 업무를 분담하다 보면 항상 우리 부서에게 유리하게 배정될 수만은 없지’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해보려 했다. 그래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더 화가 나는 때는 퇴근시간 이후다. 애초에 업무를 맡아야 할 B부서의 직원들은 정시 퇴근시간이 지나면 사무

실에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 하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의 일도 덥석덥석 받아오는 상사가 있다.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중요한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불필요한 일을 줄임으로써 마음을 지키고 성과를 달성할 수있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


일 모아오는 상사


 일을 모아 가져오는 상사는 2가지 유형이 있으며, 유형에 맞게 해결법 또한 달라야 한다.

 첫째, 대가 약한 분이다. 이들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 어린 시절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존재 자체로 인정받거나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줌으로써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형성된 이 두뇌회로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회사에서도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고 다른 부서에서 원하는 대로 일을 한다.

 이 선량한 분이 어린 시절 어떤 이유로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없었는지, 심리 상담을 받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착한 사람은 분명 당신에게도 잘해줬을 것이다. 그에 현명하게 보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서로 존중하고 칭찬하며 격려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이번 보고서 잘 만들었다고 부장님께 칭찬받으셨다면서요, 과장님 대단하세요”처럼 행동이나 업적에 대한 칭찬보다는 “과장님이 우리 팀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데요”, “저는 과장님과 함께해서 기쁩니다”처럼 존재 자체에 대한 격려를 많이 해야 한다. 이런 유형은 외부의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하며, 존재 자체가 아닌 행위로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착한 행위를 통해 사랑받고 싶어서 일을 부당하게 덤터기로 받아왔던 것이다. 존재 자체에 대한 격려는 그가 닫아놓은 마음의 좁은 틈으로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며, 이는 내면에 숨겨둔 어린아이가 자라게 하는 영양제가 될 것이다(물론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받는다면 더 빠른 효과를 볼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상사에게 해야 할 말은 당당하게 하자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당신까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아서 싫은 소리를 못한다면, 상사와 당신 모두 위험해진다. 거절을 못하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떠안게 된다. 업무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마감시한을 맞추기에 급급해진다. 불만이 위험할 정도로 쌓인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지만 성과는 내지 못하는 무능한 조합이 탄생하는 것이다. 예의와 논리를 갖춘 당신의 말에 상사(착한 아이)는 타 부서와 부하라는 양쪽 어른 사이에 끼어 어쩔 줄 몰라한다. 상사는 양쪽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순 없기에 당연히 내적 갈등이 많아지게 된다. 착한 아이의 내적 갈등은 심해지겠지만,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일을 덥석덥석 받아오는 경우는 줄어들 것이다.


 둘째,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분이다. 이들은 부하의 품을 팔고 자신의 이득을 취한다. ‘앵벌이 두목’과 같다고나 할까. 유관 부서의 일을 떠맡아줌으로써, 자신이 필요로 할 때 은밀하게 본인 의견에 동조해줄 것을 요청한다. 또는 임원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신 처리함으로써 신뢰를 획득한다. 두 경우 모두 자신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부하만 굴리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실은 차지하고 부하들에게 그 혜택을 분배하지는 않는다. 즉 부하들의 시간과 노력을 팔아 사익을 채우는 부정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사를 모시기는 쉽지 않다. 당신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첫 번째 방법은 절대복종하고 업무 외의 일들은 포기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시간, 자기계발 시간 등을 말이다. 당신의 상사가 임원에게서 중요한 업무를 많이 받아온다면 그는 그 임원의 튼튼한 라인이다.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을 잘해도, 정작 업무에 대한 신뢰가 따라주지 못한다면 라인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라인은 핵심 업무로 맺어져 있다. 임원의 평가가 달린 중요한 일은 가장 믿음직하고 유능한 부하가 맡는다. 그 부하는 회사의 입장이 아닌, 임원이 견지해 온 입장에 일치하는 방향대로 일을 수행함으로써 기대에 보답한다.

 당신 또한 가족과 자기 시간을 포기하고 상사의 입맛에 맞춰 충성을 바친다면 남다른 고과와 승진을 누릴 것이다. 탄탄한 업무 능력은 덤이다. 회사가 아닌 상사의 입장에 맞도록 보고서 또한 요리조리 잘 주무르게 될 것이다.

 은밀한 유혹은 달콤하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회사에 해를 끼치진 말아야 한다. 회사가 있어야 동료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야전에서 포로로 잡힌 황제를 아는가? 바로 명나라 영종이다. 영종의 환관 왕진에 의해 전무후무한 역사적 비극이 탄생했다.


왕진은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았다. 몽골의 오이라트 부족이 침공하자, 대신들의 반대에도 황제가 직접 출전하도록 종용했다. 5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하지만 군을 이끌 능력이 없는 왕진이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군은 궤멸되고 황제는 사로잡혔다. 국가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고, 죄 없는 백성 50만 명이 희생당했다. 하지만 명나라는 멸망하지 않았다. 병부시랑 우겸의 일사불란한 재건 덕분이었다. 50만 대군을 동원하느라, 수도 베이징에는 10만도 채 남지 않았다. 20만이 넘는 몽골군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신속히 새 황제를 옹립하여 혼란을 잠재웠다. 각지의 병사와 물자를 베이징으로 집결시키고, 유능한 장수를 발탁하여 군사를 훈련시켰다. 우겸의 지휘 아래, 베이징 방어전은 명나라의 승리로 끝나고 몽골군은 퇴각했다.


