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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Apr 26. 2019

6. 나는 당신 같은 가족을 둔 적이 없는데요

문제적 상사 : 가족 주의자

지난 편 - 5. 문제적 상사 : 야근 마니아


 엉덩이로 충성하는 야근 마니아와 더불어 가족 주의자 또한 평생직장의 유물이다. 몇 년 전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CF가 있었다. 오늘날 직장에서의 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상사 A: 가족보다 얼굴 보는 시간이 더 많아. 우린 또 하나의 가족이나 다름없어.

상사 B: Company가 무슨 뜻인지 아냐? 빵을 같이 먹는 사이야. 바로 식구란 말이지.

상사 C: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 자, 오늘도 한잔하러 가자고!


 달대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한 가족인가?’

 많은 상사가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한다. 구호는 매력적이다. 오늘날은 핵가족을 넘어선 1인 가구 시대다. 혼밥 혼술–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대중매체는 날이 갈수록 더 화려한 일상을 담아내지만, 개인의 정서는 고독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고독한 항해 중에, 또 하나의 가족이라니! 가슴 한편으로는 든든하기 그지없다.

 상사는 인자한 표정으로 노하우들을 알려준다. 함께 도와가며 그저 묵묵히 일하면 된다는 그들의 지침은 따라가기에 어렵지 않다. 또한 가족 같은 직장이라는 구호 아래 똘똘 뭉친 조직의 응집력은 꽤 유용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과거의 방식을 무분별하게 답습할 위험이 크다.


타조 무리가 있었다. 맹수가 다가오자, 타조들은 무서워 머리를 땅에 박고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다행히 일부 타조가 살아남았다. 다시 번식하여 예전만큼 무리가 불어났다. 이번에도 맹수가 다가오자 타조들은 머리를 땅에 파묻었다. 일부 타조는 맹수의 식사가 되었지만, 나머지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또다시 번식하여 무리는 예전의 규모를 회복했다. 같은 일이 반복됐다. 나그네가 타조 무리에게 다가가 물었다.

“척박한 황무지에서도 무리가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우리는 맹수가 쫓아오면 땅에 머리를 파묻었답니다. 이건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비법이라오!”


 조직에서 공유되어 온 행동 전략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도 유용하게 쓰일지는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다. 단색의 조직문화는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해롭다. 조직에서 모두 한 목소리만 낸다면, 다양한 변수와 위험을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못해 조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개인 역시 튼튼한 자기중심 없이 주변의 의견에 끌려가기만 하다간 경쟁력을 잃는다.


 <3편. 말이 통하지 않는 독불장군>에서의 미국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을 보자. 한 장의 카드에는 하나의 선이, 또 다른 카드에는 세 개의 선이 그려져 있다. 

출처 : https://www.simplypsychology.org/asch-conformity.html

 세 개 중 하나는 첫 번째 카드의 선과 길이가 일치한다. 누가 봐도 길이가 같은 선을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실험 결과가 놀랍다. 방 안에 7명을 모은다. 6명은 실험을 위한 배우이고, 한 명만이 실험대상자다. 6명이 고의적으로 같은 오답을 말하자, 꿋꿋이 정답을 말한 경우는 63%에 불과했다. 실험대상자들은 스스로의 시력을 의심하거나 자신이 모르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실험은 한 목소리의 조직문화에 맞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정답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집단생활을 통해 종족을 보존한 인간은 개인의 판단보다는 집단의 판단을 따르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위기에 짓눌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마음으로 주관 없이 조직에 따르기만 해야 할까?


두 발을 유연하게 움직일 것


 피벗을 하자. 피벗이란 농구나 핸드볼 등의 구기운동에서 한 발은 고정한 채 다른 발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피벗으로 최선의 공격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한쪽 발은 철저히 조직문화에 고정하자.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조직의 의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자.

 기존 조직원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신참은 두 발 모두 조직 바깥에 내디딘 것이다. 그런 신참은 조직 부적응자나 고집불통, 말썽꾸러기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상대방에게 마음이 열리는 법이다. 게다가 가족 같은 조직문화는 많이 엇나가지만 않으면 신참을 포용하고 따뜻한 정을 베풀려는 장점이 있다. 당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일단 품속에 안으면 미워도 내 자식, 고와도 내 자식이다. 신참이 기존 조직원들의 말을 경청하고 인정하고 나서야, 신참의 의견은 새로운 생각이자 젊은 생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조직 밖에 내디딘 한쪽 발이 건전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돕는 것이다.

 가족 같은 조직문화는 배울 점이 많다. 상사는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후임을 가르치고, 서로 입장을 배려해서 상황에 맞게 일을 배분한다. 문서상 역할에 얽매이지 않는다. 내 일이 아니라며 팔짱 낀 채 있지 않고 소매 걷고 돕는다. 네 일, 내 일 가리자는 분란이 적으니 조직운영이 매끄럽다. 성과만 앞세우는 회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안정감을 누린다.


 우리는 이분법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회사에 맹목적으로 충성해야 하나? 아님 확 때려칠까?’ 꼭 두 발 모두 회사 안에만 묶어놓거나, 두 발 모두 회사 밖으로 뻗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한쪽 발은 굳건히 조직에 뿌리내려 조직의 모든 것을 경청하자. 다른 쪽 발은 바깥을 딛고 새로운 의견을 내보자.

 나 혼자만의 목소리가 무슨 소용 있냐고? 분명 거대한 조직 앞에 개인은 한없이 작은 존재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낙담하지 말고, 그 격차를 좁히려고 실천할 때 삶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격차의 해소는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 바로 자신의 주변에서부터다. 앞서 이야기한 솔로몬 애쉬의 실험은 우리에게 길을 알려 준다. 6명의 배우 중 1명만 다른 답을 말하기만 해도, 실험대상자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한 비율이 확연히 높아진 것이다. 조직의 생존은 간신의 아첨보다 조직원의 솔직한 의견을 필요로 한다. 당신의 작은 한 걸음이 조직을 살리는 큰 걸음이 될 수 있다. 시시각각 조직을 향해 위험이 다가온다. 피벗을 통해 조직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 한다면 조직을 지킬 수 있다. 


다음 편 - 7. 못마땅한 상사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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