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외로운 당신에게

프롤로그(Prologue)

by 이소라


홀로 있다는 감정을 온몸 넘치도록 느껴본 건 스무 살의 2월이었다.

정확히 말해 2월의 마지막 날. 나는 익숙했던 장소를 떠나 낯선 곳을 향하고 있었다. 따뜻한 남쪽과 달리 서울은 시리도록 추웠다. 엄마가 챙겨 입혀준 붉은색 점퍼는 너무 얇았다. 아직 봄은 저만치 먼데 엄마는 서울이 벌써 봄이라도 된 듯 생각했으리라. 곱은 손에 트렁크를 끌고 명동역에 내린 그 날, 꽁꽁 언 것은 서울의 공기뿐만이 아니었다. 한쪽 가슴이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을 만큼 텅 비어있었다. 손가락으로 톡 튕기면 차가운 금속의 뾰족한 소리가 들릴 만큼.



나는 명동에 있는 여학생 기숙사에서 스물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거리는 분주하고 서로 깍지를 낀 사람들은 둥글게 뭉쳐진 채로 나를 스쳐갔다. 집이 그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립다는 감정조차 느낄 새가 없었다. 그저 외로울 뿐이었다. 혼자라는 것이 이토록 쓰라리구나, 곱씹으며 걸었다. 나만이 나를 보호할 수 있었다. 낯선 곳으로부터, 낯선 마음으로부터. 휑하게 비어버린 가슴을 부여잡는 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스물의 2월 마지막 날은 차갑게 기억된다. 엄마 아빠와 통화를 하고 침대에 누운 나는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을 온몸 가득 느끼려 몸을 웅크리고, 또 웅크렸다.



그 이후로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과 종종 마주쳤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외로움은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외로움이 나를 찾았다. 사람들 틈 속에서도 나는 텅 빈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가 많았다. 전혀 고독할 이유가 없는 상황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우리가 전혀 고독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한 고민과 상처, 숨기고 싶은 과거 또는 현재,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욕망.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 외로움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고독함은 어떤 대상으로부터 거절당한 것과 같은 감정을 일으킨다.

스물의 겨울, 잔인한 외로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처음으로 어떤 존재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분위기,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장소. 그때의 그 고립감이 내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한 것이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기억은 내게 어떤 습관들을 남겼다. 홀로 있는 것 같을 때 나는 글을 썼다. 일기든, 짤막한 글이든 상관없었다. 그림을 봤다. 미술관이든 미술 잡지든 상관없었다. 특히 이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이 만들어낸 예술에 마음을 쏟았다. 그들의 삶은 내게 위안이자 치유였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었다. 그 속엔 외로워 하는 나를 똑같이 닮은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그들은 외로운 나에게 말한다.




당신도 그렇군요.

저도 그랬답니다. 그러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아요.




외로움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각자의 외로움은 각기 다른 무게를 갖는다. 다른 이 보다 조금 더 외로움에 민감한 가슴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외로움에 관한 열 다섯개의 이야기.



고요한 밤, 외로운 당신에게.

이 글이 닿기를 바라며.