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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Apr 24. 2019

4. "이 산이 아닌가 봐? 저 산으로 가자"는 상사


지난 편 -  3. 문제적 상사 : 말이 통하지 않는 독불장군


여느 저녁과 다름없이, 달대리는 부장과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달대리, 1안으로 추진 중인 건 있잖아. 그거 2안으로 추진해야겠어. 회사 상황이나 최근 환경을 감안하면 1안이 더 나을 것 같더라고.”

“아… 네. 알겠습니다.”

이번 주까지만 야근하면 오랜만에 해방될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날벼락이다.

아니 일벼락이다. 야근은 기약 없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부장님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함께 일했던 부장이 그리워졌다. 어떤 일도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예전 부장과는 같은 작업을 두 번 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의심스러워 믿지 못할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 리더가 부하를 기용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부하 역시 상사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하되, 일단 동의했으면 끝까지 믿고 따르자.


 제 아무리 뛰어난 상사라도 매번 옳은 결정을 할 수는 없다. 일단 따르기로 했으면 결과는 담담히 받아들이자. 상사를 설득할 논리를 세우지도 못했으면서 투덜대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초원의 제왕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10~30퍼센트에 불과하다. 사자는 단독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철저한 계획과 팀워크로 사냥에 나선다. 굶주릴 땐 우두머리 수사자까지 발 벗고 나선다. 온 무리가 전략을 짜서 전력질주를 해도 허탕 치기 일쑤다.


 아무리 유능한 상사라도 항상 완벽한 결정을 할 순 없다. 아무리 친절한 상사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려줄 순 없다. 본인이 생각한 가장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지만, 완벽하진 않을 것이다. 상사의 시계는 빠르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효율적인 업무 지시를 해야 한다. 완벽한 지시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필요하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쓰면 되니까.

 회사는 단독 작품이 아니라 공동 작품을 만드는 곳이다. 큰 뼈대의 가이드라인에 잔 뼈대가 되는 자신의 고민이 더해질 때, 상사와 당신의 합작품이 완성된다. 고민 하나하나가 당신이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퇴근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따뜻하고 풍요로운 곳에서 사람은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친절하고 유능한 상사 아래에서 업무의 책임과 권한이 없는 사람은 안일한 생각에 빠지기 쉽다.


 ‘나는 업무에 대한 결정권도 없어. 

  난 아직 모르는 게 당연해.

  업무의 추진방향은 어떻게 결정되든 내가 신경 쓸 바 아냐.

  나는 당신이 정해준 대로만 일하면 되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알려줘요.’


 책은 얼마나 많이 읽느냐보다 얼마나 깊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고민 없이 글자만 읽은 책은 덮고 나면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일도 마찬가지다. 유능한 상사 아래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잘 다듬어진 일거리만 받아먹으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력서 한 줄 채울 수 있을 뿐, 진실한 경력이 되지 못한다. 처절한 고민이 깃든 일이 실력과 보람을 만든다.


 한 번에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해도 좋다. 실수를 진솔하게 인정하고 같이 고민하는 상사와 함께할 때 성장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는 도쿄대 이케가야 유지 교수의 미로 찾기 실험에서도 잘 나타난다. 목적지까지 여러 경로가 있는 미로가 있다. 우선 미로를 막지 않고 쥐를 풀어놓은 뒤, 미로 중 일부를 막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관찰했다. 학습 초기에 많이 실패한 쥐일수록 여러 경로의 최단거리를 더 빨리 찾아냈다. 학습 초기에 골고루 미로 전체를 검색하는 것이 경로를 바꾼 뒤에도 효과적인 길 찾기에 도움이 됐던 것이다.

 이는 자동차 운전에도 적용된다. 내비게이션에 너무 의지하면 방향감각을 키울 수 없다. 목적지로 가는 훌륭한 답을 미리 알려주니 굳이 고민하며 길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벌벌 떤다. 낯선 곳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도를 볼 줄 모르고, 항상 정답만 골라 섭취했던 까닭이다.


 당신 안의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하자. 스마트한 상사와 함께 일한다면, 당신에게는 그만큼의 여유가 생긴다. 3~4번 수정할 일도 한 번만 수정하므로 처리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나 그 여유를 방치하면 나태가 된다. 여유 있을 때 상사의 노하우를 의심하고 고민하며 자신의 노하우로 축적하자.


 눈에 띄는 성과물 없이 하루를 보낸 것도 물론 바람직하지는 않다. 다만 하루 동안 당신이 어떤 것을 경험하고 무엇을 배웠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서체를 공부한 덕분에 유려한 디자인의 매킨토시가 탄생했다. 당장의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당신이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면 당신은 경험이라는 구슬을 마련한 것이다. 구슬은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불평불만으로 그 구슬을 방치할지, 잘 꿰어 보배로 만들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매일 퇴근이라는 도착지를 향해 달린다. 사실 빨리 도착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을 던진다. ‘오늘은 제시간에 퇴근했는가?’ 그 누구도 자력으로 제시간에 퇴근하기는 힘들다. 직접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을 자신에게 반복해서 되묻지 말자.

 도착했을 때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퇴근길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차근차근 길 주변을 살피고, 차곡차곡 주머니를 채우자. 퇴근할 때 꼭 물어보자. ‘오늘 하루 무엇을 배웠는가?’ 일찍 퇴근해도 배운 것이 없는 날이 계속된다면, 당신의 일상은 불편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미로를 배워가는 어린 쥐에 불과하다. 당장의 좌충우돌에 불평하는 대신, 자신만의 내비게이션을 구축해가는 탐험을 즐기자.



다음 편 - 5. 문제적 상사 : 야근 마니아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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