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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Apr 25. 2019

5. 문제적 상사  : 야근 마니아

지난 편 - 4. 문제적 상사 : "이 산이 아닌가 봐? 저 산으로 가자"는 상사


6시가 되었다.

근로계약상 근무시간은 끝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일어서지 않는다.

달대리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속삭인다.

‘휴, 오늘은 언제 퇴근하나.’


똑딱똑딱, 시간은 벌써 7시에서 8시, 9시가 되어간다.

부장이 자리를 정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후, 이제 집에 갈 수 있겠다.’

부장이 퇴근하자 차장, 과장이 차례로 퇴근을 한다.


 조선시대 관복을 입은 신하와 현대식 정장을 입은 회사원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상상해보라.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한 명은 충성을 바쳐 녹봉을 받는 자, 또 한 명은 성과를 바쳐 월급을 받는 자다. 이것이 현재 사무실의 문화적 풍경이다. 비록 옷은 비슷하게 맞춰 입었을지 몰라도, 사고방식만큼은 확연히 각각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늦게까지 일해도 성과가 같은 이유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무시간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2015년 기준 연간 2,113시간으로, 1위 멕시코(2,246시간)보다는 낮지만 34개 회원국 중 2위다. 평균(1,766시간)과는 347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오히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 같은 선진 유럽 국가는 근무시간이 연간 1,40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정말 업무가 많아서 근무시간이 이렇게 긴 걸까? 근로 생산성이 동일하다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선진국 근로자들보다 훨씬 더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자유롭게 퇴근할 수 없어 퇴근시간이 미뤄진다는 것을. 어차피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므로 일을 천천히 한다. 일을 의욕적으로 빨리 끝내봤자 천천히 일하는 동료의 몫까지 떠맡게 된다. 평가는 업무 성과가 아닌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 있는 시간’에 비례한다.


 이것은 조직의 문제다. 사원이나 대리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문제다. 그러니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 누구랑? 바로 현대 정장을 입은 직원들끼리다. 직급이 낮을수록 정장을 입은 비율이 높지만, 정장을 입은 과장도 있고 관복을 입은 사원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병역특례 과장보다 장교 출신 사원이 더 위계 의식이 강하지 않은가.

 기러기는 V모양 행렬로 떼 지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간다. 그날의 컨디션이 가장 좋은 기러기가 가운데 선두에 서면, 나머지 기러기가 양 옆으로 줄지어 V 형태를 이룬다. 맨 앞의 기러기는 공기 저항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기에 가장 힘들다. 선두를 교대로 맡아 비행하기 때문에 수천 킬로미터를 날 수 있다.

 정시 퇴근시간이 지난 사무실은 보이지 않는 망으로 답답하게 둘러싸여 있다. 답답해하면서도 부장이 그 망을 해제할 때까지 감히 벗어날 생각을 못한다.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망을 한두 번 먼저 찢을 수는 있겠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니 팀을 이루어 번갈아 망을 찢어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필히 희생자가 생긴다. 이탈자가 없도록 소통하고 뭉쳐야 한다. 충성 야근과 같이, 기존 질서를 따르라는 상사의 유혹은 강력하다. 야근의 허수아비가 되어 동료보다 나은 고과를 받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자.


 집으로 퇴근하는 정공법을 매일 쓰기는 어렵다. 그때 쓰는 것이 변칙법이다. 우회하는 것이므로 완벽한 퇴근은 아니지만, 자리를 비우고 실리를 챙기는 방법이다.

 첫째,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동호회를 적극 장려하므로 가장 눈치가 보이지 않는 방법이다. 부서 밖 사람들과 관계도 맺을 수 있고, 취미가 맞는다면 금상첨화다.

 둘째, 학원이나 대학원에 등록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해야 하고, 퇴근이 빨라지는 만큼 일도 열심히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경력관리 방향과 맞아야 시간과 돈과 열정이 낭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늘어가는 뱃살과 작별할 줄 모르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것이 직장 생활이다. 동료가 운동을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기에도 좋은 기회다. 회사에서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곧장 퇴근할 수 있다. 회사 수영과 요가 동호회에 가입한 적이 있었는데, 건강과 퇴근을 동시에 챙길 수 있었다. 


 정공법도 변칙법도 통하지 않아 꼼짝달싹 못할 때도 있다. 부서에 정장 입은 사람이 자신 뿐이거나, 설득할 수 없는 맹목적인 충신들이 대거 포진한 경우다. 단 하나의 해법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업무 관련 전문지식을 학습할 수도 있고, 업무와 별개인 것을 추진해도 된다. 자신만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타성에 젖어 일을 천천히 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해야 할 업무를 신속히 처리해서 자신만의 프로젝트로 돌아오고 싶기 때문이다.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사들이 많으므로 일석이조다. 나는 설계엔지니어였다. 업무 관련해서는 평소 궁금했던 설계 지식을 학습하거나 설계 매뉴얼을 보완했다. 엑셀을 많이 쓰기에 엑셀 VBA 책을 구입해 매일 30분에서 1시간씩 실습하기도 했다.  

 현재 직장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고, 야간 대기가 아닌 일다운 일을 하는 곳이라면 굳이 사양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최고의 자기 계발이다. 괜히 자기 계발한답시고 회사 밖을 방황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나보다 숙련된 사람들에게서 배우며 함께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필자 또한 동료들과 야근하며 동고동락했던 시기에 진정으로 많은 걸 배웠고, 덕분에 회사 생활이 즐거웠다.


 언급한 대안은 모두 차선책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위에서의 변화다. 아직 대부분의 기업문화는 진흙길이다. 필자가 제시한 대안은 질척이는 길을 건너기 위해 장화를 신겨준 것에 불과하다. 아스팔트와 같은 합리적인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내야 할 성과는 많은데 진흙길로만 다니라는 것은 무모한 전술이다. 성과의 고속도로를 구축되기 위해서는, 군더더기 조직문화는 제거되고 아스팔트로 단단히 포장되어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나아졌듯, 현재의 보여주기 식 야근문화는 점차 느슨해질 것이다. ‘오늘은 정시 퇴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지금은 시기상조다. 던져서는 즐겁지 못할 질문을 던지는 대신, ‘비록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않은 현재지만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로 바꿔 질문하자. 현재의 악조건에 체념해 일을 천천히 하거나 의욕을 스스로 깎아내리진 말아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다음 편 - 6. 문제적 상사 : 가족 주의자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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