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나갈 거예요
죽지는 않아요

브루클린(Brooklyn)

by 이소라



영화 <브루클린>에서 에일리스(시얼샤 로넌)는 고향을 떠나오는 배에서 만난 조지나에게 묻는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편지를 미국에서 받아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해요?" 이제 막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에일리스는 고향에서 가족들이 보낸 편지를 언제쯤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외로운 타지에서 그녀를 다독여줄 것은 아일랜드의 향기가 배인 편지뿐일 테니. 이민 경험이 있는 조지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처음엔 오래 걸리는 것 같지만 나중엔 금방 받게 돼." 에일리스는 그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한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찬 눈동자는 끝없이 짙푸른 바다를 담고 불안하게 일렁인다.



조지나의 말은 정확했다. 낯설고 불친절한 곳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칠 때, 아일랜드발 편지는 그녀의 하루하루를 지탱해주는 구조선과도 같았다. 한두 달 전 소식을 담은 편지였지만 상관없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람들, 공부, 사랑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지기 시작하자 에일리스는 더 이상 고향에서 보낸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지 않는다. 우편함에 꽂혀있는 편지가 유일한 안식처였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본 뒤 나는 직감했다. 앞으로 몇 번 더 반복해서 보겠구나. 그런 영화들이 있다. 특정 부분을 사랑하게 되는 영화. 가령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허여멀건한 국수가락을 말도 없이 후룩거리는 장면처럼. <브루클린>도 그랬다. 나는 에일리스가 아일랜드를 떠나 브루클린에 정착하면서 겪는 쓸쓸함, 당혹감, 흔들림에 완전히 감정을 이입했다.




그녀는 영리하고 당차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나약해질 때가 있었다.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를 방어해 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마음 속은 위태롭게 흔들려 본 이라면 알 것이다.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척할 때 나는 내 뒷모습이 보인다. 초라해서 안아주고 싶은 어깨가 보인다. 대학에 합격하고 기뻤던 것도 잠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스무 살 겨울 내내 가슴을 아프게 조여다. 당시 친구들은 대부분 고향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었다. 친구들은 서울 생활을 하게 될 나를 격려하고 부러워했지만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신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로 들어서야 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식을 타지로 보내는 건 부모님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학교 기숙사는 추첨에서 떨어져 버렸으니 혼자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이 미더울 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고민 끝에 서울에 사는 친척 어른을 생각해냈다. 말이 서울이지 서울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곽 동네였다. 내가 가게 될 학교까지 버스로 넉넉잡아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친척집에 딸을 맡기는 게 안심이라 생각하셨으리라. 2월 중순쯤, 아버지와 그곳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서울역에 내려 한참을 갔던 것 같다. 어떻게 그분 집에 도착했는지, 그에 관한 기억은 까맣게 지워져 있다. 딸 공부 잘 시켜서 좋은 대학 갔네, 못 본 새 많이 컸네. 그런 말들이 오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본론을 꺼냈고 나는 그 곁에 앉아 있었다. 결론은 좀 힘들겠다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적잖이 실망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후련했다. 스물의 시작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집에서 보내고 싶진 않았다.



서울에서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는 아버지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MP3에 꽉 채운 음악 재생 리스트를 하릴없이 이리저리 들여다보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제 그 순간이 정말 현실로 다가오고 있구나,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 낯선 곳으로 가야 할 순간이. 창문에 비치는 내 얼굴이 마치 다른 사람 얼굴 같았다. 또렷하게 뜬 눈동자에는 아직 어린 소녀의 천진함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일렁였다. 마치 망망대해를 바라보던 에일리스의 눈동자처럼. 나는 문득 강인해져야겠다 생각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와 동시에 내면의 어떤 부분들이 부서지기 쉬운 재질로 바뀌어가는 걸 느꼈다.






입학 며칠 전 다행히 명동에 있는 여학생 기숙사에서 연락이 왔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들을 만났던 장소는 떠오르지 않는다. 간혹 이렇게 까맣게 돼버리는 기억들이 내겐 있다. 밤이 다 되어서야 버스 정류장에서 작별했다. 마치 반복되는 영화의 한 컷처럼 친구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겨울밤이 서린 버스 정류장에 옹기종기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안녕. 안녕. 우린 그때 영영 이별하고 말 거라고 생각했었다. 철없던 시절의 이별은 어떤 이별보다도 극적이고 애틋하다. 서울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 마음껏 털어놓았다. 그 애들이 많이 그리웠다. 크리스마스 날, 이민자 모임에 참여한 에일리스는 어느 노인이 부르는 아일랜드 전통 노래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잘 살다가도 그리운 것들은 그렇게 가슴을 비집고 들어서곤 한다. 행사가 끝나고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에일리스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처음 서울역에 내려 바라본 서울은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는 삭막한 도시였다. 알 수 없는 건물들, 복잡한 길, 웃음기라곤 없는 표정의 사람들. 서울이라는 도시는 커다랗지만 내가 들어설 자리는 없는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곳으로 발을 들일 때 나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에일리스가 처음 미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는 장면은 그때 내가 느꼈던 심정을 닮았다. 에일리스의 눈에 뉴욕은 멋지고 거대하지만 좀처럼 거리를 좁힐 수 없는 피상적인 공간으로 비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에일리스가 바라보는 뉴욕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깨끗한 거리, 청량한 하늘, 푸르게 피어난 가로수들. 그녀의 눈에 뉴욕은 드디어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장소로 비친다. 에일리스를 사무치도록 외롭게 만들었던 공간은 이제 그녀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풍경으로 바뀐 것이다.




에일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향수병이 걸리면 죽을 듯 괴롭지만 견딜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순간도 지나가버릴 거예요.

죽지는 않아요.



모든 외로움이 그렇진 않겠지만 어떤 종류의 외로움은 반드시 시간이 흐를수록 어렴풋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뜰 거예요.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희미하게 다가와요.



에일리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부친 편지는 언제까지나 같은 시간이 걸려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옅어질수록 오직 편지만을 기다리던 에일리스의 일상에는 즐거운 많은 것들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힘들던 시간들은 그렇게 점차 멀어져 간다. 나 역시 그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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