 우리나라 조선과 플랜트 산업이 위기다. 조선과 플랜트 산업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뭘까? 임원들이 자신의 실적을 채우고자 무리하게 낮은 가격에 수주했기 때문이다. 조 단위의 적자가 덮치자 죄 없는 직원들이 정리해고되었다. 구성원들은 사욕을 위한 해사 행위에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스포트라이트에서 정치를 쌓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어느 산업이든 광풍은 일었다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재건할 수 있는 ‘인재’가 있느냐다. 명나라군 50만 명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지만, 회사를 재건한다면 옛 동료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A+급이 아닌 A급 사원이 되는 것이다.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해 그 한계를 벗어나는 ‘플러스+’ 요구는 거절하는 것이다. 근무시간에는 열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지만 불필요한 충성 행위는 사양하는 사원이 되자. 그러면 정치적인 상사는 당신을 측근 밖으로 분류해 핵심 업무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업무 외의 모든 인생을 포기하고 성공을 향해 달려드는 단거리 선수에게 A+급 사원의 자리를 양보하라.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사람은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자를 당해낼 도리가 없다. 그런 자를 이기려는 내면의 욕망을 다스려 불필요한 소모를 피해야 한다.

 A+급 사원의 삶은 공허하다. 임원의 지시를 수행하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급한 일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밤이나 주말에도 밥 먹듯이 부려먹을 수 있어야 한다. A+급 사원을 포기한 당신은 높은 고과와 빠른 진급 대신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시간을 쓸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할 것이다. 공허한 에이스가 아니라 실속파 2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마저 버릴 수 있다


 고과와 진급을 위해 가족의 행복을 희생하겠다면 두 인물의 생애를 보라. 춘추전국시대 오기와 악양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하려 하자, 오기는 노나라의 대장군이 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부인이 적국인 제나라 출신이었으므로 노나라 왕은 그가 배신할 것을 의심해 섣불리 대장군의 자리에 앉히질 못했다. 그는 직접 아내의 목을 베어 왕에게 바쳐 대장군이 되고 대승을 거두었다. 위나라와 초나라로 망명해서도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76전 무패의 중국 역사상 최강의 상승常勝장군이 되었다.

 위나라의 명장인 악양은 중산국을 공격할 것을 명 받았다. 중산국은 자신의 아들이 관리로 일하는 나라였다. 중산국 군주는 악양의 아들을 인질로 삼아 협박했지만, 악양은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중산국 군주는 악양의 아들을 삶은 고깃국을 보냈고, 악양은 그 고깃국을 싹 비우고선 중산국을 정복했다.


 우리네 상사가 아무리 악독한 사람이라도 오기나 악양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저 매달 월급에 목매는 소시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든 것은 소중한 가족을 성공과 맞바꾸었다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두 장군의 비인간적 면은 다른 신하들에게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을 죽인다는 것은 성공을 위해 동료 신하는 물론 임금조차도 내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기는 노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전전한 끝에 초나라에서 비명횡사했다. 악양도 그 후 중임을 맡지 못했다.

 성과는 혼자서 달성할 수 없다. 충실한 부하들과 협조적인 동료, 이해심 많은 상사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만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조차 챙기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보살피지 않는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고 감정을 공유하는 공감능력이 낮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사람을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부하와 주변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공감능력이 낮은 삶은 언제 버릴지 또는 버려질지 모르기에 위태롭다. 오기와 악양의 비극적인 결말은, 따뜻한 인간이길 포기하고 쟁취한 성공은 지속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달콤 살벌한 합종연횡이 이뤄지는 살벌한 직장이라는 전장. 다행히도 나는 혐오스러운 정치에 대비되는 기억의 단편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삶은 치열했지만, 서로에 대한 애증이 깊었다. 깊은 애증의 기억으로 남은 상사 P. 그는 부서 간 업무 정리를 잘해서, 부당한 업무에 부하를 투입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로서의 양심 또한 있었기에,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생각되면 부하를 사지로 밀어 넣지 않았다. 부하의 업무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날카롭고 꼼꼼하게 지적했다. 카리스마 또한 굉장해 그분 앞에 설 때마다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당시에는 좀 더 부드럽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부하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하려는 그의 의도였음을 후에야 깨달았다. 어느 누가 당장의 인기가 싫겠냐만, 그는 인기보다 부하의 미래를 중요하게 여겼다. 본인의 입지보다는 부하의 시간을 지켜주고 미래를 걱정해준 모습은 성공의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본보기로 남았다.

 달콤함뿐인 관계는 진실하지 않다. 달콤한 가식으로만 동료를 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그와의 애증이 깊었던 것은 그만큼 진실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다음 편 : 3. 문제적 상사 : 말이 통하지 않는 독불장군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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